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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뽈러 Jun 22. 2022

알람

# 가시지 않았던 내 안의 짜증


"쌓여왔던 스트레스와 업무적 고충이 내면화된 듯하다. 그것들이 점점 생활에 표면화되어 나를 해치고 주변을 힘들게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조금 더 냉철히, 조금 더 차분히, 조금 더 아무렇지 않은 듯 당분간 내면과 사람과 현상에서 떨어져 지내자."


어떤 때는 잘도 쓰다가도 어떤 때는 오랜 시간 외면하는 일기.


지난 일요일 오전, 혼자 사무실에 나와 업무용 다이어리에 그렇게 몇 마디 끄적였다.

오래간만에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일요일 아침 8시,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내가 교회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아내의 핸드폰 알람이 내 주변에서 계속 울려댔던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깨어난 김에 산책을 나간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신문을 본다든지 아니면 멍을 때린다든지 그저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갔을 텐데, 이 날은 은근히 내 안에 짜증이 일렁였다.


문제는 그 은근한 짜증이 가시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하다가, 다시 잠을 청해보다가, 돌연 잡생각에 빠지다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을 보낸 끝에 집을 나섰다.




예전에 가끔씩은 홀로 미술관에 다니곤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미술관, 세종문화회관 전시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등.

품 감상보다는 조용한 가운데서 작품에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 온전히 집중도 되고 잡생각도 사라져 좋았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자마자 마침 그 생각이 들어 문신미술관으로 향했다.

과거 서울생활 시절, 명절에 고향을 방문할 때면 늘 찾았 문신미술관.


하지만 이 날은 막상 미술관 주차장에 닿은 순간 돌연 들어가고픈 마음이 사라졌다.

때문에 다시 차를 몰아 이제 어디로 가지 하다가 어느덧 사무실로 버렸다.

오락가락 뒤죽박죽의 심리가 그대로 표현되는 순간이다.




주말에 앞서 금요일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위축되어 있구나. 그리고 점점 위축되어 가는구나.'


복직 이후 최근까지 열 달 가까이 고강도 업무가 지속됐는데, 관련 상황이 지난 후에도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연이어 발생하다 보니 긴장의 끈이 풀린 지금에선 심리적 대응력이 그 전만 못한 느낌이다.

마음 근육의 손상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그로 인해 뭔가 모를 불안과 내면의 일렁임 그리고 일요일 아침의 알람 파동으로까지 치달은 것 같다.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업무용 다이어리에 매일 '데일리 필로소피' 책에 있는 명언 문구 두 개를 적는다.

좋은 말, 참고가 될 만한 글이라 여기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게 마음 다잡기에 유용한 것 같아서.


일요일도 그렇게 펼쳤다.

그리고 마침 그날의 내게 아주 유용한 내용이 다가왔다.


링컨은 누군가를 향한 불만과 분노가 생길 경우 항상 편지를 썼다고 한다.

다만, 불만과 분노의 편지는 작성만 한채 보내지 않고 서랍에 그대로 두었다는.


물론 그날의 난 불만을 쓰진 않았다.

그저 오래간만에 내 안의 불안과 마음의 파동을 가만히 들여다봤을 뿐이다.

그리고 처음에 언급한 몇 줄을 일기 쓰기 마냥 끄적였다.

오랜만의 일기 글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음을 글로 뱉어내니 한결 나은 느낌이었다.

가히 글쓰기의 힘인듯하다.




모든 게 순조롭고 별일이 없을 때에는 행복한 나날들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여유롭다.


반대로 문제가 발생하고 위기가 계속될 때에는 살아가는 게, 꾸역꾸역 살아내는 게 실로 벅차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문제는 부적정인 생각과 여운은 그 확장세가 가팔라 빨리 끊어내지 못하면 나와 주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 같다.


결국 삶이란, 행복이란, 어쩌면 이런 부정적 생각과 여운을 얼마나 빨리 끊어내고 털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지.


평생을 함께해 온 알람.

일요일 오전의 꿀잠을 깨운 그 알람은 잠만 깨운 것이 아니라, 최근의 불안정한 내 마음도 함께 일깨운 알람이었다.



2022.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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