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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개 Dec 16. 2021

[인터뷰] 재미와 흥미에 이끌리는 기획자 윤지원

[낄낄 프로젝트] 첫 번째 친구

이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 [낄낄 프로젝트의 서막] 클릭 




2018년 8월 김해에서 열린 청년포럼. 당시 신문사 기자였던 나는 기삿거리를 발굴하고 쓸만한 멘트를 던져주는 취재원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공간을 탐색했다. 낚시꾼의 마음으로 던진 그물에 걸린 사람이 윤지원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지원 포함 또래로 보이는 세 명의 핸드폰 번호를 캐냈고 한데 모아 주기적 교류를 강제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좋았기 때문. 다행히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은 이들은 ‘난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소소한 잡담과 함께 삶의 가치를 공유하며 고민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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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 프로젝트]의 첫 인터뷰이는 당연히 내 친구 윤지원이어야 했다. 지원이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거제 토박이인 그는 물질하는 해녀를 제안받은 특이한 이력이 있으며 문화기획자이자 박물관 큐레이터, 와인바 사장님이기도 했다. 지금은 또 도시재생 분야에 속한 코디네이터다. ‘글쓰기’라는 테두리 안에서 한 길로 직진하는 나는, 탐험가처럼 여러 갈래의 길을 터놓은 친구와 어떤 접점이 있을지 궁금했다. 수원에서 거제까지 무박 왕복 10시간의 길. 막막함이 아닌 확신으로 그를 만났다.      


·사진 햇배





난사람들



낯섦을 좋아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거제 토박이     

낯선 것을 좋아하지만 성격은 급하다고 했다. 낯도 가리지만 수줍음이 있는 자신을 스스로 부끄러워한단다. ‘E(외향)가 되고 싶은 I(내향)’라고 소개했지만, I인 자신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윤지원. 거제에서 살며 이사를 많이 다녔다. 일례로 수월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장승포초로 전학 가서 일운초를 졸업했다. 그래서 거제도 어딜 가든 접점이 있는 토박이가 됐다.



― 어릴 때 꿈이 궁금해. 

"나는 학생 때 오지탐험가가 되고 싶어서 국제무역학과를 전공했어. 이 분야의 일을 하면 외국에 갈 기회가 많으니까 선택하게 된 거지. 류시화 작가의 여행기도 많이 읽었어. 아마존강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둡게 보이는데 그 밑에는 엄청 큰 아나콘다도 있고 물고기가 산다고 하니 신기한 거야. 나는 낯선 게 좋았어. 어릴 때 부산 할머니 집에 갈 때도 아빠한테 부탁해서 일부러 먼 곳에 내려달라고 할 만큼. 처음 보는 골목길을 통해 할머니 집을 찾아가곤 했지. 나는 처음 놓이는 환경을 좋아했던 것 같아."



― 부산에서 대학 졸업 후 거제로 다시 왔잖아. 보통 취업은 대도시로 나가는데 돌아온 이유가 있을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휴학 1년 6개월 하고 25살에 거제로 왔어. 학교 대외활동도 하고, 나머지 반년은 사범대에 가려고 수능 공부를 다시 했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 (웃음) 어릴 땐 누가 돌봐주냐에 따라 인생이 확확 바뀌잖아. 그런 중요한 역할을 내가 하고 싶었어. 큰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결국엔 잘 안됐어. 나는 포기가 빨라. 안될 것 같으면 빨리 버려."

 


― 첫 직장이 문화기획사였네?

"기획은 내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였어. 기획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재밌어 보이더라고. 문화기획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졸업 후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웠어. 문화기획 회사에서는 홍보물도 만들어야 하니 자격증 소지를 우대해 주거든. 내가 다닌 회사는 문화기획, 교육기획, 행사 기획을 다 하는 영세기업이었어. 야근이 진짜 많았는데 결정적으로 월급이 밀렸어. 어릴 때는 큰 문제인지 몰랐거든. 힘든가 보다~ 다음 달에 주겠지, 근데 3개월 밀릴 때도 있었고 결국 돈을 많이 못 받고 나왔지."



― 맞아. 사회초년생들이 하기 쉬운 실수가 월급이 밀리는 것에 타격감이 작아. 나도 첫 직장에서 월급이 밀렸는데 ‘언젠가는 주겠지’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 

"독립하지 않아서 무게감이 덜했지. 근데 일은 진짜 재밌었어. 지역 내에서 다양한 분야의 일도 경험했고, 지역에 특화된 행사를 진행했었거든. 박물관 등 공공기관이랑 협업도 많이 했어. 그때 학예사(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알게 된 거야. 박물관 안에서 교육기획을 전문적으로 하더라고? 전문적으로 기획이 하고 싶어 졌어. 자격증이 필요하니까 회사를 나오고 학예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지."     


"동시에 퇴사하고 받은 돈으로 호주를 갔었어. 내가 성격이 되게 급해.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는데 비행기 표도 같이 끊었어. (웃음) 비자 발급이 되기 전에 표가 이미 나와 있으니,, 결국 워홀 비자로는 못 가고 어학원을 등록해서 학생비자로 호주에 3개월 있었지. 한국에 와서는 2017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수료했고 준비했던 시험에도 합격하면서 그 해에 박물관 큐레이터가 됐어."


  

―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어떤 매력이 있었어?

"전문성을 느꼈어. 큐레이터는 박물관의 꽃이라고 할 수 있지. 전시 기획, 교육 기획, 유물 관리, 박물관의 전반적인 운영도 하거든. 크게 보면 기획의 일종이잖아. 나는 기획이 좋아서 문화기획사를 갔지만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문자격증이란 게 없었어. 기획을 하더라도 인정받고 전문성을 가져야겠다는 점에서 큐레이터를 준비했던 거야."   


거제와 청년, 지역 문화에 주목하다      

‘거제’와 ‘청년’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한 윤지원은 거제 해녀문화를 보존하고 청년 해녀를 육성하자는 취지로 ‘해녀할망과 개날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지역 청년들을 모아 ‘변태들의 피크닉’을 진행했고 청년문화공동체 ‘로코코기획단’을 만들어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했다. 또 수익사업을 구상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시작했다. 



― ‘해녀할망과 개날이’는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거야?

“제주도처럼 거제에도 해녀가 있어. 하지만 고령화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고 문화콘텐츠를 살려서 수익을 창출해내기도 어려운 구조였지. 거제도에 청년이 되게 많거든? 이들과 함께 해녀 문화를 살려보자는 취지로 기획했던 게 이 프로젝트야. 근데 막상 사업비를 받고 실행하려 하니 청년들이 없는 거야. 보통 학교를 중심으로 청년 네트워크가 생기는데 대학교도 많지 않았어. 또 이곳 청년들은 학생 신분으로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조선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았어. 거제도 청년들을 모아보자는 취지에서 사전단계로 진행한 게 변태들의 피크닉이었지."      



곤충이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변하는 과정을 변태라고 일컫는다. 윤지원은 ‘변태들의 피크닉’을 통해 참가자들이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고 연대하며 성장하는 자리가 되길 바랐다.      


변태들의 피크닉 행사 모습 - 거제 로코코 기획단 인스타그램 갈무리 @geoje_rococo


거제의 청년들도 이런 시간을 간절히 원했을 것 같아. 

"지금은 굵직한 국가사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없었거든. 아까 거제도로 왜 왔냐고 물었지? 거제는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어청년 기획자가 많이 없어서 내가 뭐 하나만 해도 눈에 띄었거든거제에선 뭐만 하면 다 최초였어여기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 역시 실행하는 게 최고네. 뭘 하나 빨리 선점해야 최초가 된다는 걸 다시 느꼈어. 활동하면서 청년문화공동체 ‘로코코기획단’도 만들었지?

“지원사업 외에도 다른 프로젝트를 하려고 공모사업을 알아보니 단체 위주로 들어갈 수 있더라고. 그래서 만든 게 로코코기획단이었지. 로컬매거진 <옥포에고>를 만들면서 지역의 소식을 담는 잡지를 만들었어."



―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프로젝트였을 텐데 원래 체력이 좋은 편이야?

"낮과 밤에 다른 일을 하고 주말에도 일했어. 내가 공기관 시험 준비할 때는 또 일 끝나면 공부해야 해. (웃음) 나도 재미있어서 그렇게 한 것 같아. 나는 스스로 부지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살아왔던 걸 보면 시간을 쪼개서 써왔던 것 같아. 나는 비전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내 인생에 대해 거창하게 이야기할 게 없어. 그냥 재미있어 보이고 내가 재미있어서 한 것 같아."           




직장인이자 와인바의 대표로… “몸이 두 개?”     

2년 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한 장. 공간 벽면을 직접 페인트칠하는 지원이의 모습이었다.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니 이번에는 와인바 창업을 준비 중이란다. 친구인 동업자와 창업 비용을 아끼려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사업의 방향성을 잡고 메뉴를 정했다. 분위기에 알맞은 가구를 채워 넣으며 구슬땀 흘린 결과 ‘두룽회관’이 탄생했다.       



― 삶, 직업에 있어서 재미는 중요한 가치 같아. 너 와인바 한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잖아. 직장인인데 몸이 두 개야?

“하하. 에너지 폭발할 때였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일회성이라 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공간이 있으면 단발성 행사를 주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고 사람들을 모을 수 있잖아. 그러던 차에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가게를 열게 됐어. 처음에는 LH 소셜벤처 공모사업비를 받아서 거제 꽃차를 콘텐츠로 한 로컬 음료를 개발하려고 했는데 그때 내가 너무 바빴어. 소셜벤처 중간발표회와 서울에서 열린 문화기획 프로젝트 전시, 요청받은 통영 강의까지 한날에 겹쳐버린 거야. 결국 번아웃이 와서 일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게 됐지."    



― 듣기만 해도 숨이 차는데? 

“지금 생각하면 욕심을 많이 부렸다고 생각해. 지금 평가해보자면, 두룽회관은 창업 창업’ 외치는 이 시대에 한번 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던 것 같아. 창업에 대한 프로세스를 알게 됐고, 내가 그걸 겪고 해냈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될 것 같아친구랑 동업하면서 안 싸우고 끝까지 이겨냈다는 의미도 있고. 20대 어린 나이에 했다는 게 스스로 대견해."      



― 그러다 박물관을 나오게 된 이유가 있었어? 

“일은 재밌었는데, 2년 정도 있다 보니 루틴이 똑같아. 내가 근무한 박물관은 패밀리십이 좋고 관장님도 딸처럼 대해주셨어. 근데 오는 사람만 오고 만나는 사람도 비슷해지니 권태로움을 느꼈어. 그래서 용기 내 나온 거야. 그리고 나는 거길 나와야 다른 걸 할 것 같았어.”           

박물관 큐레이터에서 도시재생 분야로… 주말에도 출근이 기대되는 ‘일잘러’     

직장인들이 바라는 최고의 가치 중 하나는 잘릴 위험 없는 ‘안정적인 직장’이다. 근데 지원은 여기에서 오는 권태로움에 회사를 나왔다. 선택한 건 도시재생이었다. 현재 지역의 도시재생 분야에서 홍보,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은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도 재밌다며 주말에도 출근이 기대된다고 했다. 주위에 이런 직장인 보신 분? 



― 나 또 놀랐잖아. 네가 도시재생 일을 한다고 해서. 

“박물관에 다닐 때 도시재생 도서를 사서 관장님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관심이 있었어. 도시재생은 결국 지역의 이야기잖아내가 했던 일들과 일맥상통하지. 나는 지금 홍보와 기획을 담당하고 있어.”   


  

― 도시재생은 문화, 사회, 경제 전반과 연관된 일이더라고. 국비 사업이라 주민 간 정치싸움, 지역 간 시기 질투에 일도 힘든데 주민 교육도 해야 하고.

“이 지역에는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현재 위기인 조선업도 영향이 있지. 여기는 박물관에서 주로 해오던 교육과 전시는 축제, 환경 개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할 수 있으니 큰 흥미를 느껴. 요즘도 바쁜데 너무 재미있어어떤 정도냐면 주말에 출근하고 싶고 출근이 기대돼.”     



― 헉

“물론 순간순간 벽이 있잖아. 익숙했던 일을 하다가도 새로운 업무를 맡으면 타이쿤 게임처럼 미션을 달성해나가. 물론 이불킥할 만큼 부끄러운 순간들도 많지만 일이 재미있고 깊이 파고들고 싶어.”     



― 최근에 큰 성취감을 느낀 프로젝트가 있었어?

“얼마 전에 치른 박람회였어. 지역을 대표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규모가 커서 부담이 굉장했어. 집에서도 일 생각이 날 정도였다니까. 고민 끝이 섬을 모티브로 부스를 조성했어. 첫날에는 제일 일찍 갔는데 부스가 아직 공사 중이더라고. 그 정도로 애착을 가졌어. 다른 직원들과 함께 협력해서 무사히 박람회를 마쳤고 성과도 좋았어.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도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지.     



― 직장 내 소식지도 담당한다고 들었어.

“응. 소식지가 월 1회 발행이라 뒤돌아서면 또 마감일이 다가와서 힘들지만 매달 소식지가 나오는 게 행복해. 내 결과물이 매달 나오는 거잖아.”     



― 맞아! 나도 내가 쓴 기사가 디자인되고 종이책으로 나오는 게 좋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맞아 그게 제일 재밌어. 나는 기획서의 퀄리티도 높이고 싶어. 나는 기획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주말에 일하면 여유롭게 할 수 있잖아. 처음엔 주말에 일 생각을 하거나, 일하는 시간이 아까웠어. 쉬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할까? 조급함이 있었는데 재밌으니까 하고 싶은 거겠지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재미나 흥미에 이끌려 다니잖아.”     



― 일을 이렇게 즐기는 친구인지 다시 한번 또 알게 됐어. 

나 요즘 일이 재밌다는 게 스스로 감사해.”      



― 드디어 너의 궤적이 정리됐다. 일에서 벗어난 시간에 뭐해?

“여러 도전을 하는데 얼마 전에는 배드민턴을 등록했어. 중학교 때 배드민턴 수행평가에서 A+ 받은 기억에 사로잡혀서 그 영광을 잊지 못하고. (웃음) 얼마 전엔 또 여유가 생겨서 피아노를 등록했어. 악기 하나를 잘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평일 저녁에 레슨 받지.”     



― 일을 하면서 얻은 너의 전문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해?

“기획인 것 같아.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자료 조사부터 체계적으로 짜내고 실행하는 것까지 하는 게 기획이잖아. 자료 조사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어떻게 시작할지 생각하고 그림 그리는 방향대로 내가 하나씩 정할 수 있잖아. 예를 들면 내가 지은 이름으로 사람들이 축제를 기억해. 내가 만든 홍보물로 이미지가 각인되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는 게 좋아. 잘된 기획은 실행이 잘될 수밖에 없어.” 


    

― 쉴 때는 뭐해?

“오늘도 다이어리를 들고 왔는데, 나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낙서도 하고 일정도 정리하고. 두 줄씩 기분을 적거나 계획을 짜. 가만히 앉아 생각하거나 잊지 않으려고 적고, 지나간 일을 기록하려고. 주제는 오로지 나야. 2022년 목표도 벌써 정했어. 남친 만나서 연애하기 별표 다섯 개. 난 이걸 매년 넣거든. 풋풋하고 간질간질한 연애가 좋아. 연애하고 싶어!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지원



― 일을 하면서 꼭 지키는 약속은? 

“일을 할 때 타인에게 일관적인 태도로 상냥하게 대하자고 스스로 약속해.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친절한 태도를 갖는 건 어렵더라고.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모질게 말하고 나면 그날은 후회하는 것 같아. 집에 와서 자기 전에 다르게 말할 순 없었을까? 생각하곤 하지.         






“너? 당차고, 자기 세계 뚜렷한 사람” 

나에 대해 물었다. 두근거렸다. 이 대답을 들으러 거제까지 왔다고 강조했다. 지원은 ‘풋’하고 웃더니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다.      



― 이제 핵심 질문이야. 네가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이야?

“너의 첫인상은 엄청 활발하고, 굉장히 외향적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랑은 안 맞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 (웃음) 그리고 리더십이 있다고 생각했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번호를 받아냈잖아. 네 옆에 있던 후배와도 아는 사이인 줄 알았어.”      



― 그 후배도 처음 만났어.

“맞아. 아는 사이인 줄 알았어. 근데 후배한테 할 말 똑바로 하고 되게 쾌활한 친구라고 생각했지. 첫인상은 그랬던 것 같아. 근데 너는 볼 때마다 다른 것 같아.”      



― 일할 때의 내 모습과 퇴근 후의 내 모습이 다른 것 같아. 

“네가 기자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맞춰주는 것 같아. 마치 도화지처럼. 친구들이랑 만날 때 각자 자기 이야기들을 하잖아. 너는 잘 들어주고 그 주제에 맞춰서 이야기를 해주지. 장난을 많이 치는 친구들이랑 있으면 똑같이 그 텐션을 맞춰준다는 걸 느꼈어. 두룽회관 오픈할 때 내 친구들을 처음 봤을 텐데 네가 똑같이 텐션이 올라가더라고. 그걸 보면서 고무줄 같다고 생각했어. 어떤 주제나 자리에서도 상황에 맞게 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     



― 그게 내 생존 방식이었던 것 같아. 

“우리 둘이 있을 땐 내 분위기에 맞춰 있는 거잖아. 이게 너무 신기해.”



― 오.. 남에게 듣는 나, 너무 색다르다. 

“음.. 잘 맞춰준다는 것보다 스며들어서 잘 맞아가는 것 같아. 최근에 느꼈던 것은 네가 책에 관심이 있는 편인지 몰랐어. 인스타를 통해서 서점에 가는 걸 보게 됐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가 뚜렷한 사람들은 많지만, 일상에서 보기 힘들거든. 내가 뭘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잘 없다고 생각하는데 넌 좋아하는 게 뚜렷하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     



― sns는 내 명함이 될 수도 있다는 글을 보고 얼마 전에 공개로 전환하면서 피드를 싹 정리했어. 내가 좋아하는 책 관련 게시물만 남겨뒀는데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만들 거야. 재밌더라. 인플루언서를 태그하고 그들의 콘텐츠로 스토리를 올리면 그 사람이 나를 언급하는 게 신기했어. 

“또 드는 생각은, 네가 엄청 당차다고 생각했어. 신문사를 그만둔 후에 갑자기 수도권으로 간 거야. 거기서 자리 잡은 게 너무 신기했어. 또 우리가 랜선 모임을 하면서 너의 공간을 소개했잖아. 너만의 세상이나 스토리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 몇 년에 걸쳐 너를 알게 되면서 나는 너에 대한 이미지가 명확해. 당차고자기 세계가 있다는 것그게 네 이미지야. 그 안에서 소소하게 해 나가고 멈추지 않고어떤 걸 찾아 나가는 것 같아너는 지금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어서 소소하게 낄낄 프로젝트를 한다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실행하려 거제까지 왔다고 생각해.”      


“연애에 있어서도 솔직하고 적극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연애에 있어서 당당하잖아. 나도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지금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아마 오늘 내 이야기의 방향도 달라졌을 거야.”   



   

― 마지막으로 너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나는 내가 어른이 됐다고 생각해. 내 생계를 내가 책임지고, 한 말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맡은 일도 책임감 있게 하니까 스스로 다 컸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아. 나는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어."


   

― 인터뷰 소감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 네가 이곳까지 와서 뭔가 듣고 가야 하는데 빈손으로 가야 할까 봐 걱정됐어. 네가 질문을 워낙 많이 준비해와서 안심이 됐고. 나도 기억을 못 하고 있던 것들, 바쁘게 살면서 잊고 있었던 선택의 순간들이나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질문에 답하면서 차분히 정리할 수 있었어.”     



― 오늘 인터뷰는 성공적이라는 생각이야. 첫 스타트가 좋았어.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면서 너의 이야기도 함께 해줄 때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 위안도 됐고. 나도 이런 사이드 프로젝트에 뽐뿌가 오기 시작했어!”       


   

인터뷰



낯선 길의 또 다른 이름은 새로운 길이다. 지원이 요즘 애정 하는 문장은 ‘move forward’라는데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즐거움, 잘함, 계속함’의 삼위일체 속에 책임감 있게 일하는 프로 직장인이자 삶의 컨트롤 키를 쥐고 다양한 가능성을 살펴보는 탐험가. 그리고 사랑의 가치를 아는 내 친구 윤지원. 그의 멋진 에너지를 원고에 가득 담아보며,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 ‘move forward’.      




너와 나의 교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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