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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키드 Jul 13. 2021

"엄마가 두 개였으면 좋겠어."

나는 세 개였으면 좋겠다, 하나는 나도 갖게.

정신없는 저녁 식사 시간을 지나 방금 막 목욕을 끝내고 나온 둘째를 거실에 앉히고 옷의 단추를 잠가주는데 첫째가 말했다.


“엄마가 두 개였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요즘 첫째가 겪는 아쉬움, 갈증 그리고 때로는 분노로 표출되는 그 감정을 알 것 같아서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그러게 엄마가 둘이면 하나씩 나눠주면 될 텐데 하고 상상을 해보다가 잠시 멈칫했다. 뭐야 애들한테 하나씩 나눠주면 그럼 나는?


“엄마는 기왕이면 세 개였으면 좋겠다. 첫째 하나, 둘째 하나 나눠갖고 나머지 하나는 엄마 꺼!”


내 말에 갑자기 첫째가 베란다로 나가더니 혼자 창밖을 한참 보며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거실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내게 다가와서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산타할아버지랑 하늘에 있는 하늘님한테 엄마 세 개 만들어 달라고 했어! 소원 들어줄 거야.”


첫째가 이렇게 엄마가 하나뿐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 엄마가 인간 걸음마 보조기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혼자서 걷지 못해 어딜 가나 나를 끌고 다니는 둘째 탓에 첫째가 갑자기 불러도 바로 가기 힘들다.

첫째가 불러서 그쪽으로 가려면 억지로 둘째를 바닥에 앉히고 ‘으앙!’하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다.

근데 또 막상 둘째가 울면 첫째가 같이 울려고 해서 이래저래 난감하다.

(애들 둘 중에 한 명이 울든, 둘 다 울든 아님 내가 운다...)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마다 멀리서도 나를 부른다. 후...


둘째를 출산하기 전부터 어떻게 둘 사이에서 각자 피해 의식 갖지 않게 잘 대할 수 있을지 육아책도 읽어보곤 했지만…

막상 실전으로 닥치니 그때 읽은 건 떠오르지도 않는다.

나도 모르게 그나마 말이 통하는 첫째 쪽으로 푸시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둘째에게 하는 말도 결국 알아듣는 건 5살 첫째이다 보니 여러모로 미안한 마음이 자주 든다.

어떤 때에는 나도 몸이 두 개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둘째는 7개월쯤 되었고, 첫째는 네 살이었다.

두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서 부대끼다 보니 체력과 멘탈이 거의 바닥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날따라 둘째가 뭔가 심기가 불편한지 하루 종일 보채고, 첫째도 계속 배가 아프다고 징징거렸다.

그러던 와중에 첫째가 바지에 실수를 했다.

기저귀를 차고 있지 않은 채로 응가를 해버렸던 것이다.


“엄마가 한 번에 두 가지를 어떻게 다 하니?”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둘째와 바지에 실수한 걸 어쩔 줄 몰라서 나를 올려다보며 우는 첫째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하다 끝내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 첫째가 내게 했던 말은 ‘미안해’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면서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며 그 모습에 놀랐는지 더 크게 울었다.

엄마가 동생 우유 먹이고 있어서 응가하러 가고 싶다는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는 말에 한번 더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더 크게 울고 말았다.

그날은 첫째랑 둘이 부둥켜안고(물론 그 사이에 둘째도 끼인 채로) 펑펑 울었다.


첫째도 아직 어리다는 걸 때때로 깜박할 때가 있다.


첫째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인 미숙한 엄마라는 것이 때때로 미안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엄마를 너무나 좋아하는 우리 집 첫째에게는 내게 바라는 사랑의 크기만큼 아이에게 채워주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이 늘 있다.

예전에는 그런 미안함이 죄책감으로 이어졌지만 요즘은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차피 아이에게 완전무결한 삶을 만들어 줄 수는 없으니까.

때로는 힘들지라도 그것이 아이에게 큰 상처나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아이가 겪을 일은 겪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저녁에 혼자 운동을 하러 나가거나, 밤늦게 온라인 모임을 하기 위해 개인 시간을 가질 때마다 여전히 눈시울을 붉히는 첫째를 보면 짠하지만 나는 나의 삶도 지키고 싶다.

오늘 첫째 입에서 불쑥 나온 엄마가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온전히 엄마를 갖고 싶은 아이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알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 그냥 덤덤하게 예쁘게 그 말을 받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베란다까지 나가서 소원을 빌었다는 것이 너무 귀여워서 첫째를 와락 안아주면서 말했다.


“어휴 그랬어~? 그럼 엄마 세 명 되는 거야?”

“응, 그럼 하나는 내가 갖고, 하나는 동생 주고, 하나는 아빠 주면 되겠다!(여기서 아빠가 왜 나와...)

(바로 정색하며) 아니 아빠는 안 줘도 돼.”


옆에 있던 남편이 듣더니 끼어들며 한 마디 던진다.

“첫째야, 기왕이면 네 명 만들어 달라고 기도해 줘. 아빠도 하나 갖...”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까보다 더 정색하며 내가 말했다.

“아니, 세 명이면 돼. 아빠는 안. 줘. 도. 돼.”


남편이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서며 첫째에게 말했다.

“와… 엄마 표정 봐라…”


엄마 3호는 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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