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처음 알았다. 내 이름이 참 평범하다는 사실을. 시골 작은 동네에는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몰랐는데 학교에 입학했더니 같은 반에 내 이름이랑 성까지 똑같은 친구가 있었다. 이름이 같다 보니 작은 정은, 큰 정은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내가 작은 정은이었다. 게다가 우리 동네 이름은 '보통리'였다. 동네 이름조차 평범 그 자체. 그냥 보통 사람이자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정해진 길인 것처럼 느껴졌다.
중학생쯤 되었을 때 흔한 내 이름이 오히려 안식처로 느껴졌다. 76년생인 내 친구들 중에는 수진, 미경, 미선, 정은 등이 많았다. 하지만 가끔 동식이나 현식이처럼 여자 이름 치고는 독특한 이름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들께 지목당하거나 모든 아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험을 해야 했다.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내겐 그 아이들의 경험이 나와 상관없다는 것이 그렇게도 다행스러울 수 없었다. 평범한 이름도 제법 쓸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 넘치는 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흔한 이름에서 벗어나 더 예쁜 이름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나 지인들에게 이름에 관한 얘기를 하면 한결같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쁜 이름이야. 이름이랑 너랑 딱 어울리는데 왜 바꾸려고 해? 안 바꿔도 될 거 같은데."
마치 대사를 맞춘 듯이 각기 다른 사람이 똑같이 대답해 주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나니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흐려졌다. 그래, 그냥 부모님이 주신 이름으로 계속 살아보자.
주변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이름을 바꾼 사람들이 많다. 가장 가까운 사람 중에는 내 여동생과 남동생이 각자의 사정으로 이름을 바꿨다.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았다. 적응을 거쳐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주변에 알리고 설명하는데 에너지도 소모될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그냥 지금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속 편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다시 태어나서 내 이름을 결정할 수 있다면 다른 이름을 고려해 보고 싶다.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는 날까지 이름을 고민했지만 결정하지 못했다. 이름을 짓는 건 그만큼 어려웠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신고기간 직전까지 태명을 불러야 했다. 결국은 한자를 좀 아시는 친정아버지께 작명을 부탁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작명소에 가셔서 내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두 종류의 이름을 말씀하시면서 이름마다 풀이는 이러하다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말씀하신 이름은 둘 다 흔한 이름이었다. 학렬에 따라 성 다음에 '재'자를 넣어야 한다고 하시니 싫다고 할 수도 없고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재'자 돌림 이름 중 흔치 않은 이름을 인터넷으로 급히 찾아보았다. 그 결과 튀지도 않고 흔치도 않은 이름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아버지께 얘기했더니 작명가 친구분께 물어보신 후 대답해 주셨다.
"그려. 그 이름도 괜찮다고 한다. 예술 쪽으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름이랴."
그 즉시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더니 남편도 좋다고했다.
이렇게 하여 이름이 흔한 엄마는 흔치 않은 이름을 가진 아들과 살게 되었다. 지금도 매일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대리 만족일 수도 있지만 그런들 어떠랴. 어떤 이름을 갖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고 한다. 엄마와 작명가 할아버지가 합작한 이름으로 자신만의 빛나는 개성을 지닌 멋진 사람, 당당하고 자신 있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아들을 기대하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