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뽈뽈러 Nov 15. 2022

시계 반대 방향

# 회고, 20년 전 유럽 <2>


지난 여름휴가 때 아버지의 병원 검진을 위해 온종일 부모님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검사를 마친 후 식사자리에서 아버지는 오늘 이렇게 나온 김에 시계방에도 가자면서 약이 없는 손목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희한하게도 저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초침의 모습에서 갑자기 딴생각이 떠올랐습니다.


20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말입니다.




시계방향, 그 시절 유럽 배낭여행 동선의 트렌드는 시계방향이었습니다.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하여 독일, 체코, 헝가리, 이탈리아, 스위스, 스페인을 거쳐 프랑스, 영국 또는 네덜란드로 돌아오는 시계방향 동선.


항공권을 공동 구매했던 20여 명의 일행들도 그런 트렌드에 맞춰 파리를 시작으로 시계방향 동선으로 각자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렇다면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가보겠어'라는 마음이 불쑥 들었습니다.


일말의 즉흥성과 약간의 반골 기질 때문인지, 그렇게 저는 남들과는 다르게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배낭여행을 본격 시작했습니다.




파리에서 3일 정도 체류하며 짧은 적응기간을 거친 후 드디어 저는 야간열차를 통해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했습니다.


스페인에서의 애초 계획은 바르셀로나 이후 수도 마드리드와 저 남쪽 코르도바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한데, 불행하게도 바르셀로나 2일 차에 어느 한 지하철 역에서 저는 3인조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 시절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현지에서 늘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소매치기나 강도 행위가 적잖이 발생했고 인터넷 등에 그런 경험담도 다수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걸 제가 직접 당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무튼 혼자 기를 쓰고 하다 보니 다행히 별 탈 없이 그들을 털어냈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 관련 사진과 엽서는 앞서 '회고 1편, 구엘공원' 참조.




이 때문에 스페인에 대한 정나미도 뚝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저녁 짐을 챙겨 밤기차를 타고 프랑스 남부 지중해 도시인 툴롱과 마르세유로 빠져나왔는데, 숙박과 이동 목적의 야간열차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시계 방향의 동선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툴롱과 마르세유 엽서. 툴롱은 나폴레옹이 첫 승전보를 올린 곳이라는 당시의 기억에 이끌려 프랑스로 나오는 김에 가봤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다시 북쪽 지역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여러 여건상 효율적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결국 저는 마르세유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프랑스 북동부 국경도시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로 향하게 됩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다시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어마무시한 V자 반등 코스의 여정입니다.


※ 스페인과 관련해선 안 좋은 추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끝난 후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생각이 나고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종종 들었습니다. 그만큼 스페인이 갖고 있는 매력은 상당한 것 같습니다.



2022. 11. 15.

매거진의 이전글 덕업일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