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
"남자는 말이야. 자고로 돈을 잘 벌고, 가정을 잘 지켜야 해."
가정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에게 세상의 풍파와 모진 바람에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게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풍파와 모진 바람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결혼 전 처갓집에서 여자 친구의 가족들과 처음 저녁을 같이 먹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혹시 제가 실직한다면 막일을 해서라도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그러자 여자 친구의 언니의 남편인 형님이 손으로 박수를 치며 말했다.
"어머니, 이 친구 괜찮은데요?"
가장의 무게. 실체는 없지만 이 시대의 남자라면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있다. 요즘 맞벌이 안 하는 집이 어딨다고 그런 구시대적 발상을 하냐고 할 수 있다. 맞다. 우리도 맞벌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뭐랄까. 반대로 말하면 요즘 살림 같이 안 하는 남자가 어딨어라고 한다면 이해될 수 있을까? 살림을 부부가 같이 하고 있어도 살림은 꼭 여자가 해야 된다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는 일을 그만둘 때 당장 힘들어서 혹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이유 이외에 생각할 것들이 많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실제로 퇴사를 한 후. 나는 집안일에 몰두했다. 집안을 청소하고 요리를 하고 아내를 위한 도시락도 쌌다. 당장 회사를 안 나가니 신이 났다. 노래를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면 리듬에 맞춰 몸이 들썩였다. 청소기를 돌릴 때도 춤을 췄다. 이불을 정리하고 옥상에 빨래를 널고 집안일을 끝이 없었지만 나를 위한 아니 우리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힘이 들지 않았다. 난 드디어 내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와이프는 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저녁이 차려져 있고 깨끗한 집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오빠가 집안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되면 계속 이런 식으로 지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엄지를 번쩍 들고 역시 오픈마인드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상이라고 와이프를 지켜 세웠다.
한 달. 딱 한 달이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정말 이래도 될까?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친구들은 평생 그럴 수 있을 것 같냐? 창피하지도 않냐(도대체 뭐가?)라고 내게 말했다. 처갓집 식구들을 만날 때마다 왠지 모를 민망함에 나는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결국 나는 일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집안일을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실 쉬면서도 습관적으로 잡코리아와 사람인에서 내 일을 검색했었다.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고서야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정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의 역할론으로써 가정을 지켜간다면 그것은 각자에게 짐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우리가 가정을 이루는 이유는 그저 형식적인. 모두가 가정을 이루고 사니 거기에 뒤처지기 싫어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다.
부부의 관계를 굳건히 하고 가족과의 유대를 놓지 않는 것이 가정을 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누가 살림하고 누가 돈을 벌면 어떠랴. 앞으로도 우리는 역할을 서로 바꿔가며 살아갈 것인데.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정을 바라보아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