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쇼핑>
마음이 어지러우면 청소를 한다. 온 마음을 먼지에 집중시키고 집안 곳곳을 누비다 보면 희망사항으로 접어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동경이 맥주 거품처럼 넘쳐흐른다. 세 식구 사는데 무슨 짐이 이렇게 많을까? 청소와 동시에 오늘은 '다 버려야지' 다짐해 본다. 방과 방을 오가며 곤도 마리에가 알려준 방법으로 설레지 않는 물건들을 찾아본다. 시기가 지난 육아용품, 작아져버린 청바지들, 유행이 지나버린 옷무덤, 그 앞에 서 있으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버리기엔 멍쩔한데? 당근에 올려봐? 여러 생각이 스치지만, 갑자기 소환된 추억여행을 끝내면 버려야 할 짐에서 설레는 물건들이 된다는 게 함정이다. 그리고 정리를 마치면 정작 버릴 게 없다는 게 미스터리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일까? 무언가 사는 일에도 신중해질 때가 많다. 내가 정해둔 한도 금액을 넘으면 오래 고민한다. 가격비교는 기본 더 저렴하게 살 방법을 궁리하며 장바구니에 고이 담아두다가 세일 기간을 놓치거나 품절되는 경우는 다반사. 많아야 돈 만원 차이라며 실용주의 남편의 기회비용 어쩌고 기름값이 저쩌고 북 치고 장구 치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지만 나는 쉽사리 결제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그러다 큰 맘먹고 고심 끝에 장만한 것들도 있다. 고가의 무선청소기, 50만 원이 넘는 드라이기, 안 쓰는 기능이 더 많은 맥북프로까지 3년 넘게 잘 써오고 있는 것들이지만 다른 제품을 샀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의문이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더니 가성비, 가심비 뭣 하나 딱 맞게 떨어지는 소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제품이 나빠서가 아니다. 프로 제품을 쓸 만큼 프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고민한 만큼 단점은 더 크게 느껴지고 수많은 장점은 기본이 된다. 젠장할 쓸 때마다 본전 생각이 난다면 그야말로 실패한 쇼핑 아닐까...그렇게 고민했는데 고민한 시간이 아깝다며 놀려대는 남편 때문에 오기로 질러 본 쇼핑리스트들이 수두룩 그나마 저렴한 건 버리기라도 쉬워 정리라도 할 수 있지. 쓸모를 잃은 지 한참이지만 본전 생각에 짐으로 남은 것들을 볼 때면 애초에 나에게 미니멀 라이프가 사치였던 것 같다.
버려야지 하면서 이고 지고 사는 게 살림이라던 엄마의 푸념이 점점 이해가 된다. 그래도 엄마는 나보다 나은 것 같다. 10년이 넘은 드라이기로 미용실 선생님 뺨치게 뽕을 살리고 20년 넘게 같은 그릇을 쓰면서도 새것처럼 윤이 나게 관리할 줄 아니까. 내 눈에는 쓰레기 같은 것들도 쓸모 있는 것들로 살아 있게 하니까. 나는 언제쯤 내가 산 물건들에 만족할 수 있을까? 나의 쇼핑이 거듭 실패하는 이유는 결국 돈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