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삶의 만년필로
그는 내 등 뒤로 돌아가 척추뼈를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손가락으로 누른다.
“인간이란 말이에요, 척추뼈 하나하나로 사물을 생각하고, 글자를 쓰는 법이에요.”
그는 말한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척추뼈에 딱 맞는 만년필만 만드는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만년필' 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맞춤 만년필을 제작해 주는 가게 주인은 단 한 자루의 만년필을 만드는 일에도 손가락의 길이와 굵기, 피부의 기름기, 손톱의 상태, 손의 흉터, 척추뼈의 상태, 기본적인 신상을 묻고, 마지막으로 무얼 쓸 작정인지를 묻는다.
만년필 한 자루에도 삶의 보인다. 남들이 좋다고 말이 하는 걸 유행처럼 쫓아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 만년필을 쓰는 사람의 삶의 자세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어울리는 걸로 만들어주는 만년필 제작자 중용의 관점이 엿보여서 좋다. 마음에 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이야말로 그 삶에 더 어울려 편안하게 오래도록 같이 할 수 있는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