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Eyes Crying in the Rain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울면서 헤어지지만 웃으면서 만나요

Sung by Olivia Newton John


In the twilight glow I see you/ 타오르는 황혼 속에서 그대를 봅니다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빗속에서 울고있는 슬픈 눈동자

When we kissed goodbye and parted/ 우리가 이별의 키스를 하고 헤어질 때

I knew we’d never meet again/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란 걸 알았어요



이 곡을 들으면 중고딩 시절, 밤에 자주 들었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가 떠오른다. 이종환 아저씨가 매력적인 저음으로, 이 곡의 음조에 맞춰 가사를 읊조리곤 했다. 노래를 부른 남자 가수로 윌리 넬슨 버전이 있지만, 당시 어마어마한 미녀였던 올리비아 뉴턴 존 버전을 나는 더 좋아했다.


아마도 제목의 ‘푸른 눈동자’(blue eyes)라는 색채감과, 그 푸른빛이 빗속에서 더욱 처연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시각적 효과가, 아름다운 올리비아의 두 눈과 어울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blue’는 ‘우울한’이라는 뜻도 있으니만큼 ‘슬픈 눈동자’로 해석해본다.


이 곡은 비 내리는 날 이별의 키스를 나누고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화자는 황혼녘의 불타는 하늘을 보면서 이미 헤어진 연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연인은 뒷자락 나풀거리며 산뜻하게 떠난게 아니라, 빗속에서 울면서 떠났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연인은 울면서 떠나갔고, 화자는 마지막 모습을 지금껏 잊지 못해, 황혼녘만 되면 그를, 혹은 그녀를 그리워할까.


빗속에서 울면 눈물과 빗물이 뒤범벅되어 슬픔은 이스트 효과로 마구 부풀어 오른다. 슬펐던 이별 장면을 떠올리며 화자는 지금 황혼녘 하늘을 보고 있다. 짧지만 아름다운 황혼의 시간은 곧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어둠은 죽음을 상징한다. 짧기에 안타까움은 더없이 절절하다. 마치 우리의 화양연화가 그랬던 것처럼.




Love is like a dying ember/ 사랑은 꺼져가는 불씨 같은 것

Only memories remain/ 오직 추억만 남아 있지요

Through the age I’ll remember/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기억할 거예요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빗속에서 울고 있는 슬픈 눈동자를



누군가에게 사랑은 열정으로 피는 꽃이지만 화자에게 사랑은 꺼져가는 불씨이다. 안타까이 꺼져가는 불씨는 곧 재가 될 것이고, 사랑이 떠나면 남는 건 지난한 추억뿐이다.


아마도 연인은 죽음을 앞두고 있기에 이룰 수 없는 짧은 사랑에 눈물짓고 서둘러 떠난 것 같다. 연인들의 이별에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죽음 앞에서는 무력감이 최고치에 이를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는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인생의 난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었거나 언젠가는 겪게 될 숙명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난 후에는, 사그라지는 회색빛 재와 함께 추억만 덩그러니 남을 뿐이다. 눈물 흘리며 떠났던 그녀의 슬픈 눈동자는 화자에게는 화인이 되었다. 모든 감정을 체를 쳐서 걸러내고 난 뒤에도 차마 걸러지지 않은 앙금이 때로는 추억으로, 때로는 쓰라림으로,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으로 주저앉게 만들수도 있으리라.


추억은 세월 흐름에 빛바래고 잊혀지는 흑백사진 같은 것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도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비 온 뒤의 풍경같은 것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추석 명절이면 으레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냐고 닦달하는 친척분들을 피해서 같은 처지의 친구와 짧은 여행을 갔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 난감한 마음에 보이는대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마침 중년의 남자분이 차를 태워주셨기에, 우리는 쏟아지는 비를 탓하면서도 명랑유쾌 모드로 감사함을 표하였고, 그 아저씨는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슬픈 표정으로 애써 웃음을 만들고 있었다. 20년도 더 지난 젊은 시절에 세상을 떠난 연인이 생각나서 혼자 드라이브 나왔다는 말을 툭 던지면서.


그 일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았고, 가끔씩 이 노래의 주인공이 그 아저씨라는 생각을 했다.




Someday when we meet up yonder/ 언젠가 우리가 저 세상에서 만날 때

We’ll stroll hand in hand again/ 우린 다시 손에 손잡고 걷게 될 거예요

In a land that knows no parting/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영원한 저 세상에서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빗속에서 울고 있는 슬픈 눈동자



죽음 앞에서는 아름다운 추억도 눈물 맺힌 꽃으로 피어난다. 죽음은 순서의 문제일 뿐이다. 먼저 간 사람에 대한 충분한 애도와 더불어 보석같은 눈물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남아있는 몫을 살아내어야 한다. 진하게 두텁게, 그리고 아름답게!


수많은 이별 중에서 죽음이 가장 두렵고 황망한 것이리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남겨두고 떠난 연인도 가엾지만, 아직도 사랑하는 이의 눈물 고인 슬픈 눈동자를 기억하는 화자는 더욱 가엾다. 살아서 추억을 다 감당해내야 하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기에. 비 오던 날의 슬픈 이별은 이제 서랍 속에 넣어두라며 화자를 도닥여주고 싶다.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가, 문득 씁쓸한 커피 맛이 빗속에 스며드는 그런 날, 살짝 서랍을 열고 맘껏 기억하고 맘껏 울고나서 조금쯤은 후련해진 마음으로 또다시 자신의 삶을 견뎌보자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다며.


화자는 죽은 연인을 추억하는 한편, 먼 훗날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사랑을 이어가리라는 굳은 약속을 한다. 이 세상과 작별 인사를 고하는 날에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이 전쟁터 같은 삶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삶도 충분히 치열했다고 말하면서.


짧은 황혼 후에는 긴 어둠이 있지만 다시 새벽 동이 터온다. 자연의 이런 순환처럼, 우리의 삶 또한 죽음과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것이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 나도 죽고 나면 사랑 넘쳐나셨던 보고싶은 외할머니 품에 포근히 안겨도 보고, 아버지 만나서 모진 말 쏟아부었던 그 어느 날을 용서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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