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가장 치열하게 빛난 서른할 살 안중근을 만나다.
하얼빈 / 김훈 / 문학동네 / 초판 2022. 8. 3
의로운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불사른 사람들의 얘기는 문득 나를 돌아보게 한다. 자신과 가정의 안전을 지키면서 행복하고 싶은 게 사람의 기본 욕구일진대 그 소중한 것을 내려놓으면서까지 더 큰 뜻을 이룬 사람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위인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매우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 그리고 그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았다는 사실 외에 특별히 아는 것이 없었다. 그의 결단과 실행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자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무심함이 민망하기까지 하다. 지금이라도 작가 김훈을 통해 역사에 큰 별로 남은 안중근 열사를 만나본다. 현실보다 현실 같은 소설 속에서.
소설은 안중근과 우덕순이 이토를 사살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행적과 심리적 흐름을 주로 묘사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가 얼마나 치밀하고 간악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칼의 노래」를 비롯해 수많은 역작을 집필한 김훈 작가님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소설이다. 간결한 문체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놀라운 능력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당시의 모든 독립투사들이 그랬듯 안중근과 우덕순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무장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만나 그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 영웅이었으나 조선 입장에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치밀하지 못했지만 조심성 있게 준비했으며 결국 이토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는 일에 성공한다. 그 뒤에 자신들이 어떻게 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로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에 대한 내면적 갈등이 있었을 것이며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이 무거웠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해냈다. 일본 제국주의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민족의 독립을 앞당기고 명예를 지킨 것이다. 의거 직후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몇 개월 후 일본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다.
매우 안타까웠던 것은 그의 남겨진 가족 중 딸과 작은 아들이 일본의 강요와 위협으로 인해 이토의 묘에 가서 아버지 대신 사과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의 후손들을 잘 살펴드리고 긍지를 높여 드렸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텐데... 친일 행위로 배부르고 간사하게 살던 자들의 자손은 떵떵거리며 부를 누리지만 독립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 독립투사들의 자손들은 대부분 처절한 가난과 외면 속에 고통받으며 살았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참 눈물겨운 일이다.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소설「하얼빈」을 통해 가장 치열하게 빛나던 안중근 의사의 삶을 만나보자. 슬프고 아득하지만 결국 빛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강인함과 지조를.
「세상에 맨몸으로 맞선 청년들의 망설임과 고뇌, 그리고 투신
짧기에 더욱 강렬했던 그들의 마지막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