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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키드 Aug 01. 2021

“얘 머리에서 떡국 냄새나”

동생이 아프다고 언니가 발랄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40.3”


이틀 동안 새벽에 둘째 귀에서 측정한 체온계 숫자를 보며 마음이 철렁했다.

응급실에 가봤자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야 하나 수십 번도 더 고민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붙잡고 억지로 약을 먹이고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었다.


‘이제 겨우 새벽 한 시네… 하…’


날이 밝으면 바로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는데 동트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다니.

유난히 밤이 길게 느껴졌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겨우 다시 잠이 든 아이 옆에 누웠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보이는 것 같은 아이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겨우 15개월 된 아이가 40도가 넘는 고열을 겪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해 그저 울고 짜증만 내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첫째를 통해 여러 번 단련되었다 생각했는데 둘째는 둘째대로 또 지켜보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엄마아 엄마아” 하고 나를 부르며 우는 소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마치 ‘살려줘’ 같이 들린다.

이런 울음소리는 고막을 뚫고 들어와 내 머릿속을 찌르는 것만 같아 신경이 곤두선다.


날이 밝고 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바로 진료를 받고 왔다.

의사 말로는 일반적인 감기 증상은 전혀 없이 고열이 지속되는 걸로 봐선 돌발진인 것 같다고 했다.

주로 돌을 전후로 해서 발생한다고 돌발진이라고 한다는데 마치 그 시기를 넘기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 같은 느낌이다.

안 아프고 클 수는 없을까?

신생아 시기 때는 배앓이, 이가 날 때는 이앓이, 걸음마할 때는 툭하면 넘어지고 부딪치고…

아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넘어서야 할 난관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걸 키워보니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걸 직접 겪는 아이가 가장 힘들겠지만 지켜보는 엄마도 그에 못지않게 괴롭다.


괴로워하는 아이 옆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엄마~'하고 부를 때 안아주는 것뿐이다.

이 아픔을 이겨내고 넘어서야 하는 건 오롯이 아이 몫이다.

그저 옆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온전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하고 부모인 나도 조금 더 여유롭게 지켜볼 줄 아는 어른이 되겠지.

앞으로 이렇게 오롯이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괴로운 순간들이 더 많아지겠지 생각하니 아찔하다.




엄마로서 가장 견디기 어렵고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은 이렇게 아이가 아플 때이다.

여러 가지 역할들 사이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있던 게 와르르 무너지면서 갑자기 엄마 역할의 비중이 80% 이상으로 높아진다.

표정은 심각해지고 손으로는 휴대폰을 붙들고 계속 아이의 증상과 유사 사례를 검색하게 된다.

아이가 하나 일 때는 아픈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나도 같이 아이의 아픔에 매몰되었다.

축 쳐진 아이 옆에서 나도 같이 축 쳐져있고, 마음은 내내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애가 둘이 되고… 첫째는 팔팔한 와중에 둘째가 아프니 상황이 좀 달라졌다.

맥없이 늘어져 초점이 나간 눈을 하고 있는 둘째 옆에서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싶게 까르르 넘어가는 첫째를 보니 정신이 확 들었다.


‘그래 뭐 내가 같이 아파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나? 너라도 웃으니 다행이다!’


아픈 둘째를 품에 안고 첫째의 장난에 장단을 맞춰줬다.

한 사람이라도 밝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첫째 덕분에 감정이 가라앉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혼자서 망토도 두르고 두건도 쓰면서 동화 <빨간 모자> 놀이를 하던 첫째가 갑자기 둘째 근처로 다가갔다.

마주 보고 앉아서 노는 듯하더니 머리 냄새를 킁킁 맡아보다가 나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으~ 엄마 얘 머리에서 떡국 냄새나!”


가끔 머리에서 발 냄새는 맡아봤어도(음?) 떡국 냄새라니???!!

빵 터져서 한참을 웃다가 혹시나 해서 나도 맡아봤는데 어라? 진짜다…

이건 며칠 전 먹은 떡국 국물 냄새랑 비슷한데…

아파서 사흘을 못 씻겼더니 그런가 싶어서 바로 목욕을 시켰다.


둘째가 잠든 틈에 첫째랑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린이집 일과를 생각하다가 어린이집에서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겠다고 말했더니 첫째가 정색하며 "아니 생각보다 금방 가진 않아."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배를 잡고 끅끅거리며 웃었다. ( 다섯  맞아…?)


밥을 다 먹을 때쯤 거실에서 낮잠을 자던 둘째가 일어나 칭얼거리길래 얼른 안아서 바닥에 앉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흥겹게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첫째를 바라보다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둘째와 단 둘이서만 있었다면 나도 하루 종일 같이 침울했을 텐데 첫째 덕분에 점심도 챙겨 먹고 웃기도 하면서 힘든 순간을 잘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고 있던 둘째를 내 왼쪽 무릎으로 살짝 옮기고는 오른쪽 무릎을 툭툭 치며 첫째를 불렀다.

"왜에~?" 하고 물으며 다가와 앉는 첫째를 꼬옥 안아주며 말했다.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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