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한 달의 무급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는 날.
그리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건만 마음이 분주하다. 월급을 못 받는 건 슬프지만 여유 부리던 아침이 참 좋았는데... 이제 아침의 여유는 사라진 것이다. 대신 다음 달엔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 위안 삼아야겠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다. 이게 인생의 법칙인지도 모른다. 절대 법칙은 아니고 일반적인 법칙.
컴퓨터 방에 있는 실내 자전거를 달리고 나서 아침을 준비하려고 급히 주방으로 향한다. 그때, 갑자기 화병에 꽂아 수경 재배하고 있는 몬스테라가 눈에 띄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화병을 꽉 채운 몬스테라 뿌리가 눈에 거슬린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빼곡해지는 저 뿌리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왔다. 그래서 전 날 밤에 식물 박사인 동네 지인에게 물어보니 몬스테라 뿌리를 잘라주는 게 좋다고 했다. 눈에 딱 걸렸으니 얼른 잘라 주려고 바쁜 와중에 가위를 꺼내 든다.
작년 가을에 집에 들인 몬스테라는 정말이지 폭풍 성장을 하고 있다. 공중 뿌리를 잘라 화병에 꽂고 일부는 다른 화분에 분가시켰다. 식물 키우기 초보인지라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도 하고 지인에게 물어가며 식물들을 키우고 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 죽어 나가는 초록이도 있지만 아직 초보니까 그러려니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공중 뿌리를 잘라 줄 때 가위를 소독해줘야 한단다. 혹여나 가위에 묻어 있던 세균이 식물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뿌리를 자를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침 준비를 해야 하기에 마음은 급하고 가위를 소독하긴 해야겠고... 잠시 고민하다가 가위를 그냥 물로 깨끗이 씻기로 한다. 소독만큼은 아니지만 깨끗해지겠지? 수돗물을 틀고 가위를 손으로 닦기 시작한다. 세균을 씻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손가락 끝에 힘이 실린다. 차라리 소주로 소독할걸 그랬나 싶었지만 이미 시작했으니 늦었다. 여러 번 정성껏 닦으며 마무리하는 중, 갑자기 오른손 중지에 예리하고 찌릿한 아픔이 0.01초 동안 느껴졌다.
"앗!"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왼손으로 다친 손가락을 지압한 채 약상자 앞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던 남편이 깜짝 놀라며 묻는다.
"에그, 손 다쳤어? 어디 봐."
"괜찮아. 살짝 베었어. 금방 나을 거야."
다친 손가락 끄트머리에 빨간 피가 살짝 올라오는 게 보인다.
그 순간 남편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한마디 한다.
"내가 아프다."
아침부터 피를 보니 당황스럽고 기분도 별로였지만 남편의 짧은 한마디로 인해 내 마음에 꽃이 피어난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사랑이 느껴지는 말이라서, 사랑받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오늘따라 남편이 꽃보다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