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Miles>, 고단한 노동의 나날

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by 늘 쪽빛바다

Sung by Peter, Paul & Mary


If you miss the train I'm on, you will know that I am gone/ 내가 타고 있는 기차를 아쉬워할 즈음이면, 당신은 내가 떠났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당신은 100마일 밖에서도 기적소릴 들을 수 있겠죠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100마일...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당신은 100마일 밖에서도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겠죠



이 곡은 이곳저곳 옮겨 다녀야 하는 떠돌이 노동자의 애환이 아프게 녹아있다. 화자는 한 곳에 정착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디서 공사를 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이른 새벽 첫 기차를 타고 가서, 얼마간 고단한 품을 팔고 가족의 빵값이라도 벌어 온다. 그렇게 정해진 기간 동안 품을 팔고 나면, 또 다른 일을 찾아 길을 떠난다.


날품팔이 노동자의 일상은 단순할 수밖에 없다. 노동으로 피곤해진 몸을 뉘이기 무섭게 다음날은 밝아온다. 오늘이 어제런 듯, 지리멸렬하게 이어져가는 노곤한 노동의 나날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리가 놓이는지도 모르게 놓이고, 철로가 생기는지도 모르게 생긴다.


화자는 다음 공사판을 향해 첫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루 종일 허드렛일을 하고 곤한 단잠에 빠져있는 아내가 깰까 봐 조심조심 일어나서, 주섬주섬 외투를 걸치고 첫 기차를 탔다. 날품팔이의 피곤한 삶이 일상이 되었지만, 아내의 고단함까지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화자는, 아침밥도 거르고 가벼운 짐보따리 챙겨 들고 첫 기차에 올랐다.


저 멀리 기적소리가 울리면 그때서야 화들짝 잠을 깬 아내는 자신의 무심함을 탓하리라. 동트기도 전에 새벽 기차를 탄 남편을 배웅하지 못한 미안함으로 한참 동안 멍하니 기적 소리를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100마일이면 160킬로미터에 해당되는데, 그 정도 거리의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추억 돋는 ‘소머즈’라면 또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마일씩 멀어져 갈 때마다 화자와 아내는 각자의 기적소리를 헤아린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질수록 심리적인 거리는 더 가까워져서 안타까운, 아름답게 가난한 부부의 모습이다.



Lord I'm one, Lord I'm two, Lord I'm three, Lord I'm four/ 주여, 저는 100마일, 200마일, 300마일, 400마일씩 멀어집니다

Lord, I'm five hundred miles from my home/ 주여, 집에서 500마일이나 떨어져 있어요

Five hundred miles, five hundred miles, five hundred miles, five hundred miles/ 500마일이나 떨어져 있어요

Lord, I'm five hundred miles from my home/ 집에서 500마일이나 떨어져 있다구



화자의 소박한 바람은, 신이 자신의 고단한 삶을 이해해 주는 것이다. 주변에서 살뜰하게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잠깐의 동료들도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들다. 인생의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 연민을, 적어도 신은 알아주셔야 한다. 그 궁핍의 끝에는 천국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달픈 노동과 서러운 나날들이 영원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잠깐이나마 구원을 꿈꿀 수 있어야 하기에, 신께 의탁할 수밖에 없다.


신마저 외면한다면 그들의 강퍅한 삶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으랴. 신에 대한 온전한 믿음 외에는 달리 매달릴 데 없는 화자는 기차가 집에서 멀어질 때마다, 100마일씩 헤아려본다. 그렇게 500마일이나 떨어졌겠거니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거리 재기 상상은 화자가 유일하게 즐기는 시간 줄이기 게임이다.


그 옛날, 입영열차에 몸을 싣던 청년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빡빡머리 청년이 탄 기차가 기적소리 요란하게 출발하면, 밖에서 손 흔들던 부모님, 연인과도 점점 멀어져 간다. 떠나는 청년은 청년대로, 안쓰러워 눈물짓는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안타까운 연인은 연인대로, 제각각 마음의 정착지는 한 군데로 모두어져 있다. 아쉬움이 클수록 마음을 나누는 뭉클거림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청년은 기차가 출발하는 곳과 반대방향을 헤아리며, 지금쯤 집에서 50킬로쯤 떨어졌겠거니 생각한다. 그를 배웅하던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쯤 훈련소를 향해 50킬로쯤 갔겠거니 계산하리라.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생각의 고무줄을 당기며 그 힘든 하루를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거리를 쪼개어 가며 상대를 생각하노라면 500마일, 800킬로나 되는 거리는 차곡차곡 그리움으로 채워진다.




Not a shirt on my back, not a penny to my name/ 등을 덮을 셔츠 하나 없고, 내 이름으로는 동전 한 닢도 없답니다

Lord, I can't go a home this away/ 주여, 이렇게 멀리 떨어져 집에도 못 가네요

This away, this away, this away, this away/ 이렇게 멀리 떨어져

Lord, I can't go a home this away/ 이렇게 멀리 떨어져 집에 갈 수도 없어요



이 가련한 화자는 여벌의 옷도 없다. 여행객들은 갑자기 추워질 때를 대비하여, 셔츠 위에 가벼운 스웨터를 어깨에 걸치곤 한다. 어깨에 걸친 것만으로도 등이 따습고, 마음의 온기도 조금은 채워진다. 하물며 차가운 새벽 공기를 견뎌내려면 이런 여벌의 스웨터가 필요하거늘, 화자에게는 그것조차도 사치품이다.


자기 이름으로 동전 한 닢도 없다는 것은 은행에 비축해 둔 통장이 없다는 말이다. 하루 벌어 하루 쓰기도 바쁜데, 언제 돈을 저축해 둘 수 있으랴. 화자는 500마일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피땀 흘려 모든 돈을 아마도 배낭 깊숙한 곳에 꾸깃꾸깃 숨겨두었으리라. 은행엔 갈 시간도 여유도 없을 것이고, 여분의 옷이 없듯 여분의 돈도 없는 불안정한 나날이 계속될 뿐이다.


고단한 노동 중에, 그래도 함께 일하는 뜨내기 동료와 잠깐 동안 친분을 나누기도 하리라. 단비 같은 휴식시간엔 담배도 나누어 피고, 고향 얘기도 하고, 마른 빵도 뜯어먹으면서 잠깐은 웃기도 하겠지. 다음 행선지 정보도 교환하고, 어디에서 하천 공사를 한다더라는 말도 전해 들을 테고.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짧은 인연의 고리를 잠깐 묶었다 풀었다 하는 방랑자의 삶을 꾸려갈 테지.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노동 현장에서 쇳가루 돌가루를 마셔본 적이 없음에도, 이 노래에 공감하고 쓰라림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가난한 노동의 나날은 표층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고, 심층적으로는 우리 인생의 나날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얼마나 터벅터벅 걸어왔을지,천국 또는 지복의 땅이라는 고향에 이르려면 얼마를 더 가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걸어온 걸음을 이쯤에서 쭉 돌아보자니, 아득히 멀리도 왔구나 싶다. 그럴진대 이즈음에서 적당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쉬었다 가도 좋으리.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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