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Sung by Roberta Flack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손가락으로는 내 아픔을 연주하고
Singing my life with his words/ 가사로는 내 삶을 노래하면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그는 노래로 부드럽게 나를 사로잡네요
Telling my whole life with his words/ 가사로 내 삶을 전부 말하고 있어요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노래로 부드럽게 나를 사로잡아요
이 곡은 한 편의 드라마를 정교하게 짜내고 있다. 무대 위에서 남자가수는 기타 치면서 노래하고, 객석에 있는 여성화자는 노래를 듣는다. 기타를 연주하는 가수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화자는 진한 고통을 느끼면서, 자신의 서사를 대입하기 시작한다.
가수의 노래와, 화자의 마음속 이야기라는 이중 구도가 병치되면서 풍부한 틈새가 생겨난다. 팝송 한 곡에서 이러한 미학적 거리가 움찔움찔한 아련미를 만들어낼 수 있음이 놀랍기만 하다.
화자는 지금 작은 무대에서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다. 그가 기타 줄 하나씩 튕길 때마다 그녀의 아픔도 찌릿찌릿 되살아난다. 그의 노래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읊고있는 것 같다. 어찌 자신의 삶을 이토록 속속들이 알고 있을까. 감미로운 목소리로 자신의 아픔을 노래하는 것은, 미소지으며 채찍질 가하는 것과 흡사하다.
밤하늘 별만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래 중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쓰기라도 한 듯, “내 것”이라 생각되는 곡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 곡의 여성화자도 노랫말이 오롯이 자신의 얘기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대중가요는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이 녹아있는 일상을 그려낸다. 따라서 어지간히 독한 가사가 아니라면, 대개는 자신의 인생에 얼추 비슷하게 투영된다.
그러나 순진하기만 한 화자는, 무대 위의 가수가 기타 줄 튕길 때부터 이미 그 곡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노랫말은 더욱 흡인력 있게 들릴 것이고, 자신의 삶과 연결 지으며 아찔함까지 느낀다.
I heard he sang a good song/ 그가 노래 잘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I heard he had a style/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고 들었죠
And so I came to see him/ 그래서 보러 온 거에요
To listen for a while/ 잠깐 노래 들으러
And there he was this young boy/ 그랬는데 거기에 이 젊은이가 있었어요
A stranger to my eyes/ 처음 보는 사람이었죠
이 가수가 노래를 꽤 잘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부른다는 소문이 퍼졌나보다. 화자는 그가 소문만큼 노래를 잘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입소문만 듣고 찾아간 무대에서, 마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듯 그녀만 알고 있는 사연을 노래하는 가수를 보고 넋이 나가버렸다.
아마도 화자는 쓰라린 사랑의 상처를 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는 슬픈 영화를 봐도 자신을 대입시키고, 글 한 줄을 읽어도 자신을 끼워넣기 마련이다. 하물며 음악은 더욱 직접적으로 감성을 자극시킨다.
비관적인 사람에게 행복한 시절은, 덤으로 잠깐 주어진 것 쯤이고, 불행한 시절은 그렇게 운명 지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를 네모칸에다 쑤셔 몰아넣고 자신도 그 안에 들어가, 스스로를 가두기 일쑤다.
객관적인 시각은 돌돌 말아두었기 때문에, 모든 사물을 주관적으로만 이해한다. 그렇기에 화자는 처음 보는 가수의 노래에 자신의 어긋난 사랑과 고단한 삶을 단박에 맞춰버리는지도 모른다.
I felt all flushed with fever/ 열이 나서 얼굴이 온통 화끈거리는 걸 느꼈어요
Embarrassed by the crowd/ 사람들이 많아서 당황했구요
I felt he found my letters/ 내 편지를 찾아내었나 싶었어요
And read each one out loud/ 그래서 하나씩 큰 소리로 읽는다고 느꼈죠
I prayed that he would finish/ 그만해 주길 바랐어요
But he just kept right on/ 하지만 그저 계속할 뿐이었죠
이 곡의 절정 부분이다. 가수의 노랫말에 화자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농도가 점점 짙어간다. 오늘 처음 보는 가수가 자신의 사연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궁금해하면서, 숨겨둔 편지라도 찾아서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만약 그렇다면 관객도 많은데, 저 사람들이 다 내 사연을 듣고 있는 거잖아. 아욱, 쪽팔려. 제말 그만 좀 해주세요, 하며 두 손을 꼭 모은다. 이 정도면 몰입감이 지나쳐, 자칫 머리에 꽃이라도 달아야 될 지경이다. 정작 화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속마음에 대해 1도 알 수가 없건만.
윤시내 씨의 <D.J에게>라는 곡이 오버랩된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잊었던 그 사람 생각나요, D.J” 그 옛날 음악다방에서 쪽지에 신청곡 적어 DJ 박스에 수줍게 밀어 넣곤 했던, 추억 만개한 시절의 이야기다.
긴 뒷머리 쓸어 날리며, “오늘은 왠지” 하던 DJ들이 넘쳐났고,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커피숍으로 몰려갔다. 신청곡이 가장 먼저 뽑힌 사람은 찻값이 면제되는 내기를 하곤 했는데, 내 친구 하나는 3학년 1학기가 시작되면서 황급히 휴학계를 내더니 서둘러 그 DJ와 결혼을 했다. 우리가 신청곡 적고 있을 때, 그녀는 연애편지를 적고 있었던 것이었다.
He sang as if he knew me/ 그는 마치 나를 아는 듯 노래했어요
In all my dark despair/ 온통 어두운 절망에 빠져있는 나를
And then he looked right through me/ 그러면서 나를 빤히 보았죠
As if I wasn't there/ 마치 내가 거기 없는 것처럼
And he just kept on singing/ 그리고 계속해서 노래 불렀어요
Singing clear and strong/ 분명하고도 강렬하게
가수가 노래하면서 관객과의 눈 맞춤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물며 나는 콘서트에서 어떤 남자 가수의 손을 부여잡은 일도 있었다. 열창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 가수의 열혈팬이었던 친구와 콘서트 장에 간 적이 있었다. 노래는 좋아했어도, 가수는 그다지 애착하지 않았는데, 친구의 강권으로 머나먼 용산 블루 스퀘어엘 쫄래쫄래 갔더랬다.
감미로운 사랑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르는 그 가수는, 감정이입을 위해 한 분을 향해 노래하겠다며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내 앞의 야트막한 작은 난간에 걸터앉는 것이었다. 아마도 젊은 여자들을 겨냥하면 이래저래 기분 상할 수 있는 팬들이 많을 테니, 가장 안심되는 나이대의 관객을 골라야 했을 것이고, 하필이면 그게 나였던 것이었다.
노랫말에 취한 그 가수가 불러주는 노래는 가슴 콩닥 이게 했고, 사우나에서도 안 열리던 땀샘이 열릴 정도였다.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면서도, 고맙고 황송하여 간간이 두 손으로 하트를 뿅뿅 날려주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손을 내밀었고 난 에라 모르겠다, 계 탔다 생각하련다, 하고는 덥석 두 손을 잡고 한참 동안 있었던 것 같다. 잠깐이었을망정 나에게는 한참 동안으로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내 친구는 다른 가수로 갈아탔고, 난 그를 최애 가수 중 하나로 등극시켰다.
이런 경험을 해 본 나로선, 이 노래의 순진한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꼈을 감정이 올곧이 느껴진다. 공연장을 나온 화자의 그 후 삶은 어떨지. 그 가수의 덕후가 되어 공연장마다 다니는 사생팬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그러는 사이, 자신의 아픔은 서서히 녹아 이슬방울로 휘발해 버렸으면 좋겠다. 참이슬 댓 병이어도 좋겠구.
이미지: Gem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