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괜찮은 회사원(1)
오늘도 무료한 하루가 담배 한 모금 연기와 함께 흘러간다.
시끄러운 알람에 눈을 뜨고, 혹시나 주말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보지만 얄궂게도 화면은 월요일 07:11 am. 5분만 아니 1분 만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이불을 뒤덮는 것도 잠시 어림없다는 듯 핸드폰에서 요란함 알람소리가 다시금 울린다.
주말 내내 푹 쉬었음에도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붐비는 지하철 인파 속에서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을 들으며, 출근을 한다.
어느덧 벌써 4번째 회사였던가.. 대기업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네임밸류지만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회사, 괜찮은 연봉, 직장동료, 지하철을 몇 정거장만 가면 도착하는 지금의 회사는 이직한 지 2년이 조금 넘은 지금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말 그대로 나쁘지 않다 정도이지, 내 청춘을 바칠 만큼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고 다른 무언가에 청춘을 바치고픈 것이 있냐 그것 또한 아닌 것이 지금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그저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이러다 마는 날이 있는 한편 한 없이 이런 기분이 지속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이런 날이 길어질 때면 가장 추억이 많은 예전 회사 동료들을 만나곤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은 꿈과 희망 낭만이 넘쳤던 나의 모습을 그들을 통해 찾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서로 흐려진 채로 예전의 추억을 잠시 팔 뿐, 그들의 입장에선 막내일 때 같이 고생하다 운 좋게 좋은 회사로 이직해서 그저 배부른 소리를 하는 놈팡이 A다. (그렇다고 연봉이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옛 동료들과 추억을 떠들다 보면 잠시나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다.
아직은 일도 서투르고 혼나는 일이 더 많았었지만, 그래도 몇 푼 안 되는 월급이라도 타면 기분이 좋아 3차까지 달리던 그 시절.
다시는 이렇게 안 마신다고 술을 또 마시면 내가 개라고 외치지만, 결국 그날 멍멍 짖으며 삼겹살을 뒤집던 그때가 왜 이리 그리울까.
오래간만에 옛날을 추억하며 3차까지 달리고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눈을 뜨니 벌써 출근시간. 골골거리며 카톡에서 팀장의 이름을 찾고 심각하게 몸이 아파 오전에 병원을 가겠다는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엔 마음을 다잡은 채 씻고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의 이름과 같은 숙취해소제를 털어 넣으며, 다시는 이렇게 마시지 않겠다고 다시 또 이렇게 술을 마시면 내가 개라고 생각하지만, 조금은 이 성적이 되어서일까, 체력이 안되어서일까. 어쩐지 조금은 슬프게도.. 내가 다시 멍멍 짖는 날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틴 건지 아니면 그냥 시간이 지나친 건지 월급날은 늦게 오는데 왜 이렇게 마감날은 빨리 오는지.. 하기 싫지만 해야 되는 월 결산 마감일이다.
“차장님 고생 많으시네요. 저는 오늘 집안 일이 있어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늘 함께 야근하는 멤버인 김과장은 부득이한 집안일로 인해 양해를 구하며 퇴근을 한다.
남은 건 두명의 대리와 한 명의 사원. 그리고 제~발 퇴근 해줬으면 하지만 일찍 가면 집에서 오히려 구박받는다며 시끄럽게 야구를 틀어 놓고 LG를 응원하는 유부장.
예전에는 저런 팀장들을 보며 왜 안 짤리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이제 와서 보면 저 또한 재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이제 저 나이에 가까워져서일까?
열심히 마감작업 중 불쑥 훅 시야에 들어오는 막내를 보며 흠칫 놀랐지만, 슬쩍 한켠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8시. 저녁을 드시겠냐는 막내의 말에 괜찮다는 말과 함께 오늘 고생했어 셋이서 퇴근하면서 간단하게 치맥이라도 하라며 법카를 건네주고 다시 일에 집중한다.
그렇게 1시간 남짓 지났을 무렵 오늘은 LG가 졌는지 궁시렁거리며 나에게 술 한잔 하자는 팀장의 말에 조금은 내켰으나, 이왕 야근한 거 마무리를 짓고 싶었고.
그리고 굳이 오늘의 패배요인을 술안주로 듣고 싶지 않았기에, 적당히 둘러대고 텅빈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타닥타닥 ASMR 뺨치는 키보드 소리와 적당히 마무리 짓고 돌아오는 지하철 역.
늦어서인지 듬성듬성 적당히 자리가 있어 최대한 쾌적한 끝에 자리잡고 이어폰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다 들리는 문자소리 xx치킨 98,000원.
3명이서 거하게 잡수셨는지 그래도 그 와중에 10만원을 안 넘겨 고맙다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라떼는 저 정도 먹으려면 눈치 꽤나 봤어야 했는데 요새는 참 쉽구나 라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그래도 조금은 멋있는 선배로 생각하겠지? 다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