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 of Silence>참 자아의 내면 목소리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The Sound of Silence>, 참 자아의 내면 목소리

Sung by Simon & Garfunkel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안녕 어둠, 내 오랜 친구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너와 다시 얘기하게 되었네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환상 하나가 살그머니 기어와서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내가 자고 있는 동안 환상의 씨앗을 남겼거든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머리 속에 심어졌던 환상은

still remains within the sound of silence/ 침묵의 소리안에 여전히 남아있어



이 곡은 화자가 어둠에게 “Hello!”라고 인삿말을 건네는 것으로 시작한다. 심지어 어둠을 “오랜 친구”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이분법으로 보자면 어둠은, 빛과 대비되는 개념이기에 부정적 뉘앙스로 오해받기 쉽다.


이분법적 사고는 빛과 어둠, 문명과 원시, 남성과 여성 등 양극단의 쌍을 설정해 두고, 전자는 긍정의 속성으로, 후자는 부정의 속성으로 이데올로기화시키는 방식이다. 이것의 폐해는 너무 커서,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배에 정당성을 제공해주었고, 남성우월적인 사고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빛과 어둠을 반대 속성으로 간주하게 되면 빛은 긍정적 요소가 되고 어둠은 부정적 요소로 각인될 위험성이 크다. 그러나 빛이 소중한 만큼 어둠 또한 소중하다.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는 환한 대낮보다는, 조도 낮은 어둠이 심리적으로 훨씬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도입부에서 빛이 차단된 밤에 화자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밤에 환상이 슬금슬금 기어와서 화자 마음속에 씨앗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화 속 그림 같은 상상력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환상 하나가 씨앗을 남겼고 그 씨앗은 밤의 고요 속에 침묵으로 남아있다. 씨앗은 싹을 틔우고 꽃도 피우는 법. 화자 마음속의 씨앗이 어떤 꽃으로 피어날지 자못 궁금해진다.




In restless dreams I walked alone/ 불안한 꿈 속에서 난 혼자 걸었지

narrow streets of cobblestone/ 자갈이 깔린 좁은 길을

'neath the halo of a street lamp/ 가로등 불빛 아래

I turned my collar to the cold and damp/ 추위와 습기 때문에 목 깃을 세웠어

when my eyes were stabbed/ 그때 내 눈이 찔린 것처럼 시렸어

by the flash of a neon light that split the night/ 밤을 가르는 네온 불빛으로 말미암아

And touched the sound of silence/ 그리곤 침묵의 소리를 건드렸어



이제부터 화자의 꿈 속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놓고 드러낼 수 없었던 정신 영역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된 영역에서, 평소와는 다른 자신과 진솔하게 대면하게 된다.


화자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꿈을 꾸면서, 가로등 불빛 아래 좁은 길을 걷는 모습을 스스로 지켜본다. 밤의 시린 추위와 습한 공기로 코트 깃을 세우고, 위를 한번 쳐다봤더니 가로등의 쨍한 불빛에 눈이 시려왔다. 꿈속이지만 현실의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캄캄한 밤이지만, 날카로운 네온 불빛에 환상의 씨앗이 발아되면서 침묵의 소리가 깨어난다. 무릇, 씨앗이란 물과 흙과 빛이 있어야 자라나는 법이지만, 화자의 환상 씨앗은 빛만으로도 화들짝 깨어난 것이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환상 씨앗은 침묵을 일깨웠고, 침묵 속에 잠겨있던 소리마저 깨어나게 만들었다. 침묵의 소리는 내면의 소리, 내면의 아우성이다.




And in the naked light I saw/ 내가 본 적나라한 불빛에서는

Ten thousand people, maybe more/ 수만명, 아니, 더 되었을거야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듣지 않고 듣는 사람들이

People writing songs that voices never share/ 목소리가 섞여들지 않는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

No one dared disturb the sound of silence/ 어느 누구도 감히 침묵의 소리를 방해하려 하진 않았어



적나라한 네온 불빛 아래 피어난 환상 씨앗은 곧 줄기가 되어 뻗어가고, 그 줄기를 따라 환상꽃이 피어난다. 화자의 환상꽃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송이송이, 수도 없이 많은 꽃으로 계속 피어난다.


그들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듣지 않고 듣는 사람들이다. 일상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넘쳐난다. 말하고 있지만, 알맹이 빠진 채 의미없는 말만 하는 사람들.


뒷담화이거나, 감정 소비만 해대는 내용이거나, 상대방을 미끼 삼아 자신의 축축한 감정을 말리기에 여념 없는 사람들. 감정을 말리지 않으면 곰팡이가 슬기에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 심지어 말하고 있는 자신도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듣지 않고 듣는 사람들 또한 못지않게 많다. 상대가 하는 말을 건성으로 듣거나, 자기 문제에 짓눌려 대화 중에도 연신 딴 생각에 골몰하는 사람들. 오죽하면 어른은 듣는 척하면서 안 듣고, 아이들은 안 듣는 척하면서 다 듣는다는 말이 정설이 될 정도일까.


또한 노래를 만들 때도 다양한 목소리가 잘 섞여 들어야 대중의 마음에 공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의식에 가득 차서 누구의 공감도 불러일으킬 수 없는, 넋두리 같은 노래를 만들게 된다. 실제로 욕설이 난무하는 노래도 있고, 남을 폄훼하는 곡도 있으며, 자신의 푸념만 늘어놓아, 듣는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노래도 있다.


노래를 만드는 자의 고민이 담겨있는 이 대목은 작사 작곡가인 폴 사이먼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주체에 대해, 통렬하게 성찰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흔적으로도 보인다.


어수선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침묵의 소리만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 침묵의 소리는 자신의 내면이 움직이는 진짜 소리이기 때문이다. 참 자아가 내는 내면의 목소리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이것은 신성에 가까운 소리이기에, 내면의 목소리야말로 곧 신의 목소리라는 인식과 맞닿아있다.




"Fools" said I, you do not know/ “바보들”이라고 난 말했지, 당신들은 몰라

silence like a cancer grows/ 침묵은 암처럼 자라난다는 걸

Hear my words that I might teach you/ 내가 당신들한테 가르쳐줄 수도 있는 말을 들어봐

Take my arms that I might reach you/ 내가 당신들한테 닿을수도 있는 팔을 잡아봐

But my words like silent raindrops fell/ 하지만 내 말은 조용한 빗방울 같이 떨어졌고

And echoed in the wells of silence/ 침묵의 우물 속에서 메아리쳤어



화자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엄청난 자아인식 단계로 들어간다. 각성의 단계에 이르게 되니, 아직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리석게만 보인다. 침묵이 암처럼 자라난다는 것은, 암이 재빨리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것처럼 침묵이 그려내는 환상 또한 그만큼 빨리 퍼져간다는 뜻이다.


자아에 대한 각성이 이루어지면 내면의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아직 자신처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일깨워주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화자가 하는 말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거나, 팔을 뻗어 조금이라도 화자를 잡으면, 기꺼이 자신의 내면 목소리 듣는 법을 알려주련만.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외면한다.


흘러내리는 작은 빗방울은 아름답다.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긋는 비정형의 선을 바라보노라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런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면 그냥 물이 되고 만다. 그렇듯, 화자가 일깨워주고 싶어 하는 의식의 고양된 상태, 자아의 내면 소리, 침묵의 소리도 빗물처럼 잘 스며들지 못하면, 그저 땅에 떨어지는 물에 지나지 않는다.


고양된 의식으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화자의 메아리는 우물 속에서 작은 동심원만 만들뿐, 누구에게도 스며들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And the people bowed and prayed/ 그리고 사람들은 고개 숙여 기도했지

to the neon god they made/ 그들이 만든 네온 불빛 신에게

And the sign flashed out its warning/ 그랬더니 표지판에 경고가 번쩍였어

In the words that it was forming/ 그 표지판이 만들고 있던 단어로

And the sign said, "The words of the prophets/ 그 표지판에 적혀있길, “예언자들의 말은

Are written on the subway walls/ 지하철의 벽에도 적혀있고

And tenement halls"/ 빈민층 아파트 복도에도 적혀있다"

And whispered in the sounds of silence/ 그리고 침묵의 소리로 속삭였지



화자는 종교라는 이름 아래 난무하는 허위를, 분별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리고 서양문화의 정신적 지렛대 역할을 해 온 기독교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화자는 신에 대한 경건함과 십자가의 네온 불빛을 혼동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현실을 짚고 있다. 신을 담고 있는 외양을 화려하게 빛낸다고 해서, 신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는 것이 아님에도, 본질보다는 포장에 더 치중하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다. 어떤 곳에서는 숫제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라.”라는 직설적인 문구가 밤의 어둠을 뚫고 유난히 반짝이기도 한다. 화자는 이런 점을 들어 외양보다는 본질에 치중할 것을 강조한다.


하다못해 지하철 벽에도, 임대 아파트 복도에도 예언자들의 말, 이를테면 요한복음 몇 장 몇 절, 마태복음 몇 장 몇 절의 보석 같은 경구들이 붙어있다. 그러나 그 깊고 오묘한 진리의 말들은 스치는 배경처럼 얼마나 휘리릭 지나가며 뭉개지고 마는가. 화자는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문구들이 마냥 소비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깃발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따라가는 삶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자신만의 깃발을 세울 수 있다면 침묵의 소리를 제대로 들은 것이리라. 자기 내면을 관조할 때 신성은 자기 안에서 침묵을 뚫고 나온다. 화자는 종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외양에 현혹당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문제삼고 있다.


침묵은 본디 소리 없는 것이지만, “안녕, 침묵, 내 좋은 친구여”(Hello, silence, my good friend)라고 말을 걸면, 자신의 내면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니 침묵을 침묵시키지 말고, 침묵에게 말을 걸어 침묵을 일깨워보자. 침묵은 묵상과는 다른 것이기에, 침묵의 소리를 듣고 난 뒤, 묵상 시간을 갖는다면 자기 안에 신성이 가득 차오름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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