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그랬다
가을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계절이라고.
그 시인을 모르는 내 할아버지는
마당을 국화로 가득 채우고
모자라 한 생명마저 꽃처럼 피어나길 바랐다.
나를 눈에 넣고 시들지 않기를 소원했다.
오래된 가을날
연장을 이고 막일을 가면서
허공에 못 질을 하고 일당을 받으면
내게 주겠노라 자신의 검지를 내밀었다.
다섯 손가락 다 펼쳐 잡아도
내 할아버지 검지는 정말 크고 단단했다.
짧아진 해를 등지고
어둠이 철문을 밀고 들어오면
내 할아버지가 먼지를 털어내며 나를 불렀다.
우물가에서 새카만 손을 씻고
더 단단해진 손으로 부스럭거리는데
그날은 박하사탕 두 개가 일당의 전부였다.
막일을 다녔지만 꽃을 사랑했던
내 할아버지의 두 눈과 박하사탕이 나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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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월 이일에 알았다
내 할아버지 눈이 사막이라는 것을.
올해 심은 국화는 폭우에 떠내려가고
윤기라곤 없는 주름만 가득한 손으로
나를 만지고 만지는데 정작 시드는 건 내 할아버지.
내 할아버지는 아직도 그 시인을 모른다
그런데 올해는 그 시인처럼 가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어느 계절에도 지지 않는데
액체라곤 없을 것 같은 몸에서 눈물을 쏟는다
나를 넣었던 두 눈으로 약속은 잊은 채로.
이제 나는 안다
내 할아버지가 죽으면
그렇게 좋아하던 국화를 국화가 놓는 셈이 되는 걸.
어느 계절에 할아버지가 죽더라도
나는 오래도록 화환이 될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