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완벽한 남자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여자도 없지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조금 더 내게 맞는 사람을 만나서 산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싶어요.
이 남자와 한 이불 덮고 산 지 벌써 열일곱 해가 지났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어쨌든 우린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서로의 좋은 점, 부족한 점을 마주하며 살다 보니 많은 일이 있었죠.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마음이 무거웠으며 때로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답니다.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듯이요.
30년 가까운 세월을 다른 환경과 가치관으로 살다가 하나로 다듬어지는 과정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아직도 다듬어 가고 있으며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다행인 건 우리 둘 다 삶에 노련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전에는 감정적으로 휘말렸을법한 상황에 이제는 느긋하게 대처할 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흘러간 세월을 야속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 거저 얻어지는 건 없더라고요.
부부 싸움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일단 싸움을 시작하면 마음에 지옥이 펼쳐집니다. 이때 지옥을 탈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어요. 남편의 장점을 떠올리는 것이지요. 그리곤 이런 장점 가진 남자를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남편이 무탈하게 곁에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효과가 좋은 편입니다. 마음에 뾰족하게 솟아난 불만이 감사에 녹아져 사라지곤 하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남편의 장점을 기록으로 남겨볼까 합니다. 한 번쯤은 남편의 빛나는 매력을 세상에 드러내 보고 싶었거든요. 이런 걸 자랑질이라고 하죠. 혹여 저의 자랑질에 마음이 불편하시다면 먼저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팔불출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고요.
우리 집에 사는 남자, 이 분은 표현을 잘합니다. 표현력이 아주 최고죠. 처음 만나 사귈 때부터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예쁘다."는 표현을 자주 해 주었어요. 과하지 않고 담백하게요. 주변에 친한 언니 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남편은 아주 드물더라고요. 우리나라 교육 환경이나 가정교육 자체가 좀 경직되어 있어서 (개인적인 생각) 표현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사람, 특히 남자가 드문 것 같아요.
아주 멋진 남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잘 키워주신 시부모님께 감사드려요.) 이 장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죠. 하지만 더 큰 매력이 있다는 사실. 이 사람은 마음이 아주 따뜻합니다. 따뜻한 마음이 큰 일을 하기도 했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해 준 일들이 있었답니다.
2012년에는 조혈모 세포 기증을 통해서 낯 모르는 누군가에게 생명을 선물했어요. 남편과 유전자형이 동일한 환자가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남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기증 절차를 밟았지요. 수술을 무사히 마친 상대방 환자가 매우 감사해한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 보람과 기쁨이 엄청났었죠. 어디에선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잘 지내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한 번은 남편이 회사 업무차 다른 회사에 방문하던 중 한대의 차가 도로 중앙에 서 있는 걸 목격했다고 해요. 들어가는 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업무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그 차가 그대로 서 있었대요. 남편은 한쪽에 차를 세우고 신호를 기다렸다가 그 차에 가까이 갔는데 차 안에 사람이 기절해 있었던 거죠. 깜짝 놀라서 즉시 119에 전화를 했고, 다행히 위험에 처했던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귀찮거나 겁나서 지나쳤을 텐데 따뜻한 마음과 용기가 있었기에 전혀 모르는 남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겠죠?
글을 쓰다 보니 나와 살고 있는 이 남자, 꽤 괜찮은 남자네요.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까칠하긴 하지만 그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서로가 더 맨돌맨돌한 강돌로 다듬어지면서 우리 부부의 사랑은 무르익어 가겠지요.
남편에게 가끔 얘기합니다. 우리 함께 곱게 늙어가자고. 누구 한 사람이 먼저 가지 말고 비슷한 시기에 떠나자고요.
100세 시대에 살고 있으니 적어도 90세까지는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살다가 비슷한 시기에 먼 길 떠나고 싶네요. 서로 소중하게 보듬으며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최고의 축복이겠죠.서로의 부족함을 끌어안아 주면서 건강 관리 꾸준히 해야겠어요. 소중한 꿈을 꼭 이루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