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조각
유독, 그 분과 이야기 하고 난 후엔 이상하게 속이 답답해지면서 잔잔하게 화가 끓어올랐습니다. 오늘 10분간 그분과 통화를 하고 난 후에도 똑같은 증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서로 언성 높여 싸우거나 그분이 제게 기분 나쁜 말을 해서 그런 건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밖으로 나가 씩씩 거리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예전엔 어떤 이유든 기분이 나빠지면 나를 기분 나쁘게 한 상대방이나 환경을 탓하곤 했습니다만, 요즘은 저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는 편입니다.
'왜 이렇게 기분이 나빠? 왜 이렇게 속이 답답한 거지??'
한참 혼자 중얼거리며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화가 나고 답답한 만큼 발걸음은 빨라지고 숨은 가빠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 분하고 이야기할 때, 저도 모르게 많이 긴장한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그분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화할 때 '이런 말을 하면 상대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와 같은 반응과 대답을 기대하는 편인데, 그분은 저의 이런 기대에 전혀 부응해주지 않으셨어요. 통상적인 생각으론 A라는 반응과 대답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A'도 아니고 생각지도 못한 생뚱맞은 M의 반응이 나온다고 해야 할까요.
뭔가 소통이 안된다, 핀트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그분의 예상밖 반응과 대답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예상되는 범위 안에서 순조롭게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과 답정너의 마인드 때문에,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투정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말입니다.
아님 제 화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제 의도를 전달하지 못해서 그런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어요. 어찌 되었든, 그분은 그분 나름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하고 계시니 제가 화낼 일은 없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결론이 이런 지점까지 오면 참 머쓱해집니다.
'내 생각이 맞다, 넌 틀렸다'에서 시작된 답답함과 분노, 미움과 원망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하나라도 알기만 하면 이렇게 머쓱해질 정도로 상당 부분 해소가 됩니다. 갑갑하게 엉켜있던 실타래가 한 번에 풀려서 상쾌하고 가벼운 느낌이 들어요.
일제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이라는 그 말이 오늘도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