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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화 Jun 24. 2020

[이를테면 알로에 수딩젤 1+1의 방식으로]

<여름을 맞이 하는 나만의 방법>

인사도 없이 벚꽃 흩날리듯 떠나버리는 봄과 달리 여름은 나에게 미각과 촉각으로 강렬한 자극을 주는 계절이다. 피부를 보호해주던 옷 길이가 짧아지고 과감하게 드러난 나의 살들을 두 눈으로 마주해야 하는 가혹한 계절. 그렇다 여름이 온 것이다. 


사실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었다고 내 삶의 방식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계절은 이렇게 때가 되면 알아서 착착 변해주는데 쉽게 변하지 않는 내 몸뚱이와 마음에 따가운 질책과 푸념이 쌓일 뿐. 그래서 ‘여름’은 특히 나에겐 더 따가운 계절이기도 하다. 아니 더 ‘가려운 계절’이라고 해야 맞으려나? 태양을 피하고 싶었지만 ‘에라 모르겠다’였던 지난여름들을 곱씹어 보니 나의 여름, 그 시작과 끝을 함께해주는 것이 하나 있긴 있다. 그것은 바로 ‘알로에’.


생 알로에는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브랜드 제품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쓰는 알로에 제품은 쨍한 초록색 플라스틱 원통에 담긴 아주 저렴한 제품인데 이해를 돕기 위에 뷰티 블로거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드숍 알로에 수딩젤> 또는 <저렴이 버전 알로에 수딩젤> 정도 되겠다. 아마 제대로 된 소비요정이라면 한 통씩 사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너무 착한 가격에 반하고, 꾹꾹 눌러 담은 짐승용량에 홀린 듯 쟁여두고 보게 되는 나의 사랑 알로에 수딩젤! 그래, 그러고 보니 나는 수년째 알로에 수딩젤을 사는 걸로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초록색 원통의 알로에 수딩젤로 여름을 맞이하는 데는 남모를 아픔이 있다. 아니 남모를 ‘가려움’이 있다. 매년 여름 나를 찾아오는 이 가려움은 ‘햇빛 알레르기’란 진단명으로 20년 넘게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왜 이런 피부병을 앓게 된 건지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심할 땐 피부과에서 먹는 약과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아 발라야 할 정도로 너무 가렵다. 특히 이 가려움은 헤어진 남친들이 자냐고 문자를 날려대는 시간대와 비슷하게 찾아오는데 비몽사몽 침대에 앉아 양팔을 벅벅 긁어 대는 내 모습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가끔은 가려움과 열대야가 쌍으로 찾아와 짜증지수를 높이는데 그런 날엔 사진첩에 박제된 이십 대의 여름을 데려와 손가락으로 더듬어 보곤 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위아래만 가린 채 웃고 있는 저 여성이 진정 나란 말인가? 저 날 밤에도 엄청 긁어 댔겠지...' 너무 낯설어서 삭제를 누르려다 추억이란 포장지로 덮어 두고 나오길 여러 번. 맞아, 20년 넘게 ‘햇빛 알레르기’를 앓고 있지만 나는 무모할 만큼 여름을 즐겼고 가려움 보다 핫 한 여름에 늘 정신이 팔려있었다. 후회라는 스위치는 늘 새벽에만 작동하니까.


하지만 매년 여름 태양에 맨살을 제물로 바치면서 피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운명처럼 만난 초록색 원통의 알로에 수딩젤을 사대기 시작했다. 선호하는 로드숍 브랜드도 없고 비슷한 가격에 원통이면 일단 오케이. 제주도에서도 다낭에서도 나의 여름에는 늘 함께 였다. 뜨거운 태양을 실컷 흡수했으니 알로에 수딩젤을 듬뿍 펴 바르며 내 마음의 죄책감을 진정시켰다. 덕분에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부담 없이 맞이 할 수 있었던 걸까? 남극에 가서 펭하를 외치지 못할 바엔 냉장고에서 쿨링 효과를 높이고 있는 저 초록색 원통이면 충분하다고 위로하면서...


사실 이런 위로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태양을 피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 한가 매일 죽음을 향해 걸으면서도 우리는 매일 산다고 말하는 것처럼 여름의 태양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수밖에. 그리고 묻고 싶다. 누가 여름을 피할 수 있냐고? 화려한 태양이 나를 감싸는데 무슨 수로 태양광선을 피할 수 있냐고? 


물론 전혀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는 여름용 카디건이나 긴 팔 옷을 입기도 하고 자외선 차단지수가 최고라는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라 철벽방어를 하는 날도 있다. 운전할 때는 양 팔에 쿨토시를 착용해 요즘 김신영이 부캐로 활동하는 둘째 이모 김다비처럼 패션을 완성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다 귀찮아져서 결국 여름에게 맨살을 내주고 만다. 그 어느 계절보다 시원하고 가려운 추억들을 알차게 쌓으면서... 


한때 아주 잠깐 미백과 재생효과가 탁월하다는 달팽이 크림으로 자발적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름의 너 '알로에 수딩젤'. 그래, 여름이 반품 가능한 택배는 아니니까,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여름은 됐고, 난 가을!' 계절을 간주 점프할 수는 없는 거니까 나는 올해도 내 방식대로 여름을 맞이한다. 알로에 수딩젤을 1+1 기획 상품으로 미리 쟁여 두고 뿌듯한 마음으로. 가려움 따위 그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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