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Little Bird>,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Sung by Marianne Faithful


There's little bird that somebody sends/ 누군가 보낸 작은 새가 있어요

Down to the earth to live on the wind/ 바람을 타고 살도록 이 세상으로 보내졌어요

Born on the wind and he sleeps on the wind/ 바람을 타고 태어나, 바람을 타고 잠을 자요

This little bird that somebody sends/ 누군가 보낸 이 작은 새는요



이 곡은 선(zen)적인 요소와 생태학적 요소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누군가 보낸 ‘작은 새’는 생명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메타포여도 좋고, 오래도록 마음속에 소중하게 품고 있는 작은 희망이어도 좋을 것이다.


누가 보냈는지에 방점을 찍는다면 신의 존재로 귀결되거나, 생명의 근원을 소급해야겠지만, 그런 거창한 문제는 내가 거론할 깜냥이 못 된다. 다만 하이데거가 인간을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을 때, “던진 자”의 존재를 그려보듯이, 작은 새를 보낸 그 누군가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도 좋으리라.


바람을 타고 태어나, 바람을 타고 살면서, 바람 속에서 잠이 든다는 새는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지만, 그만큼 고독한 실존의 표상이기도 하다.


새장 밖에 있는 새는 새장 안에 있는 새를 동경할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비바람 맞지 않아도 되고, 때 되면 주인이 와서 모이도 주기에, 편안하게 날갯죽지 접고 사는 팔자를 부러워하려나?


하지만 정작 새장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새는 날갯짓 퍼덕이며 드넓은 창공을 누비며 날고 싶어 하리라. 우리의 삶 또한 다르지 않다. 안에서는 밖을 동경하고, 밖에서는 안을 동경한다.




He's light and fragile and feathered sky blue/ 가볍고 연약하며, 깃털을 가진 하늘색이에요

So thin and graceful the sun shines through/ 너무 얇고 우아하여, 그 사이로 태양이 비치죠

This little bird that lives on the wind/ 바람을 타고 사는 이 작은 새는요

This little bird that somebody sends/ 누군가 보낸 이 작은 새는요



헨리크 입센의 희곡 작품 <인형의 집>에서 남편은 노라를 “나의 귀여운 작은 새”, “종달새” 등으로 불렀다. 여자는 작고 연약하여 남자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등식화 되어있던 구닥다리 시대 얘기라지만, 말이 좋아 보호지, 실은 새장에 가둬놓은 새와 다를 바 없었다. 마침내 현실을 인식한 노라는 새장 문을 가까스로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새”는 구속받지 않는 영원한 보헤미안적 갈망에 대한 희구이다. 바람 속에서 태어나 때로는 바람을 타고, 때로는 바람을 거슬러 마음껏 날 수 있는 자유의 동의어이다.


새장 안에 갇혀있는 물질적인 “몸”은 새장 밖을 누비는 “작은 새”라도 만들어내어야 한다. 어디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한껏 날아다니는 작은 새는, 인간이 몸 담은 크고 작은 이름의 새장 문을 가볍게 부수고 나온, 드높은 정신일지도 모른다.


몸은 할 일이 너무 많다. 어린 시절,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고. 일어나서부터 밥 차리고, 돌아섰더니 또 밥 차려야 되고, 설거지 마쳤더니 또 밥 차려야 한다던 푸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어디 밥뿐인가. 끝도 없이 계속되는 집안일에 초주검이 되어 겨우 쪽잠자며 심하게 코를 골던 엄마 모습은, 어린 내가 봐도 참으로 안쓰럽고 슬펐다. 일하다 잠깐 쓰러져 자는 엄마 옆에서, 이유 모를 눈물 찔끔거리며 살며시 누워있다가 잠이 든 기억도 있다.


필시 엄마 마음속 작은 새는, 날갯짓 퍼득이며 태양빛 받아 환하게 빛을 내며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작고 연약한 날개로 힘차게 바람을 가르며 목적지도 없는 곳으로 훨훨 비상하였으리라. 내 마음속 작은 새 또한, 밑도 끝도 없는 비행을 쉼 없이 해댔으리라. 그때도, 지금도, 내일이 허락된다면 내일도.




He flies so high up in the sky/ 하늘 높이 날아요

Out of reach of human eye/ 인간의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And the only time that he touched the ground/ 그리고 땅을 딛는 유일한 때는

Is when that little bird/ 저 작은 새가

Is when that little bird/ 저 작은 새가

Is when that little bird dies/ 저 작은 새가 죽을 때뿐이랍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 작은 새(this little bird)는 갑자기 “저” 작은 새(that little bird)로 명명된다. 이것은 이승과 저승, 차안과 피안을 아우르며 우주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이 노래가 갖는 힘은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동양적인 선(zen)의 울림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번도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날던 새가, 유일하게 발을 닫는 때는 죽을 때뿐이라고 노래한다. 반면에, 단 한 번도 땅을 딛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인간의 몸이, 더 이상 땅을 딛지 못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육신이 영혼과 분리되는 죽음의 순간이다.


작은 새가 죽는 그날이, 내 몸이 죽는 날이다. 인간의 몸과, 작은 새로 상징되는 정신은 반비례 곡선을 그리며 상승과 하강을 완성한다. 몸이 살아서 땅을 딛고 있을 때는 정신이 날아다니고, 몸이 죽어 더 이상 땅을 밟지 못하는 날에야, 정신은 드디어 단 한번뿐인 땅을 밟아본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작은 새를 어디로 날려 보냈는지 궁금해하지 않기로 한다. 새는 내 의지대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의 의지대로 날아다닐 뿐이다. 그러니 어느 창공을 누비는지는 내버려 두기로 하자. 높이 날수록 더 신선한 자유의 맛을 보게 되리니.


내가 힘겹게 사는 동안, 나의 작은 새는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날갯짓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 비바람 맞아 힘에 부치기도 할 테고, 왼쪽 날개 어디쯤이 찢어졌을 수도 있으리라. 그럴 땐 바람을 타면서 쉬기도 하리라.


내가 버티며 사는 만큼, 나의 작은 새도 정처 없는 모험을 계속하겠지. 그러다 어느 날, 몸이 더 이상 땅을 딛지 못하여 영혼은 비상하고, 정신은 하강하는 접점에서, 우린 잠깐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땐 서로 고마웠다고, 덕분에 잘 살았노라고 짧은 인사를 건넬 수 있다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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