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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v Feb 07. 2020

스타트업 사내 용어집 만들기

신규 입사자를 위한 소프트랜딩 가이드

이 글은 신규 입사자 입장에서 스타트업에 적응하기 위해 해 볼 수 있는 노력에 관해 공유하는 글이다. 특히 생소한 업무 용어들을 익히기 위해 '용어집'을 만들었던 경험담을 소개한다.


스타트업에서는 영어 표현을 많이 쓴다. 경영학이나 경제 용어들이 많기도 하고 해외 아티클에서 등장하는 트렌디한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본적인 업무 용어들을 아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는 영어나 그놈의 줄임말들을 싫어하지만 이제는 반 포기상태다. 다들 쓰니까 일하다 보면 나도 그냥 쓴다. 그 뉘앙스와 의미를 대체할 국문 단어를 만들기도 어렵고... 어쨌든 시작해보자.




스타트업 업무 용어


Lean, Agile, Silo, R&R, MECE, Pivot, MBO, KPI, OKR, Align, IR, CTA, CAC, LTV, ROAS, ROI, GTM, MVP, VP, PMF, Persona, Leverage, Wrap-up, Kick-off, due date, As-is, To-be, Town hall meeting, Scrum ...     


 스타트업에 입사하고 첫 회의에 들어갔을 때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대화의 속도가 그렇게 빠른 편도 아닌데 대화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왜냐하면 문맥상으로만 파악해야 하는 생소한 용어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위 네모 상자 안의 영어 표현들뿐만 아니라 회사 프로젝트 이름도 처음 듣고, 회사에서 쓰는 협업 프로그램들 이름도 모르는 상황에서 회의실은 외계행성이 된다. 나름 공책이나 노트북에 들리는 대로 받아 적지만 완성되지 못한 단어들만 나열하다가 회의가 끝나게 되곤 한다. 그게 스타트업에 입사하면 처음 겪게 되는 보통의 경험 중 하나다.     


 갓 입사한 주니어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많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수나 주변 팀원이 날 도와주기 위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해도 물어볼 게 딱히 없는 경우가 많다.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난감한 경우는 물어보고 싶어도 내가 물어보려는 게 뭔지 제대로 용어를 몰라서 물어보지 못하는 경우다.     

 

알앤... 뭘 나누라고 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정확히 뭘 물어보는 거냐구요? 저도 모르는데요... 알... 뭐시기..(R&R)


 드라마 미생에서는 주인공 장그래가 입사했을 때 단어장 같은 작은 노트 한 권을 받게 된다. 무역 회사이니 무역과 관련된 전문 용어들을 알아야 하고, 용어를 모르면 일 자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그래는 무역 용어들을 달달 암기해서 극 중 상사였던 김대리한테 칭찬받는다.     


 사실 업무 용어는 시간이 얼마든지 해결해줄 수 있다. 대충 앞뒤 맥락에 맞게 이해하면 의미를 유추할 수 있고, 팀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하나둘 이해하게 된다. 그럼에도 용어집이 필요한 건 여러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작은 기업일수록 곧바로 실무에 투입되기 때문에 당장 일을 하려면 업무 용어를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어집을 만들지 않으면 대충 문맥만 파악해서 알아들은 부정확한 의미로 기억하게 된다. 일에 욕심을 내서 빠르게 적응하고 싶으면 용어집을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이전에 이미 가볍게 다룬 적 있는 주제이긴 하다. 클릭)



조금 더 현실적으로 용어집이 필요한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 암기해야 써먹는다.

 단순히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하기만 할 게 아니라, 내가 발언하고, 내가 업무에 써먹으려면 외워야 한다. 언어를 공부한다는 건 그 표현에 담긴 개념과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고, 일을 할 때 그 개념과 의미를 써먹을 수 있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예가 ‘레버리지(Leverage)’라는 단어인데,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남의 노력을 통해 나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레버리지라는 단어를 알기 전에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한다는 생각 자체를 잘 못 했다. 예를 들어 보고서를 처음 작성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쓸지 몰라서 도움을 요청했었다. 누군가는 그냥 ‘이전에 있던 거 보고 써’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비슷한 일로 다른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이전에 있던 자료 레버리지 해’라는 답을 들었다. 그냥 기존에 있던 거 보고 쓴다고 생각했을 때는 ‘역시 이 회사 체계가 없어’라고만 생각했는데, 레버리지 단어로 표현하니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기존의 자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자료, 다른 사람의 노력 등등을 활용해서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항상 신경 쓰게 되었다. 이번 책의 내용들도 전부 그러한 맥락에서 떠올리게 된 노하우들이다.     


 단어를 대충 맥락만 이해하고 넘어갔다면 ‘레버리지’라는 단어의 뜻과 의미에 대해 몰랐을 것이다. 용어집을 만들어서 단어에 담긴 개념과 의미를 공부했기에 경험치를 더 많이 얻었다고 생각한다.    



 

2) 무엇을 모르는지 더 찾기 위해서다.

 그냥 앞뒤 맥락만 듣고 이해하면 나중에 같은 단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고 있을 수 있다. 특히 똑같은 용어라도 각 회사마다 쓰는 맥락이 다를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 회사에서는 Lean하게 일하라는 게 ‘효율적으로 일해라’는 것일 수 있고, 저 회사에서는 ‘가설을 설정하면서 일해라’는 것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인데 업무 지시를 잘못 알아듣게 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용어집을 따로 만들어놓으면 평소에 대충 이해하고 넘어갔을 단어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나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다.     


 또한 용어집을 따로 만들어놓으면 항상 ‘모르는 단어’를 주시하게 된다. 내가 잘 모르는 단어가 들려왔을 때 무의식적으로 곧장 ‘용어집에 정리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내가 모른 채로 지나갔을 지식들도 습득하게끔 이어진다. 노트에 이쁘게 정리하려고 용어집을 만드는 것은 분명 아니니까.




3) 시간을 정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


 다들 바쁜 와중에 매번 사소한 질문, 하나하나 물어보기는 어렵다. 회의 도중에 모르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옆사람에게 속닥속닥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직 친하지 않은 조직 안에서 바쁜 얼굴의 팀원에게 무언가 물어본다는 건 생각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1년 이상 근무했을 때에도 ‘나 무지막지하게 바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동료에게 뭔가 질문하거나 부탁하는 건 꽤나 부담된다. 그러니 궁금한 게 있다면 최대한 정리해서 업무에 방해가 가지 않도록 물어보는 게 배려이기도 하다. 특히나 업무 용어 같은 사소한 내용들은 굉장히 사소하기 때문에 나의 경우엔 출근한 직후나, 점심시간, 퇴근할 즈음에 몰아서 물어보곤 했다.          




구체적으로 용어집은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는 게 좋을까?     



Tip #1. 모든 팀원이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툴을 활용한다.

 입사 초기에는 용어집을 만들지 않고 매일의 업무 리스트를 정리할 때, 모르는 용어가 있으면 한글 파일에 적어놓으면서 필기하곤 했다. 그렇게 하니까 모르는 용어가 점점 많아질수록 이전에 적어놨던 용어 뜻을 복기하려고 찾아볼 때마다 파일을 한참 뒤적이게 되었다. 그래서 용어집을 따로 파일로 만들어 관리하기 시작했다.  

   

 용어집도 처음엔 혼자서 엑셀 파일에 만들어 정리했는데, 나중에는 팀원들 모두가 볼 수 있고, 수정할 수 있도록 구글 스프레드 시트로 옮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팀원마다 단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달랐기 때문이다. 오래 일한 사람들끼리도 똑같은 단어인데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도 모르는 용어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모두 볼 수 있는 용어집을 만들어서 표현들을 정리했다.     


 또한 용어집에 내가 모르는 용어들을 적어놓고, 그 뜻은 팀원들이 대신 작성해주기를 부탁했다. A라는 단어에 대해 각자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에,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있거나 쉽게 뜻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한테 설명을 듣는 게 제일 좋다. 그래서 팀 전체에 용어집을 공유하고 같이 작성하기를 요청한 것이다.     




Tip #2. 용례(사용 예시)를 같이 적는다.


 용어의 뜻만 적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는 표현들도 같이 적었다. 용어집을 만드는 이유가 결국엔 실무에서 써먹으려고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용례를 적어두면 이해가 빠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용어 개념이 완전히 생소하거나, 생소한 용어들이 많을수록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용어가 사용되는 용례를 적어두면 전후 맥락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다음으로 들어오는 신규 입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Tip #3. 전사적으로 통일된 용어를 사용하여 브랜딩 한다.


 처음엔 모르는 용어들을 공부하기 위해 용어집을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사업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다녔던 스타트업에서는 ‘Early-stage’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는 창업가를 대상으로 교육 및 지원하는 스타트업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창업 초기의 Early-stage의 창업가들을 타깃으로 했다. 그런데 Early-stage라는 단어를 누군가는 ‘창업 런칭 이전 단계’로 사용하고, 다른 누군가는 ‘창업 런칭 후 초기 1~2년까지’로 사용했다.


 조직 외부에 드러나는 표현인데 여기서 말하는 뜻과 저기서 말하는 뜻이 다른 것이다. 혹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전략적으로 A라는 단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거나 깜빡한 누군가가 A라는 단어를 계속 썼던 적도 있다. 그래서 전사적으로 계속해서 바뀌는 용어 사용에 대해 공동의 ‘용어집’을 만들어서 최신 버전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Tip #4. 상황에 맞게 사용한다.


 스타트업마다 상황이 다르다. 굳이 용어집을 만들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용어집을 만들기엔 전문 용어들이 너무 많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각자 상황에 맞게 적용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IT 스타트업에서는 용어집을 만들기가 어려웠었다. 왜냐하면 그로스 해킹이나 프로그래밍 용어들이 너무나 많아서 하나하나 용어집을 만들기엔 공부할 게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IT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직군에 있었던지라 용어집을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그들 직군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필요한 용어들만 선별해서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다면 '클릭'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 기본적으로 쓰이는

업무 용어 8가지를 정리해보았다.

 언어에는 힘이 있다. 그 언어에 담긴 개념과 맥락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업무적인 용어들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에서는 특히 영어 표현들을 많이 쓰는데, 그 표현 안에 담긴 고유한 개념과 맥락, 뉘앙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업무 용어들을 익힌다는 건 그 안에 담긴 철학, 사고방식을 체득한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주니어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용어들을 8가지 정도 정리해보았다.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직장인이  알아야  업무 용어 8가지(클릭)"


  용어집을 만들고 공부하는 게 마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했던 방법 중에 효과가 있었던 것일 뿐이지 상황에 따라, 사람마다 각자 자기 방식에 맞는 방법이 있다.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했구나' 정도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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