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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화 Jul 08. 2020

[어제의 너에게]

<나를 사랑하는데 실패하는 내가>

너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너 자신을 만났고 네가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렸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가장 큰 기쁨이자 행복이었고, 거의 불가능한 책임 없는 자유도 누렸을 테지. 수많은 새벽을 깨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네 삶이 외롭진 않았을 거야. 내가 알기에 넌 스스로 고독을 찾는 편이니까.


칭찬에 목말라 작은 손으로 머리를 묶기 시작했지. 철이 빨리 들었다는 말도 들었을 거야.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던 건데 스스로 머리를 묶게 되면서 어린냥은 남의 것이 되었지 겨우 예닐곱이었어. 엄마가 묶어 줬냐고 물어 볼만큼 손끝이 야무졌던 . 딸을 낳아 보니 너무 어렸던 네가 보이더라.


서로를 사랑하느라 오늘을 살아내느라 지친 두 사람에게 너는 가을 하늘 아래 만개한 꽃밭이었을까? 두 사람은 모를 텐데 나는 알아. 너는 철 모르고 핀 국화꽃이라고 오랫동안 너 자신을 방치했잖아. 이 세상 모든 싸움이 내 탓이라며 너를 미워했잖아. 수많은 것들과 너를 비교하고 한 없이 끌어내렸지.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만개하지 않아도 꽃 피우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일 줄 몰랐어. 상처 받고 상처 줬지. 안아줘야 했는데.


그러고 보니 수많은 억울함에 네 편이 되어 주지 못했어. 미안해. 어릴 땐 무서웠고 커서는 못 본 채 했어. 모두 네 탓이 아니야.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갖는 건 죄와 벌에 가까워. 훗날 다 털어놓는 날이 오면 많이 울자. 사는 게 별 거 없다는 걸 너도 느끼고 있잖아.


말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꽤 오랫동안 일로 쓰느라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써보지도 못했지. 그마저도 잘 타고난 사람들을 부러워만 했어. 무식이 탈로 날까 벌벌 떨고 잘하고 싶으면서 감추고 속이는 게 일상이 된 거 같더라. 네 능력의 한계치를 모르면서 너를 과소평가했지. 어떤 결핍은 대놓고 말할 자격을 박탈해 그래서 너는 쓰기로 한 거야. 이제 네 엉덩이를 믿어봐.


거울을 자주 보고 사진을 찍어 둬. 너의 얼굴, 너의 몸. 시간만큼 부족하지 않게 가졌으니 소중하게 아껴야 해. 무엇보다 너는 엄마이기도 하니까. 억눌렸던 감정을 터트리는 것보단 그때그때 푸는 게 건강에 좋아. 체력이 곧 정신력이라는데 네가 앓는 많은 병들이 네 생각에서 기인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해. 그러니 많이 웃어.


내가 나를 사랑까지 해야 하나 아직도 모르겠지?

네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패하고 무너져도 너는 너를 사랑해야 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너는 괜찮은 사람일 테니까.


모두 처음 태어나는 이 별에서 먼저 살다 간 *포프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은 것'이라고 했어. 신해철이 한 말도 늘 기억하고 살아 '태어난 것으로 이미 소임을 다했다'  


네가 네 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너 자신을 사랑하게 되길 그렇게 되길_

실패하더라도

그런 삶을 사는 너를 사랑하게 되길_






*알렉산더 포프  <인간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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