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nd of the World> 자연, 미워요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 <The End of the World>, 자연은 나만 미워해

Sung by Skeeter Davis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태양은 왜 저리 빛나나요?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파도는 왜 저리 밀려들까요?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사람들은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몰라요

'Cause you don't love me anymore/ 당신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에



이 곡은 소녀의 감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보다 더 소녀소녀할 수가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세상이 끝났다고 느끼는 소녀의 넋두리가 그저 예쁘고 귀엽기만 하다. 우리도 분명 저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만의 프리즘을 통해 내가 보는 세상은 온통 원색이었다. 무채색은 어른들의 색깔이었고, 이것저것 불순물이 섞인 것 같아서 치를 떨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자신만의 순수한 색깔은 다른 것을 보는 방식에도 고스란히 묻어나서, 가끔씩 칙칙한 색깔의 맛, 글, 태도 등을 보면 냉큼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이 곡의 소녀 화자는 사랑이 끝났으니, 세상도 끝나야 한다고 믿고 있다. 사랑이 끝났으니 자신의 어두워진 마음처럼 태양도 빛을 잃어야 하고, 파도도 힘찬 부서짐 따위를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끝나버린 마당에 자연물인들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소녀는 자연현상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리트머스 종이 같은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랑에 빠져있었을 때 자연은 풍성하게 그녀의 감정을 담아 주었다. 태양은 더욱 눈부시게 빛났고, 파도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3장 만큼 우람하게 요동쳐댔다.




Why do the birds go on singing/ 새들은 왜 노래를 계속 하나요?

Why do the stars glow above/ 별들은 왜 하늘 위에서 빛나죠?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사람들은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몰라요

It ended when I lost your love/ 당신의 사랑을 잃었을 때 세상도 끝났기에



그런데 사랑이 끝난 지금도 왜 저 새들은 계속 지저귀지? 마치 내가 헤어져서 상심에 빠져있는 걸 모른다는 듯? 밤이 되면 별들도 어김없이 자연의 법칙에 충실하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니? 사랑의 법칙이 깨어졌으니 자연의 법칙도 깨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자연이 나를 미워하남?


도대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잖은가? 이건 말도 안 돼. 사랑을 잃으면 모든 걸 다 잃은 것인데, 해도 달도 별도 무심히 자기 맡은 궤도에서 빛을 발하고 있질 않나? 지구와 달의 중력도 변함없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를 만들어내고 있질 않나? 내 심정을 반영해서 좀 고요하고 차분하게 위로해 준다면 좋으련만,


자연물은 모두 내 마음과는 달리 저토록 열심히 맡은 일을 하고 있구나. 난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도 내 마음을 몰라주고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아주 신났고만. 다들 너무해.




I wake up in the morning and I wonder/ 아침에 일어났는데 궁금해요

Why everything is the same as it was/ 왜 모든 것이 예전과 같은지

I can't understand no I can't understand/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How life goes on the way it does/ 어떻게 삶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되는지



소녀는 상실감과 슬픈 마음에 울면서, 에라 모르겠다,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이면 세상이 내 마음같이 온통 잿빛으로 변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암, 그렇고말고. 사랑이 끝났으면 세상도 끝난거지 뭐!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에 영어책의 바이블로 불렸던 '성문 영어 시리즈’가 있었다. 성문 기본, 핵심, 종합으로 난이도가 매겨졌는데, 그 중에서 나는 '핵심'을 가장 애착했다. 그 책의 어느 부분에 이런 예문이 있었다.


“어느 한 순간에 이 세상이 갑자기 폭발해 버릴 것이라는 사실이야말로 누구에게나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소녀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랬는데, 그랬어야만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세상은 전날과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다니.




Why does my heart go on beating/ 내 가슴은 왜 계속 뛰나요?

Why do these eyes of mine cry/ 내 눈에선 왜 눈물이 나죠?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사람들은 이 세상이 끝났다는 것을 몰라요

It ended when you said goodbye/ 당신이 이별을 고했을 때 세상은 끝났는데



세상이 끝났으니 나도 끝났겠거니 했는데, 이게 웬걸, 아직도 맥박이 뛰고 심장도 뛰고 게다가 눈물도 흐르네? 나, 아직 살아있나? 나에게 이 세상은 끝나버린 건데, 세상은 아직도 끝난게 아니라니. 사람들이 나를 도닥거려주고 응원해 주고 너는 여전히 이뻐, 괜찮아! 라고 말해주면 그나마 힘이 되겠고만, 아무도 내 이별에는 관심도 없는 거로구나.


엄마는 내가 쓰라린 사랑의 아픔을 겪은 걸 모르고 저토록 소란스럽게 바삐 아침밥을 차려 주고 계시네? 울 아빠도 내 슬픈 심정을 모르고 눈치 없이, 하나도 안 웃긴 농담을 마구 던지고 계시네?


이렇게 된 거, 그냥 엄마가 차려준 밥이나 먹고, 아빠의 아재 개그도 대충 넘기면서 티 내지 않고 살아야겠다. 어차피 세상은 돌아가고, 이러다 나도 무뎌질지 모르니까. 우리 엄마라고, 아빠라고, 왜 나와 같은 쓰라림이 없었으랴. 가슴에 상처 몇 개 품고 사는 게 인생이라는 건지도 몰라. 멍하니 눈물이 흐르기는 하지만 뭐 어떠랴.


조금만 울고 씩씩하게 내 삶을 살다 보면 또 다른 예쁜 사랑이 저만치서 손짓할지도 모르잖아. 그래, 밥 잘 먹고 힘내자, 아자아자! 소녀의 뭐, 이런 마무리를 상상해 본다. 그런 소녀가 세월의 흐름 따라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면서 딸을, 손녀를 도닥여주는 유쾌한 상상을 하노라니 이 노래가 더욱 예쁘게 휘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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