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띵동, 22년 전의 나를 만나다.

꽃다운 나이에 왜 그러고 다녔을까?

by 단아한 숲길

화장실에서 큰 일을 마친 후 손을 씻고 있는데 밖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한테 말하는가 하고 나가 보니 손에 누런 봉투를 하나 들고 서있다.

"여보, 당신한테 등기 왔어. 경찰서에서 왔네."

"엥? 뜬금없이 웬 경찰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얼른 밀봉된 봉투를 낚아채듯 받아서 뜯어보니 진초록색 국가자격증이 하나 들어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 자격증 중에 하나를 누군가 주워서 경찰서에 보냈다는 얘긴데... 난 자격증을 잃어버린 기억이 전혀 없다.


도대체 무슨 자격증일까? 바로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자격증 안쪽에는 한식 조리 기능사라는 글씨가 박혀있었다. 오래전, 식품영양과 학생이기 때문에 필수로 따야 했던 자격증이다. 어렵게 따고 나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잃어버린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사 다니면서 잃어버렸거나 어딘가에 숨어 있겠거니 하다가 아예 잊혀버린 존재가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다.


기분이 묘하다. 오래전 시간 중 한 덩어리가 우주 공중을 날아 나를 찾아온 듯한 느낌이다. 내 손바닥 위로 사뿐히 내려앉아 있는 자격증을 뻥하게 바라본다. 자격증을 따던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얀 가운을 입고 식칼을 든 20대의 내가 오이소박이와 타래과를 잘 만들어 보겠노라며 허둥거리고 있다. 손은 덜덜 떨리고 식은땀은 왜 그리 나던지. 목이 막 타들어가서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물을 찾아 마시는 몇 초의 시간마저도 용납되지 않을 만큼 팽팽한 긴장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잘 견딘 덕에 이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었다.


입가에 미소가 그어진다.

"여보, 나 한식조리 기능사 자격증 따겠다고 진짜 긴장했었다. 그때 생각하니까 너무 웃겨."

남편이 듣던 말던 한마디 던지고는 자격증에 붙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런데... 흠흠... 훗!

반명함 사진 속 인물은 나를 닮은 듯 안 닮은 듯 어색하다. 차라리 내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다. 어색하고 촌스러운 화장과 옷차림은 그렇다 치고 엄청 통통하다. 볼이 터지려고 한다.

'내가 정말 이러고 다녔단 말이야? 차라리 지금이 더 나은 듯.' (이 사진이 유난히 촌스럽게 나왔다고 믿기로)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도 안다. 싱그러운 20대 초반과 시들어가는 40대 중반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렇다고 40대인 지금이 자신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꽃다운 20대에 왜 이러고 다녔을까 싶어 짠한 마음이 든다.

'바보, 예쁜 나이에 좀 예쁘게 하고 다니지.'


어떻게 된 사연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자격증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주인을 찾아왔는지는 경찰서에 가져다준 사람만이 알 것이다. 경찰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참으려 한다. 조금 궁금한 채로 신비한 베일에 묻어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봄바람 일렁이는 꽃봄에 내 인생 봄날이 초인종을 누르며 찾아와서는 40대 중반이 된 나를 보며 활짝 웃어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