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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주년 결혼기념일을 잊다니.

왜 그랬을까?

by 단아한 숲길

브런치가 내 삶에 들어오다.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은 지 일주일이 되어간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버벅거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글 쓰는 일에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요즘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 보면 내 글처럼 설익은 글도 있고, 실하게 무르익은 글도 있다. 설익은 글을 보며 위안받고 무르익은 글을 보며 도전받는다. 글에 깊이가 있고 표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글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반 부러운 마음 반이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닐 것이다. 읽고 또 읽고 쓰고 다듬기를 반복하다 보면 깊어지고 매끈해지리라.


결혼기념일을 잊다니...


2 년 전, 결혼 15주년에 우리 부부는 몸살을 앓았다. 반드시 꽃을 받고 싶은 나와 꽃은 낭비라는 남편의 생각이 팽팽히 맞섰다. 감정의 날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서운한 나와 마음 불편한 남편 사이에 답답한 공기가 흘렀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결국은 남편이 항복하고 말았다. 아직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탓인지 나는 여전히 돈보다 꽃이 좋다.

그런데 올해엔 결혼기념일이 존재감 없이 스쳐 지나갔다. 목숨 걸고 반드시 챙겨야 하는 날은 아니지만 매번 기념하던 날이 사라지고 나니 조금 아쉽다. 오래 부부로 살다 보니 감각이 무디어진 것일까...







무엇이 기념일을 잊게 만들었을까?

결혼기념일 다음 날에 아이와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어제가 며칠이었더라... 아 맞다!"

근무 중인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어제가 무슨 날이었을까요?' 한참 후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참 바쁘게 살았네. 것도 잊어버리고.' 이어서 카카오 프렌즈 라이언이 눈물을 줄줄 흘려주었다.


무엇이 우리 기념일을 잊게 만든 것일까 생각해 보니 '브런치'가 큰 역할을 했다. 원래 남편은 기념일을 기억하고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의 남편들이 그렇듯이) 그동안은 내가 달력에 표시 해 놓고 며칠 전에 환기시켜주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러지 않았으니 남편이 모르고 지나간 건 당연한 일이다.


결혼기념일 이틀 전에 브런치 작가 승인 메시지를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작가로 인정받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떨어질 각오를 하고 있다가 승인이 나서 굉장히 신이 났다. 신이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념일조차 잊을만큼 글쓰기에 집중했나보다.


평상시 같으면 남편에게 조금은 불만스러운 말을 건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었던 열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참 많은 핑계로 글쓰기의 우선순위는 뒤로 밀려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하고, 이어서 한 시간 동안 글을 쓴다. 이어서 실내 자전거를 40분 정도 달리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성장에 대한 열망이 강한 내게 딱 어울리는 일정이고, 나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시간들이다. 누가 억지로 떠밀어서 가는 길이면 힘들 텐데 오히려 기쁘다. 그러니 결혼기념일을 잊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꿈을 향해 땀을 흘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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