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크고 작은 동네를 지나다 보면 묘비가 모여있는 cemetery, memorial park 등을 마주하게 된다. 그곳의 무덤들은 평평하고 묘비만이 불쑥 솟아있어, 볼록하게 솟아오른 한국의 무덤과는 분명히 다르다. 우리나라의 봉긋한 무덤은 몸은 땅으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둥근 하늘로 올라간다는 믿음에서 하늘처럼 둥글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군데군데 박물관이나 공원 벤치나 건물 같은 여기저기에 떠나 간 이들의 이름을 남겨 놓기도 하는데, Memorial Donation/Bench라고 불린다. In loving memory of와 같은 문구와 고인의 이름과 살다 간 기간을 간결히 남기기도, 한두 마디를 덧붙이기도 한다. 떠나간 이의 자리를 대신하 나무를 키워나가는 수목장은 한국에서도 종종 보인다.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을 생활반경 밖으로 따로 모아둔 한국과 다르게, 미국에서는 조금 더 일상 속에서 죽음을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느낌이다.
역사 공원 기념비 속에 담긴 빽빽한 이름들을 보며, 이 몇 글자 이름조차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념비 밖의 사람들을 생각해 봤다. 몇십 년 몇백 년 후에도 회자될 3.1 운동에 제 한 몸 바쳐 독립을 외치다 군중 속에서 사라진 사람, 자유와 평등을 위한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싸운 누군가의 가족이자 자식이었을 사람, 반복되는 자신만의 삶 속에서 평화롭고도 변화무쌍한 일상을 살다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지금의 내 삶에서는 이리도 다채롭지만, 지나고 나면 한낱 점에 지나지 않는 과거의 아무개로 지나가겠지.
서로 같아도 서로 달라도 투쟁은 인류 역사에서 크고 작게 끊임없이 반복된다고 하지만, 다수와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은 필요하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이 짧은 인생 좀 더 평화롭게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 싶다. 아무개로 잠시 살다가는 것도 아쉬운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 편히 살다가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세상을 떠난 자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면, 각자 또 이야깃거리가 많을 듯하다. 한국에는 같은 조상끼리 집안의 산에 함께 묻히는 선산 문화가 있다.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묘를 햇볕 잘 들고 터가 좋은 산에 모시면, 대대손손 자손들을 내려다보시고 앞날을 지켜주시리라 믿으며 성묘를 가고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미국은 이렇게 산을 통째로 쓰지는 않더라도, 공동묘지 내에서 가문끼리 모아두는 가족 전용 구역, 개인 납골당 등을 활용한다고도 한다. 물론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든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인 힘이 없는 사람들은 그 경우가 달랐을 것이다.
이렇게 함께 모여 묻힌다면 그들이 다른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긴 한 걸까?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이라면, 훗날 나의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만나 뵙고 싶다. 저는 이렇게 살아왔었고 그동안 여러 번 보고 싶었다고. 그리고 살아계실 때 조금 더 듣지 못했던 당신들의 삶에 대해 더 듣고 싶었다고.
지금 내가 책상에 편히 앉아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떠나간다. 이름에서 시작하여 삶과 죽음에 대하여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의 끝은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소중히 하며 잘 살아야겠다로 귀결되었다.
이야기 씨앗: Commemorative Benches and Trees https://fairfaxparkfoundation.org/our-projects/sponsor-benches-and-tre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