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drops Are Falling,태양과 맞장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Raindrops Are Falling on My Head>, 태양과 맞장뜨기

Sung by B. J. Thomas


Raindrops are falling on my head/ 빗방울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지네

And just like the guy whose feet are too big for his bed/ 발이 너무 커서 침대에 맞지 않는 사람처럼

Nothing seems to fit/ 딱 맞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Those raindrops are falling on my head, they keep falling/ 그런 빗방울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지네, 계속해서 떨어지네



비를 일컫는 많은 단어 중에는, 후드득 쏟아지는 굵은 장대비나 무섭게 퍼붓는 기습폭우도 있지만, 보슬비, 가랑비, 이슬비, 여우비 등 예쁜 이름만큼이나 간질간질하고 부드러운 어감의 낱말도 있다. 이런 비는 한껏 맞고 싶을 정도로 낭만을 적셔준다. "좋은 비는 때를 맞춰 내린다"는 두보의 싯구절인 '호우시절'도 생각난다.


이 곡은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영화와 더불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원제는 부치와 썬댄스라는 두 명의 은행강도 이름이지만, 한글 번역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사이의 삼각관계도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기만 하다. 은행강도가 이렇게 멋지고도 코믹할 일인가? 자전거를 탄 연인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이 곡은, 경쾌하게 딩동거리는 전주에 어느새 발장단을 맞추며 흥얼거리게 한다. 정지화면이 주는 엔딩의 묵직한 여운은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영화의 잔향이 너무 짙은 곡이지만, 가사에 집중해 보자. 빗방울이 갑자기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져 본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화자의 머리 위에도 갑자기 빗방울이 톡톡 떨어졌다. 화자는 약간 삐딱한 기분이 든다. 마치 수업시간에 졸다가 선생님께 출석부로 머리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것 같다.


머리를 맞으면 우선 모멸감이 느껴진다. 옛날에는 간혹 무식하게 줘 패는 것으로 군기를 바짝 잡는 선생님도 있었다. 출석부로, ‘사랑의 매’라고 적힌 몽둥이로, 때로는 신고 있던 슬러퍼로 머리를 때리곤 했다. 부모님들마저 자식을 때려서라도 바로 잡아 달랬으니, 암묵적 방조자 역할을 자초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체벌에 대한 사회적 함의가 없었고, 교육의 방편으로 왜곡되고 정당화되었던 야만의 시대였다.


중2 때 담임 선생님은 등교하자마자 지휘봉으로 겁박을 주셨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유 아닌 이유를 들먹이며, 지휘봉으로 여학생들 손바닥을 툭툭 쳐댔다. 그건 곧 맞을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숙제 좀 안 했기로서니, 주변 친구들과 큰 소리로 웃었기로서니, 부스럭거리며 과자봉지 뜯었기로서니 그게 어디 맞을 일이던가.


어쨌거나 이 곡의 화자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뜩잖기만 하다. 왜 하필 빗방울이 머리통을 치냐고! 발이 커서 침대에 삐죽 나오면 발을 잘라버리면 된다는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식 사유처럼, 불필요한 가설을 다 없애버리고 단순함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누구에게? 태양에게! 왜? 빗방울이 머리통에 떨어지니까!




So I just did me some talking to the sun/ 그래서 방금 태양에게 몇 마디 했어

And I said I didn't like the way he got things done/ 태양이 일 처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Sleeping on the job/ 일하면서 잠을 잔 거지

Those raindrops are falling on my head, they keep falling/ 그런 빗방울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지네, 계속해서 떨어지네



빗방울이 최소한 머리통은 좀 피해서 떨어져야지, 정면으로 머리통을 때리면 기분 나쁘긴 하다만 어떻게 머리를 피해 가냐고. 오래된 아재개그 중에, 지나가다 머리에 참새 똥을 직방으로 맞은 사람이 하늘 보고 눈 흘기며, 참새는 팬티도 안입나벼, 했다는 것과 평행을 이루는 것 같다.


단순무식함에다 용기는 기깔나게 많은 화자가 태양에게 나름의 충고를 했단다. 일처리를 고따구로 밖에 못해? 너, 일하면서 졸았지? 네가 태양이면 태양의 일을 해야지, 집중을 못하니까 빗방울이 떨어지고 난리잖아! 이누무 태양아! 쫌!


화자는 태양에게 일 못한다고 혼쭐을 냈는데, 태양은 귓등으로 흘리고 꿈쩍도 않는다. 빗방울은 계속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But there's one thing I know/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가지가 있어

The blues they send to meet me/ 날 만나보라며 비가 우울함을 보내지만

Won't defeat me, it won't be long/ 날 물리칠 순 없어, 머지않아

Till happiness steps up to greet me/ 행복이 내게 인사하러 가까이 올 거야



이쯤 되면 쫄릴만도 하련만, 화자는 다음 단계로 정신승리를 꾀한다. 하늘이 괜히 심술을 부려 화자를 우울하게 하려고 비를 내려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태양과도 맞짱 뜬 화자가 아니던가. 비가 한 바가지로 내려도 자신은 우울해하지 않겠다며, 머잖아 행복이 안녕! 하며 인사하러 올 거라고 믿는다. 뜬금없이 태양도 패, 빗방울도 패, 화자 승!


무한긍정의 힘을 가진 화자는 무적무패의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패배와 승리라는 전쟁터로 격하된 세상살이에서 화자는 홀로 무릉도원 뒷마당 설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화자를 지켜보는 제삼자는 가볍게 뒤통수 한 대 맞고 잠시 아뜩해진다. 돈 키호테 같은 줄 알았던 화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토록 단순 명쾌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빗방울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지네

But that doesn't mean my eyes will soon be turning red/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눈시울이 곧 빨개진다는 건 아냐

Crying's not for me, 'cause/ 우는 건 날 위한 것이 아니거든, 왜냐면

I'm never gonna stop the rain by complaining/ 불평한다고 해서 비를 멈출 순 없기에

Because I'm free/ 난 자유롭기 때문에

Nothing's worrying me/ 날 걱정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렇지만 화자가 바보 아닌 이상, 어떻게 마냥 기쁜 일만 있겠는가. 굳이 작정하고 비가 내려 자신을 슬프게 하려 애쓴다 해도, 그는 울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슬픔을 꾸욱 눌러 담아 두는 것이 더 슬픈 법이긴 하다만.


이 장면에서 화자는 마냥 실없이 기쁘고, 대놓고 태양과 맞짱이나 뜨고, 비한테도 시비 거는 얼빠진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화자 또한 충분히 슬픈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이다. 다만 비한테 불평한다고 비가 그치지 않듯, 슬피 운다고 해서 슬픔이 없어지지 않음을 안다.


너무 나가버린 결말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 화자는 서양판 처용인지도 모르겠다. 밝은 달밤에 노닐다 들어오니 아내의 발 두 개와 다른 발 두 개가 있음을 보고,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겠누, 하며 툴툴 털고서 노래 부르며 떠나간 처용의 뒷모습이 설핏 겹쳐 보이기도 한다.


화자의 슬픔이 처용류의 것인지, 다른 경제적인 빈곤에서 온 것인지, 사회적 약자로서의 무력함에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최소한 근심걱정을 떨구는 확실한 방법 하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자의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은 나선형으로 점점 커져가더니 이윽고, 생의 자유로움을 한껏 누리자는 결론을 훅 던져놓고 가버렸다. 이 결론을 얼른 주워 담아야 하나? 아님, 발에 걸린 돌멩이 차듯 휙 차버리고, 가던 길을 가야 하나? 음… 이런 무한긍정은 일단 주워 담는 걸로!


이미지: 제미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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