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Have To Go> 빌런의 향기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Sung by Jim Reeves


Put your sweet lips a little closer to the phone/ 달콤한 입술을 전화기에 조금 더 가까이 대세요

Let's pretend that we're together all alone/ 우리, 종일 함께 있는 척 합시다

I'll tell the man to turn the jukebox way down low/ 종업원에게 음악 소리를 좀 낮추라고 말할게요

And you can tell your friend there with you, he'll have to go/ 그러면 당신은 거기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할 수 있을 거고, 그는 가야만 할걸요.



이 노래만큼 드라마틱한 가사가 또 있을까?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 작렬인데, 내용은 아침 드라마에서 김치로 귀싸대기 때리는 장면 만큼이나 막장이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지도 모르겠다. 달고나를 족히 30개는 넣고 돌린 듯한 달달 옴싹한 가수의 목소리에 속아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가사라고 오해하기 딱 좋다만.


자, 이렇게 연막을 깔았으니, 도대체 팝송에서 무슨 막장이겠냐면서도 의자 당겨 앉는 분도 있으리라. 막장은 자신의 문제만 아니라면 상대적인 쾌감 거리가 되기에, 대리만족의 효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는 욕먹을 각오 단단히 하면서 각본을 쓰고, 시청자는 욕하면서도 챙겨본다지 않은가.


이 노래에는 3인이 등장한다. 달달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를 가진 빌런, 빌런의 전화를 받고 있는 여자, 그리고 여자와 함께 있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삼각관계로 얽혀있다.


여자는 빌런을 만나기 전에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다 어찌어찌 빌런을 만나면서 삼각관계에 놓이게 되었는데, 정작 남자친구는 자신이 삼각관계에 엮여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빌런은 여자로부터 남자친구를 떼어내려고, 갖은 꼼수로 은근히 가스라이팅을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He’ll have to go>는 “그녀의 남자친구는 가야만 하리”라기 보다는, 문맥상 “이래도 지가 안 가고 배기겠어?”라는 뉘앙스를 띠고 있다.


두 사람이 통화를 하는 동안, 남자친구는 아무 것도 모른채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그녀 옆에, 혹은 그녀 앞에 앉아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빌런은 여자에게 수화기에 좀 더 입술을 가까이 대라고 말한다. 여자 친구가 누군가와 은밀한 통화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남자친구는 화가 나서 가버릴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빌런은 카페 종업원에게 음악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말하겠단다. 혹여 수화기 너머 음악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은밀함을 연출하는 데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빌런의 이 같은 용의주도함이라니. 본디 말보다 더 강한 게 분위기 아니던가?


따라서 “And you can tell your friend there with you, he'll have to go”는 그녀에게 “너와 함께 있는 네 친구에게 좀 가달라고 말해”라는 뜻이 아니라, 그녀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듯한 알쏭달쏭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면 그가 제풀에 꺾여 가고야 말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Whisper to me, tell me do you love me true/ 내게 속삭여주세요, 진정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Or is he holding you the way I do?/ 아니면 그가 당신을 안고 있나요, 내가 그러듯이?

Though love is blind, make up your mind, I've got to know/ 비록 사랑은 눈 먼 장님이라지만, 마음을 정하세요, 난 알아야만 해요

Should I hang up or will you tell him, he'll have to go?/ 내가 전화를 끊을까요, 아니면 당신이 그에게 말할 건가요, 그에게 이제 그만 가라고



이렇듯 여자가 수상한 모습을 연출했는데도 남자친구는 눈치 없이 안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센 레시피를 쓸 수밖에. 그리하여 다음 단계로 빌런은 여자에게 수화기에다 대고 사랑한다고 속삭일 것을 요구한다.


그런 한편 빌런은 되레 지금 남자친구가 여자를 껴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지가 그러니 남도 그런줄 아는 것인게지. 과연 빌런의 내로남불은 더블 옵션인듯.


급기야 빌런은 자기과 남자친구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가뜩이나 우유부단하고, 독립적이지 못해 질질 끌려다니는 멍청한 여자에게 자기가 전화 끊을테니 남자친구와 잘 해보시던가, 아니면 남자친구를 빨리 보내던가 양단간 결정을 하라고 독촉한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선택을 잘했더라면 삼각관계까지 끌고오지 않았으리라. 수화기를 붙잡고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해 불안한 동공이 마구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You can't say the words I want to hear/ 당신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거예요

While you're with another man/ 당신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동안은

Do you want me answer yes or no/ 내가 예스나 노로 대답하길 원하나요?

Darling, I will understand/ 그대여, 난 이해할 거예요



빌런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인, “이제 그가 갔어요, 달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없게 되자, 마지막으로 초강수를 두기에 이른다. 그것은 “내가 가리?”라는 말로 그녀를 강하게 흔드는 것이다.


“내가 가리? 아니면 그를 보낼래?”라는 마지막 선택을 여자에게 떠넘기면서 끝까지 젠틀한 척 하기는. 설령 여자가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라는 듯한 어정쩡한 태도로 멀뚱히 있다해도, 빌런은 그녀를 이해하겠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수 있을까. 어차피 빌런은 다른 녀석과의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목적에만 충실할 뿐이다. 참 열심히도 사는 빌런이다.


빌런이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보겠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쩔 줄 몰라서 애꿎은 전화기 줄만 손으로 배배 꼬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빌런의 작업 그물망에 걸려들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그녀가 답답하지만, 막상 빌런이 이런 류의 수작질로 올가미를 씌울 때 단박에 올가미 걷어 내고, 사태 파악한 뒤 발길질로 응징할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비단 이것은 빌런 남자와 순진한 여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거꾸로, 빌런 여자와 순진한 남자의 문제일 수도 있다. 막장 드라마는 같은 패턴으로 되풀이되는 뻔한 주제와 더 뻔한 전개로 참신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들어지는 것은 집계되지 않은 잠재적인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김치 싸대기 장면에서 애꿎은 김치가 뭔 죄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아무도 모르게 은근히 혼자 통쾌해하는 그런 수요는 있기 마련이다. 그나저나 이런 빌런은 무엇으로 퇴치하나? 애초에 퇴치 자체가 불가능하니, 왜곡된 인간상의 표본으로 두고, 계속 경계하며 살아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런은 가야만 하리(Villain will have to go).

작가의 이전글<Over and Over> 사랑, 어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