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의 숲 4부
처음으로 타지에서 살게 되었다.
아는 사람도, 반가운 얼굴도 하나 없는 도시.
하루 네 시간, 지하철에 몸을 맡기며 학교를 오갔다.
너무 피곤해서 의자에 앉지 못하는 날이면, 문 옆에 기대어 서 있었다.
출근 길과 퇴근 길은 마치 콩나물들이 서로 붙어 있듯이 그 하나의 콩나물 대가리가 된 것 같았다.
그날도 사람들에 휩쓸려 창가에 붙어 있던 어느 순간,
‘그냥… 이대로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몸은 축 처져 있었고, 마음은 더 이상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도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고,
돌아가야 할 공간은 그저 나 혼자뿐이었다.
그 무력한 감정 속에서, 나는 ‘살고 싶다’는 감정을 처음 자각했다.
그래서 수업 중간에 뛰쳐나가 오랜 친구에게 전화하며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뭔가 바꿔야겠다고.
그래서 선택한 게 기숙사 생활이었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룸메이트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적응도 되며, 나는 조금씩 나를 회복해갔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식사를 챙기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누군가의 잔소리 없이도
나는 제법 부지런히 내 몫을 해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살림은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이 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정신적으로 피폐하거나 무기력할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공간’이라는 걸.
이불은 뒤엉키고, 설거지는 쌓였고, 바닥엔 옷들이 흘러내렸다.
그러다 반대로, 방이 조금씩 정돈되는 걸 보며
‘아, 나 다시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걸 느끼기도 했다.
졸업은 한 후에 독립한 입장에서,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사람의 가장 좋은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나의 집을 한동안은 완벽한 모델하우스 같은 방으로 유지되기를 원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 흰 커튼, 깔끔한 침대.
“왜 나는 저렇게 못하지?”
“왜 나는 늘 지저분하지?”
그렇게 나를 몰아세웠다.
그런데 문득 알게 됐다.
내가 보고 있는 건 그 사람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그 사람도, 어쩌면 프레임 밖에서 빨래를 미뤘을지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의 ‘잘난 순간’만 보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쉽게 깎아내린다.
그때부터 나는 ‘완벽함’ 대신 ‘움직임’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빨래를 해야 할 땐 오늘은 분류만.
내일은 세탁기 돌리기.
모레는 걷고, 개기.
할 일을 잘게 쪼개니 부담이 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다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살림은 사는 힘이다.
생활을 정돈한다는 건, 내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는 작고 조용한 선언이다.
나는 여전히 방의 상태를 보며 내 마음을 점검한다.
바닥이 어지럽고, 설거지가 미뤄져 있다면
내 안에 무엇이 힘든지부터 바라본다.
그리고 작은 일 하나씩 다시 시작해본다.
내 공간을, 그리고 내 삶을, 다시 세워본다.
자립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는 ‘작은 살림’ 안에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