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아한 숲길 Oct 26. 2021

부잣집 딸과 가난한 집 딸

흙수저가 좋아, 금수저가 좋아?

흙수저가 좋아, 금수저가 좋아?

  가끔 생각한다. 소위  흙수저의 삶과 금수저의 삶을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길을 택할까? 생각보다 려운 질문이다. 당연히 금수저를 선택할 거 같은데 한편으로 흙수저의 삶도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평범한 농군의 사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부터 금수저를 동경했다. 뽀얀 얼굴에 예쁜 옷을 입고 아빠가 생일 선물로 사 준 시계를 자랑하는 친구를 보면 그렇게도 부러웠다. (당시에는 이 정도만 되어도 아주 잘 사는 축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생일 선물이란 걸 받아 본 적 없으며 더군다나 누군가에게 물려 입은 언니 옷을 다시 물려 입던 처지였으니 부러울 만도 했다. 하지만 부모나 환경을 선택할 수 없으니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어릴 때는 그 친구를 비롯해 여유로운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그렇게도 부러웠는데 어른이 되어보니 알겠다. 금수저가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내 어머니는 부잣집 딸이었다

  친정 엄마는 부잣집 딸이었다.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바로 해결되는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심지어 외할아버지 형제들이 죄다 아들만 줄줄이 낳는 바람에 집안에 빛나는 홍일점이었다. 흔한 말로 땅에 발 닿을 틈이 없을 정도로 온 집안의 사랑스러운 보물로 자셨다. 그처럼 유복했던 엄마의 인생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외할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약골이었던 외할머니의 건강 화되어 엄마는 중학교 졸업 이후 학업을 포해야 했다. 편찮으신 외할머니를 대신해서 살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가씨 때 찍어놓은 흑백사진을 보면 엄청난 멋쟁이다. 긴 생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화사한 양산을 들었으며  뾰족 구두를 신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맞춤정장을 입으셨. 가세가 기울기는 했지만 심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니, 가난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다

  엄마는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아버지와 중매결혼을 하다.  선 보는 자리에서 할머작은 구멍가게를 차려주겠다고 약속하셨 한다. 은 가게(동네 슈퍼마켓)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평소 소망이었던 엄마는 남편 될 사람보다 할머니의 제안에 끌서 결혼을 결심하셨다. 그리하여 결혼과 동시에 남존여비 사상 드높은 시골 농군 집안의 아낙이 된 것이. 하루아침에 기존 환경과는 전혀 다른 세상 편입되고 나서  이 당황스럽고 힘들었을 스물일곱의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매일 힘든 농사일에 동원되어야 했  성이며느리이기 때문에  참아내야 할 일이 많았다. 게다가 줄줄이 태어난 자식들키우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 작은 몸으로 농사일 외에 육아와 살림까지 다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은 가게의 주인이고 싶었던 엄마의 꿈도 사그러들었다.


부자집 딸이었던 엄마의 가난한 딸

  가난한 여자가 가난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난에 익숙해서였을까. 결혼 후에도 여전히 가난했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궁상 맞게 사는게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그보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만족감이었다. 그나마 흙수저라서 밥이라도 굶지 않는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우리보다 훨씬 힘든 환경에서 수저마저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게 현실이었으니까.  2003년에 보증금 200에 월세 10만 원짜리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작은 소도시에 있는, 겨우 집의 형태를 갖춘 그런 집이었다.

  초반에는 김치전,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등 시댁에서 주신 김치로만 밥상을 차릴 만큼 궁색지만 우리 부부는 참 재미나게 살았다. 꼭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말다툼도 했지만 뾰족한 마음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결혼은 역시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리 녹록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런데도 신혼의 90%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사랑의 힘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마음이 채워지니 가난이 무색해졌다. 생사를 좌우할 정도의 가난이 아니라면 가난도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이 쌓여 삶의 내공이 되는 것이니까.



마무리

  사람마다 타고 난 환경과 살면서 마주하는 사건들이 다르고 이겨내야 하는 고통의 크기도 다르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타고난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라고 생각한다.  글을 통해 흙수저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하거나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 물론 금수저에 대한 편견을 가질 필요도 없다.  금수저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면서 인성까지 좋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흙수저로 태어났으나 처절한 노력으로 금같이 빛나는 인생이 된 사람을 보면 감동이 밀려온다. 결국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는가 보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금수저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금수저는 금수저 나름대로 겪는 어려움과 고충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 흙수저 들은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고 멋있게 자신을 만들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기회는 인격과 실력을 만들어 놓은 사람에게 찾아올 테니까.



  기억의 숲을 걷다가 아이를 만났다. 깡마 몸에 검게 그을린 얼굴의 열 살짜리 아이가 동네 구판장(작은 가게) 앞에 서있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들고 초코파이를 사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간다.


'초코파이 그게 뭐라고. 그깟 초코파이 그냥 사 먹지 그랬어.' 아이가 애처롭고 안타까워서 어른이 된 나는 가만히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 그 작은 소녀에게 조용히 말한다. '힘든 시간 잘 견뎌줘서 고마워. 고생 많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