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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 Jan 16. 2023

작업자와 검수자의 오픈 채팅방, 그곳은 던전

데이터 라벨링을 위한 작업자와 검수자, 프로젝트 매니저 간 의사소통은 대부분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이루어진다. 데이터 라벨링 사이트 내에 구축되어 있는 게시판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빠른 의사소통을 위해 적게는 십 수 명, 많게는 수백 명이 모여있는 오픈 채팅을 이용하게 된다. 


해당 채팅 창에서는 주 7일, 24시간 채팅이 오간다. 내가 작업을 잘한 건지, 내 작업은 왜 반려가 된 건지, 이렇게 작업하는 게 맞는지 실시간으로 대화가 올라온다. 가이드의 변경 내용도 수시로 공지가 되고, 고객사의 요청 사항도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그 대화를 볼 때면 데이터 라벨링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싶어 늘 신기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꽤 장인정신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 여름, 세그멘테이션을 하는 작업의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게 됐다. 따지고 보면 시급이 5000원 정도 되지만 꽤 난이도가 있는 작업이었다. 세그멘테이션에 대한 작업 경험이 많이 없을 때라 나의 작업이 살짝(?) 미흡할 때였다. 우선 4장 정도를 작업해서 넘겼는데, 내 작업을 검수하는 검수자가 새벽 시간에 오픈 채팅에서 나를 언급했다.


'왜 이건 안 했어요, 가이드는 제대로 본 건가요, 000님이 이렇게 작업하면 내가 너무 힘들어지는데요, 3번째 장에서도 똑같은 잘못을 하셨네요, 하. 아니 왜 선을 제대로 못 그어요. 너무 짜증 나네요.'


채팅이 뜸한 새벽의 채팅창에는 내 실명이 거론된 질책이 이어졌다. 사실 저것보다 훨씬 감정적인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해당 채팅방에 있지 않아서 정확한 표현을 옮기기 힘들다. 연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나의 오픈 채팅방 아바타는 바닥에 누워 울고 있는 어피치였다.


내 작업이 그 검수자를 미치도록 화나게 만들 정도로 형편이 없었던 건지, 그 검수자가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았던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면 업무라면 쉽게 하지 못할 말을 듣게 되었고, 대면 업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누군가는 하게 되는 것 같다. 저 프로젝트 이후에 들어간 오픈 채팅방에서는 저런 일은 없었기에, 이 경험이 유난히 각인되어 있다. 


데이터 라벨링 작업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채팅창 아바타 프로필 뒤에 숨어있다. 채팅방에서 실명을 요구하는 곳도 있지만, 실명을 쓴다고 해서 모두가 비즈니스 매너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연령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데이터 라벨링을 한다는 것만 빼고 거의 모든 것이 다를 것 같은 사람들이 모인 채팅방. 특히 작업자와 검수자가 한 방에 있다면 재미있는 대화가 오간다. 검수자는 작업자를 잠정적인 불량 작업자로 바라보고, 작업자는 검수자를 작업자보다 못한 검수자로 바라본다.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 


가끔 zoom으로 미팅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육성이 오갈 때도 마찬가지다. 작업자와 검수자가 한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자들의 작업을 신뢰할 수 없다. 작업자들의 작업을 취소할 수 있는 기준을 달라.'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검수자도 있었고, '같은 초보들끼리 왜 검수를 시키냐. 검수자 선별을 제대로 해달라.'라고 요청하는 작업자도 있었다. 양쪽의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대화는 이렇게 종종 오갔다. 


미세노동자들의 오픈 채팅방은 던전이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 개인의 판단으로 서로의 작업/검수 결과를 본인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곳. 누군가의 작업이 미흡했을 때 서로 도와서 프로젝트의 품질을 높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누군가의 미흡한 작업은 검수자 입장에서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일 뿐. 누군가의 검수가 잘못되었을 때, 검수자에게 제대로 된 기준을 전달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건 뒷전이다. 내 작업을 감히 잘못된 기준으로 판단하다니, 그건 괘씸한 일일 뿐.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정해지지 않은 의사소통 방식으로 계속 무언가를 참아내야 할 지하 감옥 같은 곳. 


가끔 누군가가 검수자에게 인격적으로 모독을 받고 있을 때도 아무도 나서서 제지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을 보고만 있었던 적이 있다. 오히려 재미있어하면서. 작업자는 연신 'ㅠㅠ'를 쓰고, 검수자는 '-_-;'의 태도를 취하던 그 채팅방. 함께 미세노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치고받는 순간들. 데이터 라벨러들이 똘똘 뭉치는 것보다는 다 물어뜯는 게 데이터 라벨링 사이트 관계자들이 보면 흐뭇해할 광경이지 않을까 싶다.



https://e.kakao.com/t/charming-ap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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