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의 숲 5부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어떤 이는 평생 부모 탓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 나는 내 감정을 표현조차 못 하는 사람으로 자랐을까.
왜 부모님은 나를 이렇게 키운 걸까.
왜 나는 내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말보다 먼저 눈물이 났을까.
나는 내 감정을 감추고, 눌러두고, 꾹 참고 살아왔다.
그리고 처음엔, 그게 모두 부모님의 탓인 것 같았다.
부모님을 원망했다. 숨이 막혔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양가족이 새끼 호랑이를 맡아 기르게 되었다고 한다.
호랑이는 양의 부모 밑에서, 양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아갔다.
사랑도 받았고, 큰 갈등도 없이 지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호랑이는 자신이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답답하고, 억눌리고, 자신의 본성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부모에게 화도 났다. “왜 나를 이렇게 키웠냐”고 원망도 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 부모도 자신이 가진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키웠다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만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나의 부모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엄마도, 아빠도…
그저 그들이 받은 만큼밖에 줄 수 없었던 사람들.
어쩌면 사랑받지 못해, 사랑 주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
나는 이제 부모님의 존재 자체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여전히 상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행동과, 그 존재를 분리해서 보기로 했다.
“엄마가 그랬어”가 아니라
“엄마가 그런 행동을 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나에게는 관계적 자립이었다.
부모님을 무조건 이해하겠다는 다짐도,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겠다는 각오도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이제 원망이 아닌 선택을 하기로 했다.
사랑받지 못한 이들이
사랑을 주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배우고 싶다.
그래서 나는, 원망을 내려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