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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한 숲길 Nov 16. 2021

천천히 가는 시간

노년의 삶에 대하여

  내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마당에서 깨를 털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가끔은 시를 짓던 모습, 늦게까지 밭이나 논에서 일하고 들어와서 쉴 틈도 없이 가족들 밥 챙겨 주느라 동동 거리며 바쁘셨던 모습, 쿠키나 도넛을 만들어 간식으로 내어주면 맛있게 먹는 자식들 바라보며 행복해하시던 모습, 아버지의 술주정이 부부 싸움으로 이어지면 우리를 꼭 끌어안고 눈물 흘리던 모습....


  어렸을 때 엄마에게서는 늘 시큰한 땀냄새가 났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농사라며 부디 너희들은 시골로 시집가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하셨다. 농사일과 가사 그리고 사 남매 육아를 그 작은 체구로 감당하느라 얼마나 고되고 힘드셨을까.


  그랬던 엄마가 이젠 심심하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가끔 동네 아줌마들과 산책 다니시는 것 외에는 집안에서 TV나 유튜브를 보며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니 심심하실 만도 하다. 오래전부터 앓던 우울증이 심해질 때는 아예 집안에만 계시려고 하는데 그럴 때는 하루 종일 잠과 TV 시청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차분하다 못해 무거운 한마디를 하신다.

"잠들었다가 그냥 그대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평생 하던 농사일을 손에서 놓으면 그게 오히려 허전하고 힘들다며 여전히 바쁘신 아버지와 늦게나마 지긋한 농사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을 이루신 어머니.

소망은 이루셨으나 넘쳐나는 시간이 문제다.

"엄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건 어때요?"

"그것도 재미가 있어야 하지."


  엄마가 즐길만한 가벼운 취미생활이 있을까 싶어서 어르신들이 모여 활동하시는 곳에도 모시고 가봤지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고 이후로 코로나가 터지면서 아예 갈 일이 없어졌다. 엄마의 심심하고 나른한 시간들을 어떻게 위로해 드리면 좋을까? 지금도 내겐 해결되지 않고 있는 숙제다.


  어느새 중년의 삶을 살고 있는 내게도 곧 노년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노년의 나를 바라보며 지금의 나처럼 많은 생각을 하겠지. 지금부터 조금씩 노년을 준비해가야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망이지만 노인 치고는 바쁘게 살고 싶다. 등산과 그림 그리기, 독서와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서 가끔은 지인들과의 즐거운 만남을 이어가며 사는 삶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러려면 건강관리가 최우선이겠지?


  중년이 되어가는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을 바라보면서 행복하게 미소 짓는 나와 남편의 모습을 상상한다. 가끔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재에 만족하며 즐거워하는 노인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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