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Christmas>, 미련 곰탱이의 미련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Sung by Wham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 지난 크리스마스엔 당신에게 내 맘을 주었어요

But the very next day, you gave it away/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당신은 그 마음을 버렸죠

This year, to save me from tears/ 올해엔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해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특별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거예요



작년 크리스마스엔 뭘 했더라? 해마다 크리스마스는 비슷비슷한 일정으로 채워져서인지, 뭘 했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여행이라도 다녀온 크리스마스는 기억 저장고에서 아직은 불빛 깜박이며, 겨우 목록을 지탱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크리스마스엔 동선도 비슷하고 이런저런 모임과도 겹치고 엮여서 작년과 재작년과 10년 전이 크게 구분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 곡의 화자는 작년 크리스마스를 생생하게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작년에 호되게 치렀던 쓰라린 마음의 상처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에 화려한 파티를 열고, 남녀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진심 어린 고백을 주고받기도 한다. 어지간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으레 키스 씬이 등장하지 않던가.


화자는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난 그녀에게 온 마음을 주었으나, 그녀는 다음 날 차갑게 돌아섰던 씁쓸한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있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기대를 품고, 또다시 크리스마스 파티에 모습을 드러냈다.




Once bitten and twice shy/ 한 번 받은 상처로 두 번째는 소심해져요

I keep my distance, but you still catch my eye/ 거리를 두지만, 당신은 계속 내 눈을 사로잡네요

Tell me, baby, do you recognise me?/ 말해주세요, 날 알아보겠어요?

Well, it's been a year, it doesn't surprise me/ 뭐, 1년이 되었으니, 놀랍지도 않네요.



화자에게 크리스마스는 연인을 얻는, 수확의 시즌일 수도 있다. 작년 연애 농사는 폭망 했지만, 올해엔 ‘솔로 탈출’을 위해 이마에 머리끈 질끈 묶고 오른팔 올려, “도전!”하는 패기는 일단 좋다 치자. 작년 한 해 농사 망쳤다고 올해 농사까지 포기할 순 없으니까.


화자는 새 희망을 안고 파티에 짜잔 나타났는데, 작년에 쓰라린 상처를 주었던 그녀가 여기에 또 있는 거다. 올해엔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야 되는데, 그러려고 작정했는데, 왜 눈길이 자꾸만 그녀에게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에 얼추 해당하는 영어가 “Once bitten, twice shy”라고 할 수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마음을 홀랑 뺏긴 여자에게 상처를 받고 보니, 올해는 아무래도 소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한 번 상처받을까 두려워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으면서,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화자의 어정쩡한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녀가 먼저 아는 척이라도 해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지만, 아뿔싸, 그녀는 화자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단념도 빠르고 희망도 빠르면서 살짝 찌질하기까지 한 화자는, 일 년 전의 일이니 그녀가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린 자는 빨리 잊고, 맞은 자는 그 장면을 매일매일 재구성해서 새롭게 학습하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다.




"Happy Christmas!" I wrapped it up and sent it/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선물까지 포장해서 보냈지요

With a note saying, "I love you", I meant it/ "사랑해"라고 적은 쪽지와 함께요, 진심이었죠

Now I know what a fool I've been/ 내가 얼마나 바보였는지 이젠 알아요

But if you kissed me now, I know you'd fool me again/ 하지만 이제는 당신이 나에게 키스한다 해도, 다시 날 속이는 것이란 걸 알아요



화자는 또다시 지난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불러내면서 자신이 얼마나 찌질했는지를 되돌아본다. 성급하게 자신의 감정을 풀어헤쳐놓기 바빴던 그 서툴렀던 모습과, 만난 지 하루 만에 사랑한다는 말이 적힌 선물을 받은 그녀의 표정이 어땠을지를 돌이켜본다.


지금까지는 퇴짜맞고 상처 입은 자신의 모습만 부풀리고 되뇌었는데, 올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그녀를 다시 보고 나서야, 화자는 자신이 얼마나 미련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미련한 사람이 미련(未練)도 많은 법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그녀가 설령 화자에게 키스한다 해도 그건 진심이 아닐 거라며, 더 이상 기만당하지 않으리라 마음의 고삐를 단단히 붙잡으려 애쓴다.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일을 마치 새로운 듯 의욕을 불태울 때, 흔히 빈정거림을 섞어서 “참! 애쓴다”라고 말한다. 화자는 참! 애쓰고 있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쫄깃한 심장으로 다음 장면을 지켜보게 된다.




A crowded room, friends with tired eyes/ 북적대는 공간, 지친 눈의 친구들

I'm hiding from you and your soul of ice/ 난, 당신과 당신의 얼음 같은 영혼으로부터 숨어 있어요

My God, I thought you were someone to rely on/ 세상에, 당신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Me? I guess I was a shoulder to cry on/ 나요? 난 당신이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였다고 생각해요



아니나 다를까,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서 자신의 진심을 쏟겠다는 생각은 대나무 속 같이 비어있는 공허한 울림이었다. 파티장의 어수선함과, 부딪히는 술잔으로 눈이 퀭해진 친구들을 엄호삼아, 화자는 작년 이맘때 하루 만에 헤어진 그녀를 내내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


그녀가 아무리 차가운 영혼의 소유자 일지언정, “안녕, 작년에 우리 만났는데, 기억나니?” 이 한마디를 못해서 그녀 주변을 맴돌며 눈치나 살피고 있다니. 하기야, 남자들이 뭉텅이로 모여있는 곳을 여자는 거리낌 없이 지나갈 수 있지만, 여자들이 뭉텅이로 모여있는 곳에 남자는 지나가지 못하고 다른 길로 돌아가기 일쑤였다는 실험 결과도 있었다.


화자 역시 소심한 남자인데다, 또 한 번 상처받을까 두려워 몰래 숨어서 그녀를 살펴본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는 꽤 멋진 여자임이 확실한 것 같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화자는 그녀를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으로 생각했음을 떠올렸다. 화자 또한 그녀가 슬플 때면 언제라도 기대어 울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를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A face-on lover with a fire in his heart/ 마음속에 열정을 가진, 연인의 얼굴을 한 사람으로서

A man undercover, but you tore me apart/ 내 정체를 숨겼어도, 당신은 날 아프게 했죠

Now I've found a real love, you'll never fool me again/ 이제 난 진짜 사랑을 찾았고 당신은 다신 날 속일 수 없을 거예요

Maybe next year/ 아마 내년에는

I'll give it to someone special/ 난 누군가 특별한 사람에게 내 마음을 줄 거예요



정체를 드러내지 못하는 소심한 남자로서 그녀를 몰래 지켜보노라니, 그녀를 향한 열정은 여전하고, 그녀를 연인인양 바라보고 있음을 새삼 느낀 화자는 약간의 당혹감을 느낀다. 아무리 멋진 그녀라지만, 하룻만에 화자를 아프게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귄 것도 아닌데, 처음 본 순간 그녀를 가슴에 담아두고 미련만 가득했던 미련곰탱이 같은 화자는 일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비로소 용기를 충전한다. 자존감의 배터리가 간당간당했던 지난 일 년 치의 수동적인 태도는, 새롭게 충전된 빵빵한 배터리로 인해 긍정 모드로 바뀌었다.


하다못해 신호등도 기다리면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뀐다. 물론, 초록불도 빨간불로 바뀐다. 항상 맑음도 없고, 항상 흐림도 없음과 같은 이치다.


화자는 이제 더 이상 다른 “특별한 누군가”(someone special)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녀야말로 “특별한 누군가”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록 작년 크리스마스엔 상처를 주고 떠났지만, 이제는 진정한 사랑임을 알게 되었으니, 화초 가꾸듯 정성스럽게 사랑을 키워가리라 다짐한다. 그래서 내년 크리스마스엔 이 특별한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다 쏟으리라 다짐한다.


속성으로 피어나는 화초가 없듯, 사랑도 속성으로 휘리릭 피었다 스르륵 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화자는, 크리스마스 선물에다 만난 지 하루 만에 사랑을 고백하는 쪽지 따위를 얹어 그녀 마음에 부담을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미련한 찌질남은 가고, 올해 크리스마스엔 멋진 남자로 변신을 기대해도 좋으리.


그런데, 그랬는데, 그러할진대 정작 그녀가 그의 마음을 받아주기는 할까? 아무리 화자가 용기백배 하기로서니 그녀의 눈길조차 못받는다면 또 다음 해 크리스마스를 기약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올해의 메리 크리스마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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