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걸어보는 거야
일주일 전에 약속을 잡고, 갑자기 떠난 여행이었다.
몇 년 만에 비행기를 탔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항상 공항으로 가는 길은 설렘을 동반한다. 그저 어디론가 떠난다는 즐거움.
그곳이 어디든지 하늘을 난다는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기쁜 것이 아닐까.
여행이라는 두 글자는 언제나 두근거린다.
그렇게 하루를 여행하고, 일주일을 여행하고, 한 달을 여행한다.
그렇다. 삶은 곧 여행이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가는지에 따라 여행 경로는 변경된다.
나의 이번 여행은 아빠와 함께였고,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였다.
관광이라는 것에는 전혀 관심 없는 아빠는 일이 있어서 한 달에 반 정도는 일본에 계신다.
그렇게 나는 생애 최초로 아빠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갔다.
내게는 처음 보는 풍경이 아빠에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관광에는 관심이 없는 아비저 덕분에 시간이 맞는 나의 친구와 함께 떠나게 되었다.
숙소는 아빠의 친구 집에서 자기로 했고, 6년 동안 일본에 계셨던 아버지와 함께 나의 유일한 관광지는
오사카성이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아빠와 여행은 끝났다. 아마 그래서 내게는 특별한 곳으로 기억될 거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내서 여행을 해야 한다. 유일한 기억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앞으로도 시간을 함께 할 출발점과 마찬가지다. 아빠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즐기고, 같은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점점 가까워지고 알아간다는 것은 큰 의미이다.
사랑하면 궁금해진다고 한다. 말뿐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색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 어떤 노래, 어떤 향기, 어떤 취미를 좋아하는지 알아가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알아야 그 사람에게 고마움도 전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삶은 늘 여행이다. 어디로 이동한다는 것은 여행이다.
여행자는 옳다. 그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배낭을 메고 있으면 더 옳고, 가족끼리라도 좋고,
게다가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마도 두 사람만이 간직하고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내가 당신을 찍어주고,
당신이 나를 찍어주고,
그렇게 함께 기록을 찍는다.
계획대로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아도 좋다.
눈을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맞추는 일.
몇 번을 봐도 읽고 싶은 책처럼 평생 소장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일.
여행지에서 여행자를 보는 것도 내겐 큰 가르침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친한 형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전역을 하고 제주도에 가서 살고 싶어. 제주에 놀러 온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으니 말이야."
미소를 머금고 간직하는 사람을 보면 나에게도 미소가 번지기 때문에
마치 어른 아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듯
행복한 사람을 매일 본다는 것은 어쩌면 꽤나 로맨틱할 수도 있다.
가지고 싶은 순간, 그런 낭만.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숙박업소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여행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때 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하면 떠나는 것이라는 여행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기와 타이밍. 떠나야 할 시기에는 정답이 없지만 흘러가는 시간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도 공존한다.
미래의 순간은 지금이 되었고, 지금의 순간은 과거가 되었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고리로 묶여있는 것이다.
오사카, 교토, 고베, 나라 5박 6일 동안 120,271번의 걸음을 걸었다.
그 걸음에는 나의 여행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즐거움과 아쉬움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느림의 미학.
걷지도 못하면서 뛰려고 한다는 속담이 있다.
욕심이 먼저 나가는 것보다 천천히 들여다보는 게 좋지 않을까.
달리는 것보다 걸을 때 비로소 우리는 많은 주위의 풍경과 공간을 느낄 수 있다.
발자국을 남기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각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한 걸음 한 걸음의 소중함.
누군가가 나를 보러 오기 위해 많은 걸음을 걸었다면, 그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두 발로 일어나고 걸을 수 있는 아침. 그 소중함은 뭐라고 해야 할까.
태어나 아기에서 첫걸음마를 떼는 순간, 아마 모든 부모님들은 감격에 감동을 더했을 것이다.
편안하게 걸을 때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가지고 싶은 물건이 보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를 수 있고, 소중한 사람이 그리울 수 있다.
산책이 필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나에 대해 집중하고 다가갈 수 있는 시간.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바쁠수록 틈을 내야 한다.
그렇게 속도를 내보기도 하고 아주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고
옆 사람과 발을 맞춰보기도 하라. 언젠가 평생 같이 산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자연스레 나타나지 않을까.
각박한 사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필요한 게 휴식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만이 여유의 맛을 알 수 있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이 제일 맛있듯이, 힘들 때 떠나는 여행이 제일 뭉클하다.
온전히 바람과 자연을 느낄 수 있고, 오랫동안 좋아하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한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고요하고, 침묵으로서 지나쳐도 된다.
멀리서 보면 좋아 보였던 것들이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허무하거나 거짓이 경우도 많다.
멀리 서는 보잘것없을 것처럼 보였으나 가까이 들어가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세상은 내 판단과 다를 경우도 많다.
제대로 계획대로 처리되지 않듯이, 삶에는 늘 예상밖에 일들이 존재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감할 수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날 즐겁게 할 수도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거나, 맛집이나 책에는 잘 나오지 않는 신선한 공간을 만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맛집이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1시간 동안 줄을 서서 먹었다가 실망한 경우가 있듯이
지나가다가 생각도 없이 들린 곳에서 내 입맛에 딱 맞는 정말 맛있는 집을 만날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놓치고 있다.
여유와 휴식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낭비라기보다는 재충전에 의미가 있다.
쉬지 못하면, 여유가 없다면 금세 고장 나고 넘어지게 될 것이다.
자기를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도 관리할 줄 안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서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중에 여행도 늘 곁에서 함께했으면 한다.
삶이 곧 여행이니까. 그리고 삶을 정리할 때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많이 가지고 갈 수 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