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Goodbye Yellow Brick Road>, 도시여 안녕!
Sung by Elton John
When are you gonna come down/ 당신은 언제 내려갈 거야?
When are you going to land/ 당신은 언제 고향으로 갈 건데?
I should have stayed on the farm/ 난 농장에 머물러 있었어야 했어
I should have listened to my old man/ 아버지 말을 들었어야 했어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케케묵은 말이 있다. 이 말에 기꺼이 속아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서울로 몰려들었다. 남들이 하나둘 서울로 향하니, 남은 사람은 불안감 때문에 나도 가야하나, 고민하며 고향 등질 구실로 머릴 싸매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정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Great cities attract ambitious people”(대도시는 야심찬 사람들을 끌어당긴다)라는 말이 있다. 큰 꿈을 품은 사람들이 일단 대도시를 향하는 현상을 누가 뭐라 할 수 있으랴.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정서를 누가 말릴 수 있으랴. 나 또한 대도시의 삶을 지독히도 꿈꾸었으나, 상처와 절망감을 바리바리 싸안고 떠나왔다. 서울을 벗어나면서, 이 거대한 공룡 도시를 다시는 밟지 못하겠구나 느꼈고, 그 후 집 값 폭등으로 서울살이는 더 이상 꿈꾸지못할 넘사벽이 되었다.
이 곡의 화자도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의 조언을 뿌리치고 대도시로 왔다. 어느 정도 견뎌내며 고생하다보면, 첨단 기술이 퍼주는 꿀맛과 함께 안락함과 쾌적함을 누리며 호화롭게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미련없이 고향을 떠나왔다.
대도시의 삶을 꿈 꾼 열망만큼이나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뭔가를 이루어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헛한 마음에 바람이 휑하니 부는 나날이 더 많아졌다. 그런 날엔 독한 술도, 최고급 세단으로 멋진 도심의 강변을 달려도 마음 속 공허는 채워지지 않는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만큼 꽉 채워질 수 없는 정신적 허기로 갈수록 피폐함을 느끼게 되자, 이제는 수구초심으로 고향을 꿈꾼다. 대도시를 꿈꾸었고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을 뒤돌아보니, 아버지한테 들었던, 농사일이나 배우면서 소박하게 사는게 어떠냐는 충고가 새삼스게 와 닿았다. 그때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지만, 그때는 누가 뭐래도 아버지 말을 꺾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 달렸을 것이다.
이제, 화자는 결심이 섰다. 도시를 떠나 고향에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물어본다. 함께 가서 소박한 삶에 만족하며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으랴. 도시 생활이 주는 빡빡함, 화려하고 찬란한 것들 사이에서 웃음터뜨리며 사는 삶도 하루이틀이지.
You know you can't hold me forever/ 당신은 나를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단걸 알잖아
I didn't sign up with you/ 당신과 계약한 건 아니니까
I'm not a present for your friends to open/ 난 당신 친구들이 열어보는 선물이 아냐
This boy's too young to be singing the blues/ 난 블루스를 부르기엔 너무 어려
화려한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여자친구는, 시골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는 것 같다. 여자친구도 언젠가는 시골에서 살아야지라고 말하지만, 그 ‘언젠가’는 끊임없이 유예되고 만다. 사랑도 좋고 풍요로움도 좋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 반복되는 풍요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화자는, 여자친구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단단히 결심이 선 화자는 설령 여자친구가 미적거린다해도, 혼자 떠날 명분을 확실하게 다져본다. 자신의 이런 성향을 그녀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결혼을 한 것도 아니다. 그녀는 물질적으로 성공한 남자친구인 화자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기를 즐긴다. 그녀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트로피 남친을 전시해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그녀의 능력을 과시하는 셈이다.
화자는 은은한 조명이 흔들리는 펜트 하우스에서 블루스 음악 들으며 와인잔 가볍게 부딪히는 일상이, 얼마나 섣부른 만수르 흉내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블루스 음악은 끈적한 삶의 농담이 고스란히 녹아있기에, 인생의 깊은 미감에 도달한 사람이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블루스를 음미하는 나이대는 없지만, 적어도 화자는 자기가 젊은 치기로 깊이도 모르면서 듣는 체 했음을 고백한다. 최근의 조어인, ‘영포티’(young forty)에 해당하는 이른 성공의 껍질에 갇혀, 겉멋에 휘둘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영포티들이 모두 그런건 아니지만, 어설프게도 대기업 회장님 코스프레를 하며 산 것은 아닌지 돌아켜보면서, 틀에 갇혀버린 화자는 이제 그 틀을 벗어나기로 한다.
So goodbye yellow brick road/ 그러니 안녕, 노란 벽돌길이여
Where the dogs of society howl/ 도시의 개들이 짖어대는 곳
You can't plant me in your penthouse/ 나를 당신 펜트하우스에 가둘 순 없어
I'm going back to my plough/ 난 쟁기질하러 돌아갈래
Back to the howling old owl in the woods/ 숲속 늙은 부엉이가 울어대는 곳으로
Hunting the horny back toad/ 울퉁불퉁한 두꺼비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Oh, I've finally decided my future lies/ 난 마침내 결심했어, 내 미래를 두기로
Beyond the yellow brick road/ 노란 벽돌 길 너머에다
도시생활은 풍요로운 이면에,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으면서 위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밀어내고 떨어뜨리는 하이에나 독식 구조가 되어버렸다. 순수한 이상을 품고 대도시로 왔으나 더 이상 표범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도 표범은 끝내 저 높은 곳에서 죽어있는 시체로 발견되지 않았던가. 영원한 오빠 조용필님이 그 원형을 좆아 불렀듯이.
그래서 화자는 더 이상 깨어지고 부숴지고 물어뜯고 뜯기지 말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쟁기질하며, 부엉이 울음소리 들으며, 두꺼비도 잡고, 때로는 닭똥 치우며 사는 삶을 살고자 한다. 이것은 치유니 회복이니 하는, 흔한 자연의 클리셰가 아니라, 그저 소박한 삶에서 자신의 순수성을 되찾는 삶을 말한다.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치유와 회복은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What do you think you'll do then/ 그때 당신은 뭘 할 거라고 생각하려나?
I bet that'll shoot down your plane/ 틀림없이 그런 삶은 당신이 탄 비행기를 떨어뜨리고 말거야
It'll take you a couple of vodka and tonics/ 보드카와 토닉 몇 잔이 필요하겠지
To set you on your feet again/ 다시 정신 차리려면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굳힌 화자는, 도시에 남아있을 여자 친구의 삶에 대해 미리 헤아려본다. 그녀는 여전히 비행기 여행을 다니며 온갖 호사를 누리고 살겠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 있듯이, 비행기도 추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비행기 추락은 높이 나는 삶, 고공행진의 삶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세상 다 가진 것 같아도 어느날 갑작스럽게 쿵! 하고 바닥으로 주저앉는 삶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 영원할 것 같던 부유함도 영원하지 않았고, 끝없이 가난할 것 같던 찌들림도 그 끝은 있기 마련이다.
어느 한 순간,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여자친구가, 정신 번쩍 차리고 자신의 삶이 결코 반짝이지 않았음을, 그저 희미하게 명멸해가는 별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려면 독한 술이 필요할 것이다. 이 “보드카와 토닉 몇 잔” 부분에서도 그녀가 술과 장미의 나날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
Maybe you'll get a replacement/ 아마도 당신은 나를 대체할 사람을 찾을 거야
There's plenty like me to be found/ 나 같은 사람은 찾고자 하면 많지
Mongrels who ain't got a penny/ 돈 한 푼 없는 잡종개 같은 사람들은
Sniffing for tidbits like you on the ground/ 이 곳에서 당신처럼 한 입 베어먹으려 킁킁거리지
이제 화자는 여자친구도 정리 한 것 같다. 그녀는 다른 트로피 남친을 찾아 킁킁거릴 것이다. 매혹적인 모습으로 화자처럼 어리숙한 영포티를 찾아 환락의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화자는 더 이상 이런 부류의 여자에게 먹잇감이 되지 않겠지만, 그 자리는 또 다른 성공에 취한 남자가 펜트하우스에 그녀를 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의 반전은 화자가 아직 고향으로 떠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도시의 예쁜 노란색 벽돌길에 안녕을 고했으나, 여전히 여자친구에게 미련이 있다. 부디 화자의 그녀가 모든 호사를 뒤로하고, 고향 가는 기차 선로에 서 있다면 좋겠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으로 활짝 웃으며 화자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면 좋겠다. 몸빼바지와 챙 넓은 모자를 준비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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