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펼쳐보는 올드팝송
Sung by Bee Gees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오, 당신은 휴일 같은 사람, 대단한 휴식처예요
It’s something I think worthwhile/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대단한 사람이죠
If the puppet makes you smile/ 꼭두각시 인형이라면 당신을 웃게 하련만
If not, then you’re throwing stones/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성질을 부려요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돌을 던지고, 또 던지면서
이 곡은 얼마 전 영면에 드신 안성기 배우님의 영화 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도 쓰였다. 빗속 슬로 컷과 패스트 컷의 절묘한 배치와 더불어, 이 곡은 인상적인 영상미를 부각시키는데 톡톡히 한몫했다.
다른 한편으로 미학적 효과를 심장 쫄깃하게 끌어올리기 위해 가장 공들인 장면에서 흘러나온 이 곡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던 탈주범 지강헌 사건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면서 틀어달라고 요구했던 이 곡이 누아르 영화에 얹히면 어쩔 수 없이 인간적인 비애의 감정이 증폭된다.
이 곡의 화자는 잔뜩 주눅 들어있는 사람이다. 인생에서 통쾌한 웃음을 크게 날려본 경험이 그닥 없어 보인다. 가난 때문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차별대우를 받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덕 없고 냉정한 부모님으로부터 흔한 칭찬 한번 못 듣고 자랐을 수도 있다.
이런 화자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연인이다. 하지만 연인도 화자에게 살가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집에서 이리저리 차이고 다니는 사람은 동네 강아지한테도 차인다고 했던가. 연인은 화자를 분풀이 대상으로 여긴다. 아마도 그녀 또한 분노와 억울함 가득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연인을 웃게 만드는 것은 꼭두각시 인형뿐이다. 퍼핏을 가지고 놀 때 그녀는 순진한 웃음 지으며 잠깐동안은 순수함을 회복한 듯 보인다.
Ooh, it’s a funny game/ 오, 우스운 게임이에요
Don’t believe that it’s all the same/ 모든 것이 다 같다고 믿지 마세요
Can’t think what I’ve just said/ 방금 내가 했던 말도 생각나지 않거든요
Put the soft pillow on my head/ 내 머리에 부드러운 베개를 받쳐주세요
모든 것을 우울과 자조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화자에게는 사랑도 인생도 의미 없는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마음을 준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는데, 무얼 더 믿을 수 있으랴.
연인은, 자신의 의지를 실어 마음대로 조종하며 감정을 투사시키는 인형놀이를 즐긴다. 그녀는 퍼핏놀이 할 때만 웃는다. 자기가 원할 때면 언제라도 퍼핏을 조종하여 걷게도 만들고, 상대방을 쓰다듬기도 하고, 때로는 춤추게도 만든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화자는 자신이 조종당하는 퍼핏 같다고 느낀다. 유일한 휴식처라고 생각하는 연인이지만, 자신을 퍼핏처럼 다룬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들 수 있다면 좋으련만, 화자에게는 그런 잠깐의 휴식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Millions of eyes can see/ 수백만 개의 눈은 다 볼 수 있는데
Yet why am I so blind?/ 왜 나는 이토록 못 보는 걸까요?
When the someone else is me/ 다른 누군가가 나일 땐
It’s unkind, it’s unkind/ 고약해요, 네, 고약해요
화자는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진실을 자신만 못 본다고 생각한다. 주눅 든 채, 오랜 세월을 눈치만 보고 사는 사람은 자존감이 바닥을 길 수밖에 없다. 바닥을 치고 오르는 것은 주식 그래프에서나 가능한 일. 구겨진 자존감을 다림질하여 쫙 펴는 일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녀는 화자가 평온한 휴일이라며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지만, 정작 그녀는 화자에 대한 존중감이라곤 없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맞춰주다 보면, 자신은 다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웃고 싶지 않은 웃음도 때로는 쪼개줘야 되고, 울고 싶어도 꾹 삼킬 수밖에 없는 애잔한 상황도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화자는 잘못 잠가버린 첫 단추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그녀의 비난과 조롱을 감수하며 퍼핏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Ooh, you’re a holiday, everyday, such a holiday/ 당신은 휴일 같은 사람, 매일 휴일이죠
Now it’s my turn to say/ 이젠 내가 말할 차례네요
And I say you’re a holiday/ 그래서 난 당신이 휴일이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It’s something I think worthwhile/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대단한 사람이죠
If the puppet makes you smile/ 꼭두각시 인형이라면 당신을 웃게 하련만
If not, then you’re throwing stones/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성질을 부리죠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돌을 던지고, 또 던지면서
연인에게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일을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진정한 휴일이란 없다. 연인이 아무리 물고 뜯어도 화자는 연인을 휴일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전쟁 같은 세상에서 자신을 힘들게 만들긴 하지만, 그런 그녀라도 없으면 지탱할 마지막 기둥이 무너져 내릴 것 같기 때문이다.
화자를 퍼핏으로 조종하고, 성에 차지 않으면 마구 성질부리며 돌을 던지듯 상처와 아픔을 주는 연인이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화자에게 있어 연인은 피와 살이 있는 인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팍팍한 삶의 조건들, 자신이 제어하기엔 역부족인 부조리한 상황을 의미할 수도 있다.
화자의 연인은 “운명의 여신”일 수도 있다. 운명의 여신은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다. 그녀는 화자를 퍼핏처럼 다루며 그의 의지를 꺾어놓고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녀는 두 눈을 가리고 무심하게 수레바퀴를 돌리면서 그의 운명을, 우리의 운명을 장난질하기를 즐긴다.
운명의 여신이 가혹하게 족쇄를 채울지라도, 우리에겐 힘들게 살아낼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들이 있다. 오늘만 버티자고 다짐하지만, 다음날이면 또 다른 문제와 맞닥뜨리기 일쑤다. 남들은 잘도 간파하는 것을 왜 나만 못 보고 뒷북질일까 자괴감에 괴로워하는 시간들.
화자는 왜 나로 살지 못할까, 나답게 살지 못할까로 고민하며 찢어진 조각들 꾸역꾸역 주워 담는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이럴 때 누군가 화자에게 건네주는 한마디가 “당신은 나의 휴일”이라면 얼마나 위안이 될까. 화자는 자신을 봐주지 않는 무정한 연인에게 늘 그 말을 했을 뿐, 들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누군가에게 존중받는 뿌듯함으로 기운 내어 살 수 있으련만.
복권 추첨에서 "준비하시고, 쏘세요!" 하듯, 운명의 여신도 회전하는 수레바퀴를 마구 돌려대다가 언젠가는 화자에게 '착한 여자 당첨권'을 선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서로에게 휴일이 되어 평화와 감사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때쯤엔 영원한 휴일인 죽음을 맞게 되리니, 쓰읍.
이미지: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