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은 교통사고 이후 의식을 잃었다가 간신히 깨어나셨지만 재활치료 중에 패혈증(?)으로 돌아가셨어요.
우리 아이가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던 임신 5개월 즈음에 사고가 났고, 아이가 태어난 지 6일째 되던 날 돌아가셨지요. 그리도 애타게 기다리던 손주 얼굴도 못 보시고 그냥 그렇게 떠나셨어요. 벌써 7년이 다 되어가네요.
아버님이 살아계셨을 때, 조카들은 많았지만 장손이 없는 상황이라서 저희 부부에게 기대가 크셨던 것 같아요. 허나 2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아이 소식이 없자 아버님의 표정은 전 같지 않았습니다. 며느리를 대하는 살가움과 미소가 점점 줄어들었죠.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요, 술만 드시면 장손이 없어서 속상한 마음을 어머님한테 화내는 걸로 풀었다고 해요. 심지어 아들에게 첩을 얻어주자는 말씀까지 했었다네요. (헉, 요즘 세상에)
우리 어머님이 고생 많으셨지요. (우리나라는 유교적 문화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 참 많은 사람들이 마음고생하는 것 같아요.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요.)
한 번은 시댁에서 키우던 진돗개 한 마리가 없어져서 어머님께 여쭈었더니 키운 지 5년이 되도록 새끼를 못 낳는다며 아버님이 다른 곳에 보내 버렸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을 듣는데 울컥 서러웠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도 며느리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그러셨는지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으셨어요. 결혼 초에는 며느리를 어찌나 이뻐하셨던지 웃는 얼굴로 달려 나오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시곤 했답니다. 흠뻑 사랑받는 기분이 이런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해 주셨지요. 점점 강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참 다정한 아버님이셨어요.
기다리던 장손이 10년 만에 태어났는데 고사리 손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가신 것이 영 안타깝고 속상해요. 만약 지금까지 계셨으면 말도 못 하게 이뻐하셨을 텐데요.
지나치게 차분한 날씨 때문일까요? 쩌렁쩌렁한 아버님의 목소리와 밝게 웃으시던 얼굴이 더욱 그립네요. 지금도 시댁에 가면 아버님이 웃으면서 달려 나와 맞아주실 것만 같아요. 그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마음으로 그려보네요. 가까운 가족이 떠난 자리는 오래도록 허전하지요. 지금 곁에 있을 때, 소중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더 잘해줘야겠어요. 곁에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한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