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Sung by ABBA
No more champagne/ 더 이상 샴페인도 없고
and the fireworks are through/ 불꽃놀이도 끝났어요
Here we are me and you/ 이곳에는 나와 당신만 있네요
Feeling lost and feeling blue/ 상실감과 우울함을 느끼며
It's the end of the party/ 파티는 끝났고
and the morning seems so grey/ 아침은 너무나 흐릿해 보여요
So unlike yesterday/ 어제와는 그토록 다르네요
Now's the time for us to say/ 이제는 우리가 이렇게 말할 시간이에요
새해가 밝았다. 시간은 그저 충실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뿐인데, 하루 사이에 해가 바뀌어 작년이 되고, 새해가 되는 변곡점을 찍었다. 드러나게 바뀐 건 달력뿐인데, 달력이 바뀌면서 스케줄러도 바뀌고, 마음가짐도 바뀐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엔 으레껏, 잘 견뎌 온 한 해를 돌아보고, 또다시 펼쳐갈 미지의 탐험을 기대하며 축배를 든다. 하루씩 365개의 베일이 벗겨질 때 너무 큰 진폭의 희비로 인해 현기증 나지 않길 바라면서.
얼마 전에 작고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불꽃놀이는 잠깐일 뿐”이라는 새해 메시지를 날린 적이 있었다. 그 단순 명료한 말은 가슴팍에 화인처럼 새겨져, 이따금씩 그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늘 불꽃놀이에 취해 살 수는 없는 일이다. 혹, 있다면 네로황제를 불러오는, 어마무시한 세계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 화려한 불꽃놀이에 맞춰 샴페인도 터뜨리며 근사한 마무리를 하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에 맞닿아 있다. 정작 새해 첫날은 전날 마신 술기운의 알딸딸함을 채 떨구지 못해 흐릿한 눈으로, 왁자지껄했던 파티의 뒷정리를 하면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어제는 활기찬 모습으로 분주하고 생기 있게 파티 준비를 했건만,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도 돌아가고 호스트인 화자 부부만 남은 집에는 적막만 감돈다. 흐트러진 테이블에는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술잔과 먹다 남은 차가운 음식만 여기저기 놓여있을 뿐이다. 새해 첫날은 이렇게 어지러운 배경에서 시작하기 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덕담은 잊지 않는다.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행복한 새해 되시길
May we all have a vision/ 우리 모두 꿈을 가지길 바래요
now and then of a world/ 이따금 세상에 대해서도 꿈을 가지길
Where every neighbour is a friend/ 모든 이웃이 친구인 곳이기에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행복한 새해 되시길
May we all have our hopes/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지길 바래요
our will to try/ 노력하려는 의지를 가져봐요
If we don't/ 안 그럴 거면
we might as well lay down and die/ 차라리 누워서 죽는 게 나아요
You and I/ 당신과 내가
행복한 새해를 기원하며 주고받는 첫인사는 서로의 꿈과 희망을 응원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행복도 담겨있다. 아무리 인간이 제각각 고립된 섬이라 할지라도 섬을 잇는 다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다못해 그 엄혹했던 코로나 시기에도 마스크를 낀 채 서로를 이어주는 가시적, 비가시적 다리는 있었다.
미국의 유대계 작가 중에 버나드 맬러머드(Bernard Malamud)라는 걸출한 소설가가 있다. 주로 미국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유대인 하층민이 겪는 소외를 다루었는데,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핍박받는다. 작품 속 대사 중 “Life is to be lived”(인생은 살아낼 수밖에 없는 것)가 유독 아프게 와닿는다. 인생은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어쩔 수 없이 “살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말에서부터 고행자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맬러머드는 고통을 하나의 통과의례라고 보았으며, 고통이라는 관문을 지나지 않으면 진실된 삶을 맛볼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인에다 가난한 하층민이라는 이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수용함으로써 초월적인 시각을 가질 때 비로소 한층 성장한 인물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동서양의 종교의식은 예법만 다를 뿐, 지향점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Sometimes I see/ 가끔 난 보죠
how the brave new world arrives/ 멋진 신세계가 어떻게 오는지를
And I see how it thrives/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번성하는지도 봐요
in the ashes of our lives/ 우리 삶의 잿더미 속에서
Man is a fool/ 인간은 어리석어요
And he thinks he'll be okay/ 그래서 자기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죠
dragging on feet of clay/ 진흙 묻은 발을 질질 끌면서
Never knowing he's astray/ 자기가 길을 잃은 것도 모르고
keeps on going anyway/ 어쨌거나 계속 나아가요
이 곡의 화자 또한 맬러머드의 인물처럼 진한 아픔과 고뇌의 기나긴 나날을 거쳐오면서 초월적 성찰에 이른 것 같다. 새해 첫날에는 밝고 경쾌하고 아름다운 것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부정적인 뉘앙스는 일부러 외면하기 일쑤다. 오로지 좋은 것에만 집중하고자 한다. 새해 벽두부터 부정 타는 말을 삼가고, 나쁜 생각 또한 애써 피하고 또 피한다.
하지만 화자는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라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제목을 가져와서, 결코 제목만큼 멋지지 않은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은근한 상징으로 깔아 둔다. 그런 한편, 삶의 잿더미 속에서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보자는 역설적인 희망의 끈을 강조한다.
또한 화자의 균형 잡힌 시각은 철학자 못지않은 깊이를 품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공감하면서도, 자신은 괜찮을 거라며 슬쩍 비켜가는, 정말로 어리석은 면모를 꿰뚫어 본다. 더구나 이 어리석은 인간은 온통 진흙 투성이의 무거운 발을 질질 끌고 다니기까지 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진흙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개운하게 흙을 털어내고 가볍게 가련만.
진흙 투성이의 무거운 발로 가는 것도 모자라, 길까지 잃었다. 이보다 더 슬픈 것은,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그저 앞만 보고 가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객관적 현실을 이보다 더 냉철하게 직시할 수 있을까. 가끔 우스갯소리로 하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말이 품고 있는 따끔함을 호되게 새겨보는 일도, 새해에는 빼먹지 말아야 될 것 같다.
Seems to me now/ 이제 나에게는 이렇게 보여요
that the dreams we had before are all dead/ 이전에 우리가 가졌던 꿈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처럼요
nothing more than confetti on the floor/ 바닥엔 색종이 조각만 있을 뿐이죠
It's the end of a decade/ 10년의 끝이에요
In another ten years time/ 또 다른 10년 동안
who can say what we'll find/ 무엇을 찾아낼지는 아무도 몰라요
What lies waiting down the line/ 저기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In the end of eighty-nine/ '89년의 마지막에
화자의 투명한 현실인식은 이 단락에서 “Life is to be lived”(인생은 살아낼 수밖에 없는 것)에 이른 것 같다. 이전에 가졌던 거창한 꿈이 지금에 와서 다 무슨 소용이랴, 지금은 지금의 꿈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니런가. 전날의 망년회 겸 신년회 파티가 끝난 후, 집안은 온통 어질러져있고, 바닥엔 축제의 오색종이 조각이 난무하지만, 말끔히 쓸어내고 새롭게 10년을 살아내어야 할 때임을 다짐한다.
이 곡은 1979년에 만들어져, 1980년에 나왔다. 따라서 10년의 끝은 1969년에서 1979에 이르는, 보내버린10년에 해당되고, 또 다른 10년은 화자가 처해있는 시점인 1979년 말에서 새로 맞이할 1989년까지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경험했기에 그 시절이 어땠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당시의 화자는 1989년까지 10년이라는 미지의 세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자못 궁금했나 보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 누구랄 것 없이 10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꾸리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겠지만, 그 부분은 서프라이즈로 남겨두자.
대개 연초에는 1년 단위로 계획을 짠다. 하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숱한 고통을 잘 견뎌내어 통통볼처럼 타격감은 없고, 내공은 깊어진 화자는,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막연히 헤아려 본 것 같다. 어려서는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죽음의 시기까지 라이프 주기를 만들어도 보았지만, 이제는 10년 뒤를 상상하기가 겁이 난다. 그래서 소심하게나마 1년씩이라도 살뜰하게 운용해 볼란다. 하루하루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산이며, 아직은 새해인사가 유효한 날이니 지금부터 1년의 마라톤이 시작된거다. 보신각 종소리를 기점으로 한 출발신호와 함께,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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