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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 박혜윤 지음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지만 완전한 삶

by 단아한 숲길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여러 측면 중에 소유의 개념으로 보자면 무소유의 삶, 소박한 삶, 부유한 삶. 이 정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엔 옳고 그르다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각자의 선택이 답이 될 것이다. 다만 자기 계발서에 자주 등장하는 '선한 부자'라던가 '시간과 경제의 자유'라는 말은 매우 매혹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독서, 투자와 마케팅 등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리라.



당연하다. 자본주의 사회에 소비의 주체가 되어 살아가다 보면 소비의 기쁨에 눈 뜨게 되고 때로는 소비의 노예가 되기도 하니까. 소비를 위해서는 '돈'이라는 게 필연적이니까. 화려한 사람들 속에서 혼자 초라하기는 싫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남에 비해 부족한 것을 의식하고 불안한 노후를 걱정한다. 돈으로 모든 걸 살 수는 없지만 대부분 살 수 있기에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한다. 그런데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듯 보이는 책이 여기에 있다. 참 놀라운 책이다.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적은 자본으로 마음껏 행복을 누리며 사는 한 가족을 만나보자.


작가의 이력을 먼저 얘기하자면 대학 졸업 후 기자가 되었지만 5년을 못 채우고 그만두었고, 좋다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직업에 조금도 활용하지 않았으며, 심리학 박사 학위도 받았지만 6년간 공부만 즐기다가 지금은 시골에서 직접 구운 빵을 파는 사람이다. 코로나로 인해 빵 파는 일도 전 같지 않다고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 안 되는 면이 많지만 정작 본인은 대체로 신이 난 얼굴로 빵을 굽고 자녀들과 낄낄거리고 멍하니 책을 뒤적이는 삶이 행복하다고 한다. 이 분, 좀 독특한 구석이 있다.



지금껏 내 삶은 어땠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시간의 자유를 우선순위에 두었기에 경제를 적당히 포기하며 살아왔다. 돈에 얽매이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출퇴근에 매이는 게 싫어서 공무원 시험을 고민하다가 접기도 했었다. 직장을 다니더라도 비교적 시간의 자유가 허용되는 직장을 선택했었다. 그러다 보니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가만히 보니 작가와 결이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풍요로운 삶을 거부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삶의 기준을 '돈'보다는 '나의 본질'에 두고 싶다. 책에서 작가가 말했듯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적극적인 탐구'가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책을 통해 여러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나의 특성과 개성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함을 배운다. 진짜 '나'를 찾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며 우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작가는 용기가 아니라 남과 다른 시각과 태도 때문에 다소 무모해 보이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남들과 똑같은 기준이나 목표를 갖기보다 나만의 개성을 살린 그 길을 발견하고 걷는 것이 더 의미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중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보기에 다소 엉뚱하고 무모해 보일지라도.



(작가의 말 중에 기억해 두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내용들을 메모해 두었다. 책을 다시 보고 싶을 때 꺼내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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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저자박혜윤출판다산초당발매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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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유의 돈이 적어서 오는 공포심을 조금만 누르면 보인다. 이 풍요로운 세상이 베풀어준 교육, 넓고 다양한 세상, 넘치는 지식, 공공의 소비 시설이. 그것들은 오로지 나의 돈으로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을 좀 더 인간적이고 살기 좋게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세대가 만들어 현재에 도착한 풍요를 누리는 새로운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 p.44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염려하지도 않고, 누가 싫은 소리를 해도 신경이 안 쓰인다. 보통 사람들이 주위 사람 눈치 때문에 차마 못 하는 행동들도 그냥 해버리곤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생각한다. '어려서 아무런 힘이 없을 때, 엄마의 비난이나 엄마보다 더 심하게 나를 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정말이지,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너무나 친절하다.


어린 시절을 상처라고 해석했을 때는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독특한 조기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내가 굉장히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생이 정말 재미있어졌다. p.98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짊어질 짐을 항상 찾고야 만다는 카뮈의 말을 깊이 이해한다면 우리는 돈이 더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지금보다 돈이 더 없어질까 두려워하며 살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p.137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나를 믿는 대신,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을 믿고 그들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 주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 자신을 믿는 것은 언제고 허물어질 수 있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어지만, 나를 칭찬하고 나를 긍정해 주는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꽤나 든든하다. p.168


여기서 깨달음에 도달한다. 나 자신을 진짜 찾고 싶은 사람은 나 자신에서 떠나봐야 한다는 것. 고대 그리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행위다. 흔히 집을 떠나야 가장 나다운 나를 발견한다고 해서 여행의 미덕을 찬양할 때 쓰는 비유다. p.58



어떤 계기로 인해 분노와 관련한 뇌의 화학물질이 분비된다. 그러면 몸이 느낀다. 이 최초의 화학반응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데에 90초가 걸린다고 한다. 90초가 지나가도 계속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이 화학반응을 지속시키겠다는 나의 선택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p.243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나의 쾌감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있었다. 뉴스에 나오는 아동학대 사건에는 작은 아이에게 악행을 하는 악마들이 나온다. 아이에게 짜증 내는 것조차 악마 같은 인간들과 똑같은 동기와 쾌감으로 하는 거라고 끊임없이 주입하며 뇌의 회로를 새로 만들었다. 일주일쯤 이 생각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아이에게 화가 나지 않는다. 화를 참는 게 아니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것이 화까지 연결되는 회로가 끊어진 것이다. p. 246




인간은 순간을 살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끝을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괴롭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삶의 충만함을 이해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끝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이해한다. p.271


그래서 자존감이 내게는 그리 중요한 개념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평가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뿐이다. p.252


내가 가진 건 자존감이 아니라 적극적인 탐구 끝에 얻은 나에 대한 이해다. 언제,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지, 무성히 나를 채워주는지, 어떤 거리감이 좋은지,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있다. 시골에 오지 않아도 궁금해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이다. p.257


그렇다. 나는 변덕스럽다. 실행력만은 끝내주지만 의지력이나 열정 같은 건 없다. 심지어 소심하다. 무모한 짓들을 해치우게 되는 건 진지하거나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다른 시각과 태도 때문이다. p.259


아무렇게나 한다. 그렇지만 한다.

나는 무얼 해도 아무렇게나 한다. 실용적인 목적이 없어도 되고 남들을 이길 필요도 없다.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실패하거나 못 하는 건 없다. 하다가 말아도 괜찮다. 그래서 별로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하고 본다. 걱정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니까.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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