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아이 방으로 보냈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 자주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팔딱거리는데 반해 현실은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한 달간 무급 휴가를 내고 매일 아이와 딱 붙어 사니 글 쓰기에 집중하기 힘든 건 당연한 일. 결국 아이와 남편을 모아서 재우고 나는 늦게까지 글을 써보기로 했다.
천사 같은 남편은 흔쾌히 아이 방으로 떠났다. 남편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난 성장에 대한 열망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취미 부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글쓰기 실력을 성장시켜 보겠다고 애쓰고 있다.
결혼을 하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삶에서 내 자리가 좁아지는 것 같다. 심지어 내 존재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아내로서의 역할, 며느리로서의 역할, 엄마로서의 역할이 추가되기 때문에 허둥댈 때도 많다. 아직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부당한 의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명절에는 당연히 시댁 먼저 가야 한다던가, 며느리라서 쉼 없는 명절 노동에 시달리는 게 당연시된다던지 하는 일들이다. 꼭 명절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그렇다. 시어머니 생신을 잊는 며느리는 가족들에게 강한 질책을 받지만, 장모님 생신을 기억하고 챙기는 사위는 엄청난 칭찬을 받는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일반적인 풍경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이 현상은 훨씬 심했다. 친정 엄마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 세대가 겪는 부당함은 양반 중에 상 양반일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사셨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많이 있었으나 참고 살아오셨다. 그런 엄마 세대가 우리 세대를 볼 때는 엄살이며 이해불가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더 변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들이 당연시되어서는 안 된다.
얘기가 살짝 옆으로 샜다. 어쨌든 육아에 있어서도 부모님 세대와는 방향이 달라지고 있다. 아이에게 모든 걸 다 쏟아붓고 집중하는 방식은 아이만 성장시킨다. 아니면 아이를 잡든가. 이제 아이도 나도 동반 성장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아이만 챙기느라 나를 보류시켜 놓았다가는 길고 긴 노년을 고통스럽게 지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생각이다. 지겹게 들어온 얘기지만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아이가 성공한다. 내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아이로 자라준다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 삶의 주체는 아이가 되어야지 엄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 잘하는 아이, 예의 바른 아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책임질 줄 아는 아이라는 신념으로 육아에 임하고 있다. 마음이 따뜻하고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사람,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내가 가진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