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티비가 사라진 이유.

티비 없이 사는 건 어떨까?

by 단아한 숲길



아주 오래전에 우리 집엔 티비라는 존재가 살았어요.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5년 전쯤인 것 같아요.

티비는 우리 부부와 참 많은 시간을 보냈죠.
드라마와 스포츠를 보았고 뉴스도 자주 보았어요.
공기나 물처럼 우리 삶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였죠.
적어도 제가 드라마 중독에 빠지기 전까지는요.


당시 전 대우자동차 관련 업체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우자동차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생산량이 확 줄었고 그 결과 근무일도 거의 반으로 줄었답니다.

갑자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무엇을 했을까요?
독서? 취미생활? 알바? 모두 아니었죠.
평소에 한두 시간씩 보던 드라마를
두루 챙겨 보기 시작했답니다.

티비는 매력적인 드라마들을 내세워
저의 귀한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어요.
결국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거의 하루 종일
집안에서 뒹굴거리며 드라마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죠.
드라마를 어쩜 그리 잘 만드는지
신기해서 감탄하면서 보았죠.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개구리가 뜨거운 물에서 서서히 익어가듯 무딘 감각으로

서서히 젖어들고 있었던 거예요.


두 달 넘게 그랬던 거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내 몸이 말했죠. "머리가 너무 아파."
전자파에 장시간 노출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눈빛조차 흐리멍텅해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더 이상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뭔가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날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말했어요.

"여보, 나 요즘 심각해. 아무래도 드라마에 중독된 거 같아.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폐인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그래서 말인데... 티비를 없애자."

얘기를 들은 남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죠.
스포츠 채널을 매우 즐겨 보던 남편은
막막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방법은 없겠냐고 물었어요.
자기는 절대 티비를 포기할 수 없다고...

그 이후로 며칠을 더 설득한 끝에 남편이
결국 항복했어요.
마누라가 힘들어 죽겠다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협의를 보았던 거죠.
(고마운 우리 여봉♡)
남편의 결재가 떨어지자 마자 티비를 처분했고,
그 뒤로 우리 집은 티비 없는 집이 되었답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요즘엔 인터넷으로도
드라마를 마음껏 볼 수 있다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드라마를 멀리해요.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저에겐
시간 잡아먹는 도둑이기 때문이죠.
오락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에요.
그나마 시댁이나 친정에 갔을 때 잠깐씩 보는데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아주 쏙 빠져서 본답니다.


우리 집 거실에는 티비 대신 책장이 있어요.
지인들은 티비 없이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답니다.

오히려 티비가 없으니
삶이 더 여유로워진 느낌이 들어요.
티비 보는 시간에 독서나 대화를 하니까
삶의 질도 높아지더라고요.

그렇다고 영상을 아예 안 보는 건 아니랍니다.
유튜브를 통해 필요한 정보만 골라서 보고 있어요.

모든 건 적응하기 나름인가 봐요.
티비 없는 삶이 당연하고 편안해요.
무엇보다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아들이 책을 엄청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죠.
티비 없이 책이 가득한 거실에서
자주 책을 접한 게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책을 좋아하고 즐기는 아들을 볼 때마다
티비랑 이별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경험자로서
티비 없는 삶을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티비의 영향력이 가득했던 공간을
또 다른 에너지와 여유로 채울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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