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책으로 도피한 걸지도 모르겠다.
두 달간의 아이덴티티 워크숍이 끝난 뒤에는 소위 말해 '닥치고 읽기' 모드에 돌입했다.
학창 시절을 제외하고 이렇게까지 책을 열심히 읽은 건 오랜만이었다.
출근 전, 출근 버스 안, 업무 시작 전, 점심시간, 퇴근 후... 틈 나는 대로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가리지 않고 마구 읽었다.
워크숍 과정을 진행하는 내내 스스로에 대한 탐색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독서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첫째 아이 돌봄+둘째 임신 7개월 차+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당시 상황에서는 짬 내서 책을 읽는 것만이 유일한 탐색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도 들어보고 이것저것 직접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물리적인 시간도 체력도 따라주지 않으니...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시작은 '일'과 관련된 책
우선 아이덴티티 워크숍에서 오르쌤이 추천해 주신 책들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세 권의 책을 통해서 두 달 동안 배웠던 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좀 더 견고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인생학교 | 일 」 - 로먼 크르즈나릭
「어떻게 일할 것인가」 - 안냐 푀르스터, 페터 크로이츠
「코끼리와 벼룩」 - 찰스 핸디
"그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좋은 일" 때문이다. 이른바 좋은 일의 목표는 모든 것을 탈 없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자면 시스템은 시스템에 맞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같이 달리는 인간, 시스템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인간을.
그렇다. 시스템은 그렇게 작동한다. 독립적인 인성을 키우는 사람, 모가 나서 주어진 직업의 묘판 상자에 맞지 않는 사람, 이 구석에선 능력이 남아돌고 저 구석에선 능력이 모자라는 인간, 자신의 개성을 먼저 생각하고 순응하지 않는 인간은 장기적으로 시스템에 좋은 일을 할 수 없다. 시스템에 고장을 일으킬 것이고, 함께 달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어놓은 금을 넘어서려는 인간은 언젠가는 갈아치워야 한다. 그래야 조직의 속도가 계속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 책 <어떻게 일할 것인가> (안냐 푀르스터, 페터 크로이츠 지음) 중에서.
평소에 출근하면서 느꼈던 알 수 없는 무력감과 괴로움의 정체를 잘 표현된 언어로 마주하고 나니 '아...'하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일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내게는 아쉽게 느껴졌는지, 불만이라면 정확히 무엇이 불만인지를 생각해보면서 나는 일을 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을 스스로의 대한 관찰로 방향을 바꿔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변화의 욕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싹트기 시작했고 종종 가슴이 두근거렸다.
겉으로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매일이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정체불명의 기대감과 설렘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키워드 뽑기 그리고 관찰하기
책을 읽을 때는 보통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읽었다.
1)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점착 메모지로 표시.
2) 다 읽은 후에는 메모지가 붙인 곳 위주로 다시 보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 필사 혹은 키워드 적기.
3) 왜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는지 생각하고 적어보기.
아이덴티티 워크숍 과정 안에는 영감을 주는 아티클이나 강연을 보며 키워드를 적어보고 왜 그 키워드를 뽑았는지에 대해 적어보는 활동이 있었다.
워크숍이 종료된 이후에도 그때 했던 패턴을 이어가고 싶어서 '키워드 뽑아보기', '뽑은 이유 적어보기' 이 두 가지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습관처럼 강의를 듣거나 책을 볼 때 혹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키워드를 뽑아보게 된다.
이 작업은 읽거나 보고 있는 콘텐츠를 요약하는 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내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혹은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데 유용했다.
'내가 왜 이 키워드를 뽑았을까? 왜 이런 말에 감탄했을까?'
이렇게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을 통해 나에 대해 깊게 알아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믿음이 생기다
이전에는 '출근 → 업무 → 퇴근 → 육아와 집안일 → 취침'과 같은 패턴의 삶을 살았다.
주말이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거나 가끔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 전부였다.
그때의 나는 '아이가 몇 살쯤 되면 내 인생을 다시 살 수 있을까?'를 궁금해했다.
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스스로 아이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가족이 중심인 삶을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며 회사도 아이를 생각해서 꾹 참고 다니자라고 매일 되뇌었다.
이때 내가 굳게 믿고 있던 건, '아이가 태어난 이상 내가 내 삶을 욕심내는 건 무리다.'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꾸 욕심이 나는 걸 부정하려니 괴롭고 혼란스러웠다...)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책 읽기를 시작하면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새벽에 일어나게 되었다.
어둑어둑한 시간에 오롯이 혼자 식탁에 앉아 책을 읽는 재미가 생겨나자 새벽 5시 무렵이면 눈이 떠졌다.
(다시 돌이켜보니 둘째 아이 임신 후기에 접어들면서 불면증이 온 탓도 있는 것 같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 내 생각만 하는 시간이 꽤 큰 의미가 있었다.
계속 읽다 보니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게 되고, 그 프레임에 금이 가는 느낌도 받게 되었다.
그동안은 아이를 '위해서' 회사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나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나답게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게 진짜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새로운 믿음이 생겨났다.
'엄마라면 이래야 해.'
'삼십 대 초반이면 이 정도의 직업과 삶의 환경을 구축했어야 해.'
'네가 그동안 했던 일이 이거니까 앞으로도 이런 걸 해야 해.'
나는 여태껏 경청했던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넌 무엇을 좋아해?'
'넌 어떤 사람과 일할 때 가장 즐거워?'
'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질문들에 아직 제대로 답할 수는 없었지만 변화의 시작이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다음과 같은 문장이 놀랍게도 내 일기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충만한 하루였다.
"의미 있는 활동은 기쁨과 엄청난 에너지를 선사한다. 아무리 힘이 든다 해도. 반면 허드렛일은 몇 분만해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에너지 흐름과 자기 결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스스로 선택한 활동을 하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에너지와 의욕이 솟구친다. 남이 결정한 일은 그렇지 않다....
흡족한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면과 외면이 완벽하게 일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면에서 샘솟는 에너지가 밖으로 찬란하게 뿜어져 나가는 힘을 느낀다는 말이다."
- 책 <어떻게 일할 것인가>(안냐 푀르스터, 페터 크로이츠 지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