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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화 Nov 29. 2020

어떤 의미

쓰고 읽는 삶 - 숙제 1


하이 아만다.

여긴 바람이 엄청 차가워졌다.

케언즈는 한없이 뜨거워지고 있겠지.


용감하게 불러놓고 날씨 운운하는 내가 스스로 참 구식이다 싶은데 너라면 이런 나를 이해해 줄 테니 양손 엄지에 힘을 실어 자음과 모음을 이어 본다.

겨울을 먼저 보낸 너에게. 여름을 살고 있을 너에게. 지나가버린 겨울을 이야기하려니 뭔가 영화 같다. 물리적인 거리감과는 조금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네. 너에게 이 계절 바람의 온도와 질감을 어떡하면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갑자기 계절이나 운운했던 내가 괜찮아 보이고 그러네. 크크. 내가 이리 가벼운 사람인 거지.


한동안 정리되지 못한 상념들로 잠을 설쳤어. 발목을 다치고 좀 우울했던 것 같기도 하고. 좋아하는 시집을 펼쳐 놓고 소리 내 읽어봐. 보이는 마음. 써야 하는 마음. 쓰인 마음. 읽어야 하는 마음. 읽힌 마음. 들킨 마음. 그 수많은 마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잘 쓰고 싶은 마음. 쓰는 행위 자체의 만족. 무엇이 우선일까?


우리가 쓰기와 읽기에 대해 정말 많이 이야기하잖아. 좋은 나. 나은 삶. 이상이 거기에 있다고 믿으면서 그렇게 쓰기와 읽기 예찬론자처럼 말하는데. 요즘은 어딘가 모르게 허무하고 답답한 기분이 내 몸안 가득이네. 그래서일까 글쓰기 모임에서 내가 제일 게을러. 하다만 숙제는 작가의 서랍에 넣어놓고 열쇠를 잃어버린 척해.


게으른 나를 자책하다 "안 쓰면 어때? 안 읽으면 또 어때?" 달랬다가. 부지런한 사랑으로 쓰고 읽어내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러워서 안 보고 싶은 마음 알지? 차라리 안 보는 게 속 편한 거. SNS 알림을 꺼두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테고. 무서운 거지. 무관심으로 포장한 진심이 들통날 때. 내 사유의 속도나 방향을 잃게 될까 봐 부지런한 누군가를 따라 하게 될까 봐.


타고난 재능은 인정하면 그만인데 나는 막연히 부지런한 사람이 너무 부러워서 닮고 싶고 뺏고 싶고 그렇다. 부지런히 과정을 이겨내는.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감히 따라 하지도 못할 거면서 욕심만 나.  막연히 부지런한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라 인정해야 하는데 왜 부러운 걸까? 단단한 마음과 자세 책임지는 태도 이런 거 내 핏속에는 없는 걸까? 이런 것도 유전일까? 늘 입으로만 약속하는 내가 싫다. 아휴 너무 싫어라. 나를 사랑하겠다던 약속도 말뿐이어라. 말만 잘하지. 입만 살았지.


올해가 시작됐을 땐 너랑 여러 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때만 해도 많은 약속을 할 수 있었고 열정과 의지가 다분했는데. 지켜내지 못한 게 거의 전부네. 서로 다른 계절에 산다는 것 마저 낭만으로 느껴지던 봄에는 더 많이 쓰고 많이 읽자고 다짐했었는데. 나는 올해도 나를 넘지 못하고 도움닫기만 하는 중이야. 여전히 궁금해. 보이는 글. 읽히는 글. 써야만 하는 걸까? 아직도 감추고 싶은 게 많은데. 슬픔을 들키는 건 여전히 창피한데. 그냥 재미있는 사람이고 싶은데.


올해도 만삭이야 곧 새해가 태어날 테지. 한 해가 이렇게 가버린다고 하니 나를 자책하는 마음들만 뭉치고 뭉쳐 미운 눈사람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아. 쓰고 읽는 삶이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푸념 아니면 질문만 하는 이 편지의 지은이. 송사리.




늘. 고마워.

또 쓸게.





#편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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