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경주는 내게 아주 친숙한 곳이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 덕분에 나는 명절이면 항상 경주에 갔었다.
어린 시절 경주 근처에 살아 수련회, 소풍이고 경주는 꼭 필수코스였다.
경주를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경주는 항상 여유로워 보인다.
급하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다. 그렇다고 너무 뒤쳐지는 것도 아니다.
개성이 있고, 자신만의 멋이 있으며 가끔은 고급스럽기까지 하다.
급하게 쫓아가지 않고, 누구를 따라 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는 모습.
내가 경주를 닮고 싶은 점이다.
그래서 틈틈이 경주로 간다. 가끔 나에게 여유를 선물하기 위해.
그리고 느려도 괜찮다고 말해주기 위해.
올 때마다 말한다.
"경주는 참 경주스럽다."
"경주에 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공기가 있고, 분위기가 있고,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크고 빨간 관광버스에서 오르고 내린다.
저마다의 사진기를 들고, 추억을 찍으며 관광을 한다.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렇게 웃기에 나도 한번 같이 웃어본다.
일요일의 경주였다.
포근한 날씨와 더불어 내 기분도 포근해졌다.
브런치카페에서 뉴요커 부럽지 않은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한다.
경주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평범하지 않는 일요일의 경주.
신선한 느낌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웃으며 좋다고 속삭인다.
이 여유로운 시간을 뺏기지 않고 싶었다. 고스란히 내 기억 속으로 들어가 추억으로 전환시키고 싶어 졌다.
머지않아 그렇게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추억이라 하겠다.
세상에는 미완성이 많다.
금도 99.9%는 있어도 완전한 100%는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 어떻게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있을까.
하지만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완벽해지고 싶은 걸까.
완벽해지고 싶어 졌다. 정갈하고 단정하게 흠잡을 곳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자라났다.
무엇이든 시간이 필요하다.
젓가락질을 배우는 것에도, 빨래를 배우는 일에도, 책을 읽을 시간도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끊임없이 경험을 하고 배워나간다.
내가 경주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배운 것은 하나,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경주에는 기와집이 많다.
많은 상점 들까, 상가들이 모두 지붕에는 기와를 얹고 있다.
경주에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경주시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통일된 느낌이면서도 멋스럽다.
그렇게 길거리에 많은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경주에 와서는 어쩔 수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 경주에서는 경주에 법을 따라야 한다.
그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각자에게는 자신의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선을 그어놓고, 사람들의 행동이나 표정 그리고 마음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첫인상을 좌지우지하는 표정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사람은 그 사람의 행동이나 평소 습관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생활하면서 각 자 자신도 모르게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습관적으로 웃는 사람도 있고, 습관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이 있다.
표정도 좋지 못하고, 행동도 좋지 못해도, 사람의 마음이 좋으면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표정도 좋고, 행동과 습관이 좋다고 해도 마음이 나쁘면 그 사람 곁에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결국 마음이구나.
밤으로 인해 달을 알게 되었다.
빛으로 인해 어둠을 배웠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만났고,
남자로서 그대를 만났다.
홀로 있었다면 알 수 없었고,
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친구로, 자식으로, 부모로, 연인으로.
그게 애증이든, 애정이든 관계에는 답이 있다.
어둠을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어둠으로 인해 빛이 아름다운 법.
슬픔을 사랑해야 한다.
행복의 밑거름이 될 테니까.
행복도 홀로 존재하고 않고, 슬픔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부재로 인해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힘든 일이 와도 버텨내고 마음을 내보아야 한다.
그렇게 힘든 시절이 지나가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순간들도 모두 추억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