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Sung by John Lennon
Love is real, real is love/ 사랑은 진실이고 진실은 사랑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사랑은 느낌이고 느끼는 사랑
Love is wanting to be loved/ 사랑은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
이 곡은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없는, 가장 쉬운 be 동사만으로 사랑에 대한 온갖 정의를 나열하고 있다. be 동사만으로 사랑을 정의한다고? “~ 이다”로 해석되는 be 동사이기에, 이 곡은 “사랑은 ~ 이다”에 해당하는 정의의 집합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랑은 리얼이라, 거짓이 범접할 수 없고, 아무리 이성적 논리적으로 증명해도 느낌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가슴의 떨림이 있어야 사랑인 것이다. 게다가 사랑받고 싶은 마음 또한 사랑이다.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은 사랑을 주는 것과 데칼코마니이기 때문에 그 또한 사랑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지나침이 문제가 된다. 지나치게 사랑을 주고, 사랑받기 위해 지나치게 애를 쓰다보면 극단적으로는 스토킹이 된다. 스토커는 정작 자신은 여실히 사랑한 죄밖에 없다고 주장하기 일쑤다.
Love is touch, touch is love/ 사랑은 만지는 것이고 만지는 건 사랑
Love is reaching, reaching love/ 사랑은 다가감이고 다가가는 사랑
Love is asking to be loved/ 사랑은 사랑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만큼 쓰라린 게 또 있을까. 대학시절에 별다른 친분이 없었던 다른 과의 남자 선배와 차를 마신 일이 있었다. 어떤 경위로 그 자리에 마주 앉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온갖 잘난 척을 해대며 얼치기 철학 나부랭이를 쭈욱 늘어놓고 좌판을 벌이고 있었다. 정작 그는 니체의 갱도를 하나씩 깊이 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얕은 지식의 샘 바닥을 박박 긁고 있음을 금방 눈치챘음인지, 선배가 갑자기 뜬금없이 “저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는 참 좋겠다”라며 화제를 바꾸어 버렸다. 그 순간 철학이고 나발이고 대화는 끝나버렸고, 나는 마구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손 한번 잡고 싶다는 의중을 한 바퀴 꼬아서 은근한 방식으로 툭 던져본 것이었다. 그러나 현학적인 것에 눈멀어 있었던 그 시절의 나는, 그깟 손잡는 것 따위를 지극히 자잘하고 하등 의미없는 수작질이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녀 사이에는 꼴랑 손이나 잡는 것 보다 더 큰 우주적인 교감이 분명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었다. 추상적이고 부질없던 얼치기 시절의 꽁트같은 장면이었다. 그나마 그 시절이 짧았기에 망정이지. 지금은 손 잡는 것에서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라고 누구보다도 직관적으로 믿고 있다만.
사랑은 이런저런 수식어 다 떼고 직접 부딪혀보는 것임을 지금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암만. 그렇게 잘난 척 하다 날려버린 오빠들, 미안해요. 잘난 것 하나 없이 잘난 척 하다 지금은 이렇게 추억 팔이 하며 살아요.
Love is you, you and me/ 사랑은 당신, 당신과 나
Love is knowing, we can be/ 사랑은 아는 것,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음을 아는 것이지
Love is free, free is love/ 사랑은 자유이고 자유는 사랑
Love is living, living love/ 사랑은 살아있는 것이고 살아있는 사랑
Love is needing to be loved/ 사랑은 사랑받을 필요가 있는 것
존 레넌은 인류애와 평화를 강조한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가 외치는 사랑은 남녀의 사랑을 넘어선 의미를 담고 있기에, 사랑은 “아는 것”이라는 정의는 새롭다.
아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아는 것에 덧붙여, 함께 있음을 안다는 것은 그 전제가 “설령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함께 있음을 안다”는 시공간을 초월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아는 것은 자유로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예수님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은 자신의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감옥에 자신을 밀어 넣은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임을 모른다는 것이다.
사랑을 제대로 알면 자신을 묶고 있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고, 그때 자신의 세상은 얼마나 깊고 넓어질 것인가. 그래서 사랑은 두고두고 어려운 과업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쭈뼛거리지 말고 한껏 사랑하며 살지어다. 정녕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사랑일지니.
사랑의 역설은 속박을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더 큰 부류의 속박으로 첨벙 뛰어드는 것이고, 속박에서 벗어나 또 다른 더 큰 속박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모든 세상마저 사랑으로 품게 되지 않을까. 개꿈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