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Good Times>쿨한 이별은 없다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Sung by Kris Kristofferson


Don't look so sad, I know it's over/ 너무 슬퍼 말아요, 이미 끝난 건 나도 아니까

But life goes on/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And this old world will keep on turning/ 이토록 오래된 세상도 계속 돌아갈 거예요

Let's just be glad/ 그냥 즐거워합시다

We had some time to spend together/ 우린 함께 시간을 보냈잖아요

There's no need to watch the bridges that were burning/ 불타고 있는 다리는 볼 이유도 없어요



이 곡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나 또한 20대 초반부터 지금껏 즐겨 부르는 곡이다. 대체로 음조가 평탄하여 저음이 낮지 않고 고음이 높지 않기에, 삑사리 걱정 없이 무난하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올드 팝송에는 유난히 남성 빌런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놓고 빌런임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방식이 은근하고도 교묘하다. 가히 도사급이라 해도 좋을 만큼의 내공이 켜켜이 쌓여있어, 전문가 수준으로 여성 심리를 꿰뚫어 보는 것 또한 특징이랄 수 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녀는 헤어졌다. 남녀가 헤어지는 이유는 팔만 팔천 개나 되기에 이유는 따지지 말자. 그렇지만 이별은 이유가 어찌 됐건 슬픈 일이다. 정염의 불꽃이 꺼졌다는 자체도 슬프고, 가장 좋은 시절을 눈물로 쓸어낸다는 사실도 슬프다.


이 곡의 남성 화자 옆에는, 한 여자가 그림자처럼 말없이 있다. 그녀의 역할은 그저 이별의 슬픔으로 잔뜩 구겨진 채, 가끔 남자를 멀끔하게 쳐다보는 정도일 뿐이다. 남자의 비논리적인 가스라이팅에 홀라당 넘어갈지, 지혜롭게 빠져나올지를 헤아려 보는 것이야말로 이 곡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슬픈 표정의 여자에게 남자가 달콤하게 말한다.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났고, 이 헤어짐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며, 이별에 새삼 방점을 찍는다. 대개는 마주 보고 이별을 나누는 사이라면 억지 미소라도 지으며 악수 나누고 서로의 앞날을 축원해 주고 돌아서면 끝이련만.


이 집요한 남자는 이별을 인정하면서도, 이대로 그녀를 보내기엔 너무나 아쉬운가 보다.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두고 싶은 심정은 백만 번 이해한다만,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면서 그녀를 갸우뚱하게 한다. 비록 그들은 헤어지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도 오케! 그러니 헤어짐조차도 그냥 즐기자고 한다. 헤어짐을 즐기자고라?


화자는 그들이 함께 보낸 추억을 상기하며 불 타고 있는 다리는 쳐다보지도 말자고 한다. 흔히 단단한 결심을 하게 되면 “다리를 건너자마자 불지른다”는 표현을 한다. 건널 수 없게 된 다리처럼, 그들 사랑도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 정도면 이별에 쿨한 남자임이 분명한데. 쿨한 건 좋지만, 딱 여기 까지라면 그녀의 기억에도 멋진 남자로 기억될 텐데.




Lay your head upon my pillow/ 내 베개 위에 머리를 내려두세요

Hold your warm and tender body close to mine/ 따뜻하고 부드러운 몸을 내게 안기세요

Hear the whisper of the raindrops/ 빗방울의 속삭임을 들어봐요

blowing soft against the window/ 창가에 감미롭게 부딪히고 있네요

And make believe you love me one more time/ 다시 한번만 더 나를 사랑하는 척이라도 하세요

For the good times/ 좋은 시절을 위하여



쿨한 남자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장르가 바뀌어버렸다. 이 정도면 로맨스에서 살짝 스릴러가 가미된 것 같다. 도대체 이들이 있는 장소가 어딘지를 의심케 하는데, 흔한 이별 장소는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이별에 마땅히 어울리는 장소라는 건 없지만, 대개는 찬바람 휑하니 부는 공원이거나 슬픈 음악 쫘악 깔린 카페의 구석자리 정도를 떠올릴 수 있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 우리 헤어져, 라고 한다면 개콘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일테고.


그런데 이들은 지금, 둘만 있는 작은 공간에서 이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쿨해도 너무 쿨한 이 남자는 그녀에게 자기 팔을 베고 누워, 자기 몸을 껴안아 보란다. 이쯤이면 헤롱인데. 더구나 헤어지는 마당이라 사랑을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니, 사랑하는 척이라도 해보란다. 오마이갓!


이별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비가 등장한다. 사물 조연급으로는 최고의 캐스팅이랄 수 있다. 창가에 가볍게 부딪히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갑자기 야리꾸리한 장면을 만들고자 애쓰는 화자가 이래도 쿨한지 투표라도 해보고 싶다. 이 정도면 로맨스가 아니라 싸이코 호러인데. 정녕코.


기겁할 나 같은 사람을 위하여 화자는 친절하게도, “좋은 시절을 위하여”라는 달콤한 변명으로 고명을 얹어준다. “좋은 시절”은 둘이 사귀었을 때의 추억이기도 하고, 앞으로 헤어져서 각자의 좋은 시절을 보내자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고수의 스멜 폴폴 풍기는 재야의 선수 납신거다.




I'll get along/ 난 그럭저럭 살아가겠죠

You'll find another/ 당신도 다른 사람을 찾을 거구요

And I'll be here/ 그래도 난 여기 있을 거예요

If you should find, you ever need me/ 혹여 당신이 날 필요로 할 때 찾을 수도 있을 테니

Don't say a word about tomorrow or forever/ 내일이나 영원 이런 말은 하지 마세요

There'll be time enough for sadness/ 슬퍼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예요

When you leave me/ 당신이 나를 떠날 때



그녀는 분명, 이게 모지? 하면서 현타가 세게 올 것 같다. 뭔 수작질인가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논리적인 반박도 못하고 계속 눈빛이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선택으로 고구마 백개가 될 수도 있고, 사이다 한 컵이 될 수도 있다. 이 곡의 쫄깃함은 바로 여기, 보이지 않는 그녀의 반응을 유추해보는 것에 있기도 하다.


헤어지는 마당에 그녀와의 정사를 노리는 화자가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전략은 유약한 척, 연약한 척, 자포자기한 척 하기다. 이 전략은 여자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여자들의 보호본능을 마구 쌔리때리 휘둘러서 정신 못 차리게 하는, 무림의 고수 전법을 화자는 잘도 사용하고 있다.


자신은 맥 빠진 어투로, 그럭저럭 살아갈 거라지만 이 또한 뻔한 헐리우드 액션일거다. 그녀와 헤어지고, 비도 그치면 쿨하게 또 다른 로맨스를 솜사탕처럼 녹여갈테니. 그러면서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날지라도 자기는 이곳에서 기다릴 거라고 한다. 이래도 쿨하다고라? 좋은 시절을 위하여 불타버린 다리는 돌아보지도 말자며? 이 남자 뭐니? 도대체 앞뒤가 안맞잖아!


내일이나 영원이라는 말도 하지 말란다. 그런 단어는 이별을 해프닝으로 만들어버리고,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내일이나 영원 따위의 미래형은 관심 없고, 오직 이 순간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얼핏 멋있는 말 같지만, 화자는 그녀와 다시 알콩달콩 사랑을 이어갈 마음은 전혀 없다. 사랑이 아니어도 좋으니, 이 순간 잠깐 정사를 나누는 것에만 골몰해 있을 따름이다.


슬퍼할 시간은 충분하니까 슬퍼하지도 말란다. 이 또한 너무 근사한 말이지만, 이별의 슬픔은 나중에 두고두고 느끼고, 지금은 다시 한번 육체적인 사랑으로 이별을 마감하자는 것일 뿐이다.


혹자는 나에게 왜케 꼬였냐며 순수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왜곡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자가 정말로 순수한 남자라면,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빗소리 들으며 다시 한번 여기 누워서 사랑하는 척이라도 해보라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이런 남자의 몸뚱이에는 몽둥이가 약인데, 그냥 콱!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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