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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키드 Jun 02. 2024

채소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갓 구운 빵은 참을 수 없지만요

은영님에게.


 따뜻한 풍경의 가옥축복식 이야기를 읽으며 무척 감동받았어요. 특히 '집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을 축복한다'는 의미가 마음에 와닿았어요. 은영님의 편지를 읽으며 가옥축복식을 머릿속으로나마 잠시 따라간 것만으로도 제게도 그 축복이 전해지는 것 같았어요. 어린이 손님의 진심 가득한 방명록도 마음이 너무 따뜻해지더라고요. 저도 방명록을 남기러 한 번 꼭 놀러 갈게요. 초대해 주세요!


 지난 주말, 저희 집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이번 주에 있었던 첫째 아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부모님과 오빠가 와주셨답니다. 미리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예전에 맞춘 가족 티셔츠를 챙겨 와서는 다 같이 입고 축하해 주자고 하셨어요. 왠지 모르게 회사 야유회 같기도 하고 '파이팅!'을 외치며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웃음이 터지더라고요. 그렇게 소파에 모두 앉아서 사진을 찍는데 문득, '아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데도 이 날 하루만큼은 다 같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함께 식사하는 이 풍경이 너무 예쁘고 감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이에게도 가장 좋은 선물이 된 것 같아 흐뭇했어요.


특별한 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온 가족이 모였어요.


 생일파티가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는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서서 아이들을 각각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어요. 그러고는 둘이서 이제 막 가게 문을 열기 시작한 동네 빵집에 들렀답니다. 저는 빵을 좋아하는데,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좋았던 기억엔 늘 빵 굽는 냄새가 떠오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식빵이나 베이글처럼 화려하게 장식되지 않은 빵들이 구워지는 냄새를 맡으면 마치 어린 시절의 순수한 행복감이 솟아나는 것 같아요. 그날도 빵 몇 가지를 골라 집으로 돌아왔어요. 향긋한 헤이즐넛 커피와 갓 구워진 빵을 함께 두고 부모님과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했어요. 셋이서 이렇게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아침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부모님도 참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전 같았으면 부랴부랴 출근하기 바빠서 저는 짧은 인사만 하고 떠나고 엄마는 어질러진 저희 집을 정리해 주고는 그냥 가셨을 텐데 모처럼 함께 누리는 여유에 또 한 번 감사하게 되었어요.


 마음껏 여유를 음미하는 요즘, 거의 매일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습관이 생겼어요. 당근, 오이, 파프리카 같이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을 사서 손질해 둔 뒤 끼니때마다 챙겨 먹기 시작했어요.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몸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빨리 조리해서 빨리 섭취할 수 있는 음식 위주로 먹었던 게 마음도 조급하게 만든 것 같아서 조금씩 바꿔나가보려 해요. 덕분에 30년 넘게 싫어하던 당근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당근에게 이런 향긋함이 있다는 걸 이제 알았다니. 그리고 채소를 고르고 씻고 손질해서 챙겨 먹는 행위 자체가 너무 좋아요. 내가 나를 챙겨주는 게 마치 다른 사람이 나를 챙겨주는 것처럼 마음이 충만해지더라고요. 막상 해보면 참 별거 아닌데 그동안은 왜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시도도 안 해봤을까 싶어요.


이제는 나를 위한 식사도 정성스레 챙겨보려해요.

 은영님과 만날 때면 채식을 지향하는 은영님을 따라 식사하는 것이 저는 좋아요! 채식에 관심이 있었지만 주변에 하시는 분들이 없기도 했고, 실천할 엄두가 안나기도 했는데 은영님을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되더라고요. 마트에 갈 때면 비건 제품들에 눈길이 가고 구매해 보게 되기도 해요.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덕분에 하게 되었어요. 은영님과 함께하는 비건 식사도 너무 좋으니 앞으로도 함께해요! 생각해 보니 은영님이 왜 채식을 시작했는지, 언제부터였는지, 그 과정에서 어려운 일들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이전에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문득 다시 궁금해지네요. 이전의 내가 당연하게 해 오던 것들을 새롭게 바꿔나가는 건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텐데 비건이 너무 자연스러워진 은영님을 볼 때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곧 있으면 여행을 떠나겠네요! 지난 소풍 때 여행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꽤 긴 기간 떠나는 만큼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돌아오길 바라요. 돌아오면 여행 이야기 나눌 겸 우리 또 소풍 가요. 저도 이야기 한 보따리 쟁여두고 있을게요. 여행길에 우연한 기쁨을 자주 맞이하길 바라며 이만 줄일게요. 즐거운 시간 되기를 바라요!



- 24년 6월 2일, 포근한 일요일 밤


어느새 열 번째 편지를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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