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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남편연구소 Dec 06. 2019

웹툰<송곳>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명작의 언저리에서 결혼을 외치다

웹툰 <송곳>은 한국사회에서 오래된, 민감한 노동문제를 다뤘습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지만 아쉽게도 만화처럼, <미생>처럼 흥행하진 못했지요. 이 만화는 사회 곳곳에 숨겨진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를 잘 다뤘습니다. 어느날 노무사 고구신이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현실의 부당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죠.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사람을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강렬하고, 아프고, 현실적인 말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어른, 입대 전엔 우습게만 보였던 군인, 결혼 전엔 답답하게 보였던 기혼자들... 막상 제가 그 자리에 가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더군요. '절대'라는 말은 '절대' 쓰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본가에서는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어머니께선 바로 설거지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 싱크대는 항상 깨끗했습니다. 잠들기 전엔 아버지께서 거실을 한번 걸레로 훔치셨습니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 거실은 항상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 출근 전에 싱크대에 어젯밤에 먹은 과일 접시가 놓여있고,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거실 정리가 끝이 없더군요.


퇴근하면 거실을 정리하고, 싱크대를 살펴보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당신이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것을 안다. 나도 열심히 치울 테니.. 제발 잠들기 전에는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아내는 노력하겠다고 대답을 했지만.. 늦게 자고, 활동적인 따님 덕분에 깔끔한 잠자리 만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어질러진 거실을 놔둔 채 소파에서 책을 읽는 저를 보면서 아내가 '오빠도 좀 변했네'라고 하더군요. 언젠가는 다시 깨끗한 거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저도 어쩔 수가 없더군요. 그런데 재밌는 건 요즘엔 아내가 저보다 더 잘 치우고, 열심히 청소한다는 겁니다. 하하..


살다 보면 그때 상황에 맞춰 살게 되는 부분이 많더군요. 부모님과 살 때 보다 집은 작아지고, 성인들이 살던 집과 아이가 사는 집은 달라지고, 살림을 꾸려가면서 자신만의 취향과 기준이 생기게 되고.. 어떤 기준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지만 기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피했으면 합니다. 기준보다 관계가 중요하니까요.


Small things often.


* 딸 아이에겐 소파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지만.. 아빠에겐 정리되지 않은 소파였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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